▲ 남북미 정상이 지난달 30일 판문점에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의한 회동이지만 '판을 깐'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사진 출처 - 청와대 페이스북]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은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더구나 한동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교착 국면에 빠졌던 점을 고려하면 전격적이고 깜짝 회동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의 물밑에는 항상 보이지 않은 노력들이 켜켜이 쌓여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탁월한 정치적 감각이나 국내 정치수요는 물론이고, 보이지 않은 많은 중재노력들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과 끈질긴 집념, 그리고 부단한 노력이다. 짧게는 지난달 20일 시진핑 주석의 방북부터 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까지 ‘판을 짠’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평창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기 남북관계나 한반도 상황은 최악의 상태였다. 북한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연거푸 해댔고, 미국은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강경신호를 발신하고 있었다. 누구도 취임 1년내 남북정상회담 공약을 지키리라 기대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반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평창 구상’ 아래 ‘평화 올림픽’ 세일즈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청와대를 출입하던 기자는 ‘저러다 북측이 호응해오지 않는다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커져만 갔다. 딱 한 사람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만 “대통령께서 저 정도 노력하시면 반드시 잘 될 거다”는 낙관적 전망을 들려줬다.

다 알다시피 평창 동계올림픽은 그야말로 평화의 축제가 됐고, 4.27판문점선언과 6.12싱가포르공동성명으로 결실을 거뒀다.

오사카

일본 오사카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예정된 상황에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남북관계 마저 싸늘해지자 ‘코리아 패싱’이 우려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G20 정상회의 계기에 미중 정상회담을 비롯해 미일 정상회담 등이 열릴 것은 뻔한데 정작 한국은 주최국인 한일 정상회담마저 어려운 처지에 빠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G20 정상회의 직후 한국에 초청한 것이 그나마 ‘코리아 패싱’ 여론을 누그러뜨리는 외교성과라는 자조섞인 표현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북(6.20~21)에 이은 G20 정상회의 계기 한중 정상회담(6.27),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6.29~30) 그리고 결정적인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이 이어졌다. 결국 G20 정상회의는 남북미 정상회동의 사전 행사 정도로 묻히고 문 대통령을 ‘왕따’시킨 듯 보였던 아베 일본 총리의 ‘왕따’가 뚜렷이 부각된 반전이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오사카 구상’이 마침내 빛나는 순간이었다.

나가사키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빠른 시일 내에 실무회담을 추진하기로 했고, 2월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멈췄던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70년을 적대시하던 관성이 일사천리로 모두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협상의 장이 마련된 만큼 진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눈길은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

윤종일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는 지난 5월 9일자 통일뉴스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평화의 중재자시다”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오는 11월 일본을 방문한다. 교황은 도쿄와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방문하여 핵무기 없는 세상에 대해 강론을 할 것이라고 한다”고 전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일본의 원폭피해지역을 방문하고 이어 북측을 방문한다면 핵무기 없는 세상을 바라는 세계인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 거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보기]

특히 나가사키는 일본 가톨릭교회의 발상지고 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린 곳으로 우라카미 성당의 종탑은 원폭으로 파괴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상징적인 곳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하여금 교황을 초청토록 설득하고, 교황이 판문점에서 집전하는 평화 미사에 남북 정상이 나란히 참석하는 ‘나가사키 구상’을 가다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반도 비핵화를 뛰어넘는 ‘핵무기 없는 세상’이 온 지구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부터 실현되는 역사적 순간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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