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나무도감, 2002년 곤충도감이 나온 후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바닷물고기도감, 동물도감, 민물고기도감, 새도감, 버섯도감, 식물도감, 약초도감, 나비도감이 한해 한권, 또는 두권씩 출판됐고 올해 나무도감과 곤충도감의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그렇게 모인 10권이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 도감' 시리즈 10권으로 출간되었다.

그보다 앞서 보리는 1994년 '달팽이 과학동화'에서 처음 세밀화를 선보였고 1995년부터 세밀화 도감 개발을 시작했으니 우리나라 세밀화 도감의 역사는 보리와 함께 해 온 25년에 오롯이 담겨있다고 해야 하겠다.

그렇게 완성된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 도감' 시리즈 각 권은 20.3 X 27.5cm의 크기에 양장 제본으로 수려한 세밀화와 다양하고 전문적인 생태 정보를 풍성하게 담고 있다.

▲ 권혁도·조광현·강성주 외,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도감』, 보리, 2019.5. [사진제공- 보리]

책갈피를 한장 한장을 넘기면서 그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가까이 멀리를 반복하며 하염없이 보게 된다. 그림과 글에서 느껴지는 지극한 정성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휴대폰으로 찍기만해도 고해상도의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요즘같은 세상에 왜 세밀화인가?라고 묻기 전에 세밀화 도감을 보면 답은 금세 나온다. 

굵고 가는 미세한 잎의 무늬와 속이 들여다 보일듯 말듯한 줄기, 크고 작은 흙덩이를 묻히고 땅속에 숨어 있는 뿌리를 어떤 고성능 카메라가 고스란히 한장의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제 몸집보다 훨씬 커진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잡아다 먹이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앙증맞은 부리, 보송보송한 잔털이 하나하나 살아있는 그림을 보면서 일어나는 이 애잔한 감정은 또 어쩌겠는가?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두 세달에 한권씩 뚝딱 책을 만들어내야 하는 세상에 25년의 호흡으로 이런 책을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강아지풀 하나를 그린다고 했을 때 화가는 하루 8시간을 꼬박 들여 3주 넘게 그려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글을 써서 다듬고 그림과 글을 전문학자에게 감수를 받아 고치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서 도감 한권이 만들어지기까지 5~7년이 걸린다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이다.

동업자인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대표는 "그저 입이 쩍 벌어지고 숨이 멎을 뿐이다. 한권에 7, 8년씩 걸리는 세밀화 도감을 30년 가까이 열권을 만들어 시리즈를 완성했으니 말이다"라고 하면서 "한 권의 책을 만들려면 최소한 30년을 선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는 헌사를 바쳤다. 

최재천 이화여대 대학원 에코과학부 교수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해야 할 일을 작은 출판사 보리가 해냈습니다. 25년에 걸친 윤구병 선생님과 보리출판사의 혜안과 고집이 이 땅의 생물을 영원히 지켜줄 겁니다.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발간 축사를 보냈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워낙 방대한 역작이라, '잘 팔릴까?'라는 걱정이 오히려 들어서 추천의 글을 올려봅니다'라는 추천사를 올렸을까?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 도감'을 소개하는 히스토리북 첫 장에는 푸른 잎 늘어뜨리고 우뚝 서있는 아름드리 나무 그림 아래로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인상적인 글귀가 있다.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낼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자.'

암튼 세상에 그 자태를 드러낸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 도감'은 어떤 책인지 각 권의 개략을 살펴보자. 

'우리 땅에 뿌리 박고 사는 나무이야기'를 다룬 『나무도감』(344쪽)에는 산과 들에서 저절로 자라거나 여기저기 심어 기른 나무, 토박이 나무, 쓸모가 많아 이름이 널리 알려진 나무 137종이 실렸다. 우리나라에 어떤 나무들이 자라는지, 철따라 나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우리 겨레가 살림에 어떻게 써왔는지 알 수 있고 나무줄기와 잎, 꽃, 열매의 생김새, 과일나무 가꾸는 법도 알 수 있다.

『곤충도감』(344쪽)에는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오랫동안 우리 겨레와 함께 살아온 토박이 곤충 144종이 올라있다. 날개의 맥과 무늬가 어떻게 생겼는지 같은 섬세한 특징까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세밀화로 그렸고 '곤충의 분류'와 같은 깊이 있는 정보도 다루고 있다.

'현대판 자산어보' 『바닷물고기도감』(352쪽)은 동해, 서해, 남해와 제주 바다에 사는 바닷물고기 158종의 생김새 뿐만 아니라 생태와 성장, 고기잡이, 쓰임도 낱낱이 밝혀 놓았다. 

우리 강과 시내, 개울에 사는 민물고기 중 순수 담수 어류를 우선으로 130종을 뽑아 실은 『민물고기도감』(356쪽)은 한반도 고유종 52종,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로 지정된 담수어류 총 25종 중 23종, 천연기념물에 속하는 6종을 모두 소개했다. 

동의보감 탕액편에 나온 약으로 쓰는 풀과 나무를 중심으로 꾸민 『약초도감』(368쪽)은 151종의 약초를 소개하되, 언제 어디를 어떻게 갈무리하여 어떤 약효와 약성을 이용해 언제 쓰는지,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알렸다.

『나비도감』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나비를 담았다. 나비 219종을 704점의 세밀화로 보여주는데 이중 140종은 알, 애벌레, 번데기로 탈바꿈하는 과정까지 보여주고 암수컷을 구별하기 쉽게 날개 윗면 무늬가 드러나도록 하고 날개를 세운 옆 모습도 따로 그려 넣었다.

식물도 동물도 아닌 제3의 생물인 균류로 분류되는 버섯을 다룬 『버섯도감』(348쪽)은 먹을거리로서 하는 버섯의 역할 보다 생태계에서 동식물이 만들어내는 유기물을 분해햐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환원자의 역할에 초점을 두고 우리나라에 나는 버섯 5,000종 중 125종을 뽑아 소개했다.

『새 도감』(360쪽)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새 560여 종 가운데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따오기, 뜸부기, 크낙새 들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쩍새, 솔부엉이를 비롯해 우리에게 친근한 제비나 참새 등 122종이 실려있다. 부리와 눈썹줄, 다리와 꼬리 각도, 작은 깃털 하나까지 꼼꼼하게 그렸다.

『동물도감』(344쪽)과 『식물도감』(356쪽)은 우리 겨레가 오래전부터 가깝게 여기고 살림살이에 중요한 관계를 맺어온 포유류, 새, 파충류, 양서류, 민물고기, 바닷물고기, 곤충, 무척추동물 223종, 나무, 곡식과 채소, 들풀과 나물, 약초 366종을 가려 뽑아 실었다.

보리는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 도감'이 여느 도감과 다른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도감을 온 식구가 함께 보는 책이고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보는 책이라고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리 세밀화 도감은 기본 정보인 생김새와 생태 특징 뿐 아니라 취재하면서 구술받은 다양한 개체 정보, 살림살이, 역사도 두루 담아 백과사전처럼 볼 수 있다. 이것이 여느 도감과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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