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느 직업이든 사람들과 만나 부대끼며 일하게 된다. 나 역시 10년 정도 기자 생활을 했고, 통일운동 활동가로서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다양한 직업만큼이나 다양한 삶을 살아내는 이들을 보며, 매일 매일 배우고 또 배운다. 학습 능력이 남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녀석이라, 남들보다 몇 갑절은 더 열심히 배워야 하는데, 늘 게으름을 핑계로 무지를 본의 아니게 자랑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항상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

▲ 오기현,『북한 사람과 거래하는 법』, 한겨레출판. 2019. 5.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제목에 이끌려, 또 주변의 입소문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직장에서 발간하는 통일전문지에 기고를 요청 드리기 위해 몇 번 연락한 적도 있으니, 저자와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니다. 저자 오기현은 자타가 공인하는 북 전문 프로듀서다. 1998년 이후 약 30여 차례 북을 방문했고, 북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출한 방송 전문가다. 현재 한국피디연합회 통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자에 비하면 일천하지만 나 역시 사업 협의를 위해 수차례 북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때문에 저자의 글이 하나하나 몸으로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맞아, 그렇지’ 저자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아, 그랬나?’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옛(!) 추억을 강렬하게 소환하게 만든 책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무슨 생각으로 무슨 열정으로 북을 찾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사람이 스승이라는 말은 당연히 북에도 해당된다. 북측 민화협 참사들, 학자, 그리고 접대원이나 안내원 동무들을 만나며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2002년 4월 설봉호를 타고 찾은 금강산에서 처음 만난 북측 사람들은 2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 머리를 가득 채웠던 적대와 두려움의 이미지를 가볍게 날려버렸다.

물론 한 순간에 북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사라질 순 없다. 만나서 싸우든 논쟁을 하던 계속 만나고 또 만나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상대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다. 같음을 찾는 작업보다는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여유는 그 때 비로소 가능하다. 많은 북측 인원들을 만나며 느끼고 또 느낀 부분이다.

저자는 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고, 또한 김정은 시대 이후 달라진 북과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북을 함께 소개한다. 그리고 그야말로 실무자적인 입장에서 북측 인원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고 어떻게 사업을 풀어가야 할지 친절하게 소개한다. 하나의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은 거의 달성한 듯하다.

한없이 딱딱할 줄만 알았던 그들이, 알고 보면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더라, 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렇다. 몇 번 만나 얼굴을 익히고 이름을 알게 되면 제법 친해질 수 있다. 일단 같은 민족이 아닌가. 술잔이 오가고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민족의 정도 오간다.

하지만 사업은 거기에서 만족할 수 없다. 협상이나 협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마련된다. 먹고 마시고 놀기 위해 그 복잡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 북에 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최대한 관철시켜야 한다. 협상은 협상이다.

더구나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분야가 아닌가. 남북이 흡족하게 사업에 합의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힘을 모으다가도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모조리 물거품이 된 경우가 얼마나 많았나. 때문에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매번 사람들을 만났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지만, 국제학술회의를 계기로 친해진 북측의 친구가 있다. 그는 학자이기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만으로도 일정을 소화하기 벅차 보였다. 그 무슨 정치적 이야기나 민감한 사항을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다. 해서도 안 되겠지만. 아무튼 그와는 가정사를 서로 나누고 자식자랑을 끝없이 늘어놓으며 친구가 되었다. 이런 경우는 사업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겐 참 소중한 인연이자,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게 아닌 경우는 종종 어색함과 난처함을 불러올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 산림협력을 위한 개성 실무접촉에서 그동안 못 봤던 젊은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컴퓨터학과를 나왔다고 스스로 소개한 그는 북측 실무진 중 막내였다. 당시 나 역시 막내였기에 자연스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샤프한 외모에 딱 봐도 엘리트라는 인상이 마구 풍겼다.

그런데 그 후 시간이 지나 심양에서 접촉이 있을 때였다. 당시 우리는 산림협력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 협의를 위해 북측과 만나기로 한 호텔 로비에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친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가는 길을 막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얼굴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일단 내가 아는 척을 했으니 자신도 인사를 했지만, 난처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차, 내가 실수 했구나.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실수였지만, 그 친구는 다른 남측의 민간단체와의 협의를 위해 나온 것이었다. 급히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를 보며, 미안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했다. 함께 온 나의 상급자는 내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실수를 통해 알아서 배우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별 것 아닌 게 아니다. 분단은 이처럼 별 것 아닌 것을 별것인양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7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과 북은 스스로에 대한 오만과 상대에 대한 편견을 키워왔다. 그 골은 그리고, 여전히 매우 깊다.

북측 인원의 경직성에 안타까움을 느낀 일, 개성공단을 찾은 일부 기업인들의 오만한 행동, 금강산이나 개성에서 북측 안내원 동무에게 무리한 요구를 마구 해대던 관광객들의 추태, 조국의 이야기를 꺼내며 눈시울이 붉어지던 북 산림학자까지. 그동안 만나온 수많은 이들은 그 자체로 나에게 스승이었다. 그리고 미약하나마 남북관계의 개선과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동시에 치열한 반성도 함께 한다. 부득이하게 한동안 실무접촉에 나서지 못했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 과정과 결과가 한심했어도, 그냥 모른척했다. 뭐 남북협의나 실무접촉을 반드시 누군가가 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 아니냐고 자위했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이 사라진,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는 협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불순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개인적 욕심이나 계산에 의한 만남은 안 하는 게 낫다. 때문에 반성한다. 난 왜 제대로 된 소리를 내지 못했나.

책은 그동안 북측 인원들을 만나며 느꼈던 수많은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직접 찾았던 개성 민속려관의 사진을 보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나는 무려 그곳을 내 차를 직업 운전해서 갔다.(!) 아울러 다시 내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게 가장 고마운 일이다.

나는 북측과 만나 때론 치열히 싸우고 때론 힘을 모아 이 땅의 평화를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일해 왔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치 않았다. 온갖 사기꾼들과 협잡꾼이 설치는 세상이지만, 나보다 앞서 오직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던 선배들을 생각하며, 하찮은 녀석이지만 갈 길을 가야겠다. 더러운 것들은 더럽게 내버려 둘 것이다. 고귀한 분들은 끝까지 따를 것이다. 다시 한 번 나를 다잡게 만들어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남북한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안에서 차이를 확인해야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상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평화 공존이나 통일의 가능성도 열릴 것이다. 같음보다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평화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통일의 길을 열어준다고 확신한다. 너와 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자. 성공적인 거래 또한 다름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242~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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