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선택의 『핵 담판』, 펴낸 곳 ‘책책’.

사람의 뇌가 지닌 특징은 ‘경험’에 의한 ‘자기 다시 쓰기’라고 한다. 개인, 정파, 국가들이 현재의 요구에 따라 ‘역사 다시 쓰기’를 하는 근원인지도 모르겠다. 북핵을 둘러싼 30년 가까운 공방은 이 정의에 딱 들어맞는다.

북핵 역사에서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현장에서 취재했던 한 통일외교전문기자가 보기에 “1차 핵실험은 미국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에 대한 금융 제재와 관련한 북한의 반발”이었다. “그러나, 3년 후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 방코 델타 아시아를 말하는 사람은 없고, 단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햇볕정책의 부작용이라는 설명이 득세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등장한 정책(이라기보다 슬로건)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이었다. 보수 정권의 ‘역사 다시쓰기’ 과정에서 당대 현장 목격자들의 풍부한 증언은 잘려 나가거나 왜곡됐고, 북핵 문제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기대할 수 없었다.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도 비슷한 사태가 재현되고 있다. 합의 없이 끝난 직후 양측이 밝힌 협상의 구도는 ‘영변 핵시설+α vs 제재 완화’였고, 미국 측의 요구 수준이 높아진 직접적 배경은 ‘마이클 코언 청문회’였다. 그러나, 대화가 중단된 사이 양측이 ‘하노이 정상회담 다시쓰기’를 시도하면서 진실은 알기 어려워지고 그만큼 문제 해결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과 미국 내 ‘당국자’나 ‘전문가’를 인용한 기사를 읽다보면, 현장을 취재했던 필자조차 그때 진정한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이처럼 자기중심적 서사가 난무하는 시대에 필요한 지혜는 또 하나의 우기기보다는 그때 그 곳에서 일어난 일을 차분하게 들여다보기일 것이다. 왕선택 <YTN> 통일외교전문기자가 쓴 『핵 담판-평양에서 하노이까지 3,000일의 북핵 문제 연대기』(이하 『핵 담판』, 펴낸 곳 '책책')의 미덕이다.

『핵 담판』은 2011년 12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핵 연대기다. 연대를 따라가되 ‘에피소드 서술’ 방식이 결합됐다. 북핵 관련 사건들 중 특별히 연관성이 많은 장면을 뽑아서 27개의 장으로 묶었다. 방송 기자의 감각이 발휘됐을 것이다. ‘팩트 체크’ 참고서임에도 술술 읽힌다.

왕선택 기자는 18년 동안 통일부와 외교부, 국방부, 청와대, 국회 등에서 북핵 문제를 취재, 보도, 논평하면서 북핵 정책에 대한 국내정치의 영향을 강조해왔다. 박사 학위 논문도 『북한과 미국의 ‘핵외교’ 추세 분석, 1992-2011 : 국내정치 주기와 ‘예정된 비합리성’ 개념을 중심으로』이다. 워싱턴 특파원(2013~2016)을 거치며 그러한 생각이 더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왕 기자는 “하노이 정상회담은 국내 정치가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명제와 관련해 앞으로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될 것”(『핵 담판』 395쪽)이라고 본다. ‘결렬’ 며칠 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과 같은 날(2.27) 열린 하원 청문회가 영향을 줬다고 말한 점, 회담 결렬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지가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은 점을 지적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슬로건을 빌리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인 셈이다. 

왕 기자의 지적대로 “회담이 결렬된 건 협상 내용 때문이 아니라 협상 환경, 특히 미국 국내 정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체들의 과제도 분명해진다. “미국 국내 여론을 전환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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