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대화는 언어 게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가라타니 고진)


 싸움 뒤  
 - 가네코 미스즈 

 외톨이가 되었다
 외톨이가 되었다
 멍석 위는 쓸쓸해

 난 몰라
 그 애가 먼저야
 그렇지만 그렇지만 쓸쓸해

 인형도
 외톨이가 되었다
 인형을 끌어안아도 쓸쓸해

 살구꽃이
 폴폴 포르르
 멍석 위는 쓸쓸해   

 

 정년퇴직을 한 학기 앞 둔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학생의 무례한 행동과 그 학생 부모의 항의와 끈질긴 민원에 끝내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낸 후 자살을 했다고 한다.

 아침에 가끔 모 중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그때마다 나이 많은 교사가 교문에서 학생들 등교 지도를 하고 있다. 그 교사는 학생들을 향해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학생들은 무심히 교문을 들어선다.  

 그 교사는 왜 학생들의 무반응 속에서 똑같은 인사말을 계속할까? 교장, 교감 선생님의 지시사항일까? 버스를 탈 때도 그런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 무심한 승객들을 향해 머리를 꾸벅이며 ‘오서 오세요.’ 인사를 반복하는 기사.

 기계음 같은 ‘사랑합니다. 고객님!’ 인사말이 보편화되어가는 느낌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린 인간 사이에 그런 영혼 없는 인사말들이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우리는 이제 ‘대화’를 잃어버린 것 같다. 
 
 우리는 대화를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말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대화란 것들은 사실 독백이다. 자신의 응어리진 마음을 말로 풀어내는 혼잣말이다. 우리는 서로 혼잣말을 잔뜩 한 후 좋은 대화를 했다고 착각한다.

 대화는 마음이 통하지 않는, 다른 언어 게임 규칙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의 한계를 알게 된다. 대화 속에서 자신의 한계 너머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대화는 자신의 성숙을 위해 하는 것이다.  

 정년을 한 학기 앞둔 교사와 초등학생은 대화가 가능했을까? ‘세대차’가 그들 앞에 강물처럼 가로놓여 있었을 것이다.

 60대의 교사는 공동체, 집단주의 속에서 살아왔다. 항상 자신보다는 전체를 먼저 생각해 왔을 것이다. 초등학생은 개인, 이기주의 속에서 살아왔다. 항상 전체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교사와 학생의 대화는 항상 평행선을 긋고 끝내는 서로 욕설을 하고 두 사람의 관계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교사의 공동체 의식과 학생의 개인주의는 모두 소중할 것이다. 그 둘의 조화를 두 사람은 정녕 찾을 수 없었을까?

 사람은 싸우면서 크는데 우리는 싸운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대화를 할 줄 모른다.  

 가네코 미스즈 동시인은 ‘싸움 뒤’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준다.   

  ‘외톨이가 되었다/외톨이가 되었다/멍석 위는 쓸쓸해//난 몰라/그 애가 먼저야/그렇지만 그렇지만 쓸쓸해//인형도/외톨이가 되었다/인형을 끌어안아도 쓸쓸해//살구꽃이/폴폴 포르르/멍석 위는 쓸쓸해’

 요즘 어린이들은 이런 경험을 할까?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에서는 아예 아이들을 싸우지 못하게 한다. 외톨이가 되어 동무를 간절히 원해 보아야 하는데. 그런 마음으로 서로 힘겹게 화해를 해 보아야 하는데. 그러면서 더불어 사는 경이로움, 기쁨을 배워가야 하는데. 외톨이로만 자란 아이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그 교사는 싸우면서 자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가꿔간 경험이 얼마나 있을까? 파편적인 지식을 암기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고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싸우면서 함께 크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우리 교육에는 논쟁이 없다. 논술도 정답이 있고, 토론도 정답을 찾아가는 테크닉일 뿐이다.

 그 교사의 비극은 우리 교육의 총체적인 비극이다. 해결책은 사실 너무나 간단할 텐데. 고등학교만 나와도 먹고 살 수 있는 복지사회를 만들면, 우리의 교육은 서서히 제자리를 잡아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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