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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3국 인간띠운동의 시사점<기고>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이장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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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9  14: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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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 불가침조약(일명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1939,8.23.)에 첨부된 비밀의정서에 의하여 독일과 소련은 발트 3국의 독립국가 주권을 강탈하였다. 이 독-소 비밀조약은 1988년에, 카스라-태프트 밀약(1905)은 1924년에 처음으로 존재가 공개되었다.

이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비밀조약으로 인해 50년간 소련 공산당의 독재하에 개인과 국가의 자유와 독립을 박탈당해온 발트 3국의 국민들은 1986년 탈냉전을 계기로 발트 3국의 시민단체들의 주도하에 주권박탈 50주년이 되는 1989년 8월 23일 인간띠운동을 통하여 1991년 9월 독립국가로 원상회복하였다.

한반도의 현재 상황은 국제정세와 국내외적 여건에서 그리고 지향가치에서 1989년 유럽 발트 3국의 인간띠운동의 성공 사례와는 매우 다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발트3국의 인간띠운동과 DMZ평화인간띠운동의 차이점과 유사점은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비교하여 시사점을 얻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차이점으로 첫째, 발트의 인간띠운동과 DMZ평화인간띠운동의 지향 가치와 목표가 다르다. 전자는 소련연방으로부터 독립국가로서의 자유와 독립이 우선 목표이다. 반면 후자는 남한내부의 화해와 결속을 다지고, 국제적인 평화적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있다. 단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내외적인 공감 및 지지 유도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통일이라는 분단극복이다.

둘째, 국제정치적 환경 면에서 발트 3국의 인간띠운동의 큰 장애물은 소련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기득권 고수이다. DMZ평화인간띠운동의 장벽은 미국의 한반도와 동북아에 대한 패권적 기득권 유지 정책이다.

셋째, 발트 3국의 인간띠는 발트 3국의 수도를 남북으로 잇는 인간띠였다. 사슬(chain)은 세 나라 수도 빌니우스-리가- 탈린을 남북으로 연결하였다. 3국의 전국토를 종단하여 모두 620km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인간띠였다.

1989년 8월 23일 오후 7시부터 15분간 모든 참가자들 200만 명이 “자유“를 외치면서 일시에 손을 맞잡았다. 200만 명은 발트 3국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한다고 한다. 반면 후자는 남북한을 군사분계선(MDL)을 경계로 그어진 비무장지대(DMZ)를 따라 인간띠가 이어졌다. 약 20만명이 참가하여 2019년 4월 27일 오후 2시에 강화도에서 고성까지 500km 인간띠를 이었다.

넷째, 운동 수단에서 발트 3국은 민족적 애국적 가요와 UN을 비롯하여 국제사회여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언론 중 라디오가 특집으로 방송하였다. 반면, DMZ평화인간띠운동은 SNS 및 언론 및 인적 네트웍을 주요 캠폐인 수단으로 한다. 특히 지역 및 부문 본부를 다양하게 결성한 점이 특이하다.

다섯째, 인간띠 결성의 역사적 배경에서, 발트 3국 인간띠는 1939년 독-소 비밀조약 50주년이 된 1989년 8월 23일이 결성의 계기가 되었다. 인간띠를 하자는 직접적 아이디어는 1989년 6월 15일 발트3국의 운동가들이 연합하여 소집한 페르누(Paernu) 3자회담에서 제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제안에 대해 8월 12일 3국의 운동가들 사이에 공식적 합의와 서명이 이루어졌다. 이 인간띠 행사는 3국의 국내 공산당 기관으로부터도 승인을 받았다. 반면 DMZ인간띠는 1919년 3.1혁명 100주년기념, 2018년 4.27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이 역사적 결성 시점이다. 주로 개혁적 기독교단이 중심이 되어서 조직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유사한 점은 첫째, 인간띠운동이 민(民)이 주도한 점에서 발트 3국과 DMZ평화인간띠운동은 매우 유사하다. 발트 3국에서는 인권단체와 종교단체가 중심이었다. DMZ인간띠에서는 특히 진보적 기독교 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평화관련 시민단체도 이에 합류하고 있다. 촛불 혁명처럼 스스로 일어나 동참함으로써 남북의 항구적 평화가 관(官) 또는 정치권이 아닌 민(民)이 실행한 것이다.

둘째, 발트 3국 인간띠 운동도 소속 국가 공산당국의 승인을 받아서 행한 것이다. 1989년 공산당 일당이 지배하는 소련 연방은 건재했다. 그래서 소연방 공산당중앙위 눈치를 보아야만 하기 때문에 발트 3국 당국은 노골적으로 나설 수는 없지만, 발트 3국의 당국은 비교적 협조적이었다. 그래서 소규모이지만 소련공산당에 의해 물리적으로 방해도 있었고, 또 희생도 있었지만, 시민의 힘으로 이러한 방해물을 지혜롭게 막아냈다.

반면, DMZ평화인간띠운동도 2017년 촛불혁명이후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민주정권이 집권하고 있기 때문에 DMZ평화인간띠운동 조직을 결성하는 데 정치적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 남북문제에 대한 극우적 시각을 가진 정치세력과 여론층은 DMZ인간띠운동을 포함하여 핵을 가진 북한과 평화를 논하는 것 자체를 매우 반대하는 입장이다.

끝으로 발트 3국 인간띠운동이 DMZ인간띠운동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자.

발트 3국의 인간띠운동을 분석하면서, 첫째 시사점은 국제사회에 정확히 알려서 국제적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내는 일이라고 본다. 발트 3국이 독립을 독자적으로 무사히 선언했지만, 국제적 승인을 얻는 과정은 매우 험난하였다. 몇 번의 무력개입도 희생도 있었다. 또 아이슬란드를 제외하고는 국제사회의 여타 개별 국가는 외교적으로 발트 3국의 독립 승인에 대해서 한동안 거의 냉냉했고 조심스러워 했다. 물론 소련을 강하게 의식한 것이다.

발트 3국 인간띠 운동가들은 UN사무총장에게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보호 및 국제조사위원회 파견을 호소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미국 및 서독을 비롯한 서방 지도자들이 지지 발언도 내었다. 소련연방 강성파들의 군사적 개입이 이 때문에 자제된 것이다.

둘째로 발트 3국 인간띠운동에서 벌어지는 소비에트 강성파들에 의한 물리적 개입에 대해서 항상 민간시민이 몸으로 현명하게 잘 대처하였다. 우리도 이러한 내부의 방해꾼에 대해서 촛불혁명 때처럼 인간띠 활동가들을 위한 철저한 평화교육과 수칙을 치밀하게 마련하여 열린 시각에서 평화운동을 보는 시민교육이 필요한다. 이를 위해서 평화교육 교사 양성을 위한 유라시아평화교육아카데미 개설이 필요하다.

셋째는 발트 3국은 50년 동안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의 압제 속에서도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온 것이 인간띠를 통한 독립 쟁취에 큰 원동력이라고 본다. 발트 인간띠는 ‘노래하는 무혈혁명’이라고 했듯이, 남녀노소 참가자들은 손에 손잡고 모이기만 하면 하루 종일 노래를 불렸다.

한 예로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경우 100m 마다 작은 무대가 세워졌고 그 무대에는 시민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저항의 시간을 함께했다. DMZ평화인간띠도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살리는 운동방식이 내적 결속에 큰 힘이 될 것이다. 현재 너무 의식위주의 행사에 치우치고 있다. 쉽게 같이 부를 수 있는 전통노래나 접근성이 좋은 곳에 적합한 상징적 모임장소를 확정하여 문화적 접근을 통해 일반시민의 대중화 및 연대화를 위해서 다각도로 노력하여야 한다.

넷째는 DMZ평화인간띠에 해외동포 및 보수성향 사람들의 참가는 매우 바람직하다. 민족화해와 평화는 국내외, 보혁, 남북, 남녀노소를 넘어서 초당파적이라는 것을 국내외에 행동으로 보여주는 좋은 운동으로 본다. 다음에는 북한도 같이 참여하는 것도 신중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다섯째, DMZ평화인간띠운동이 일회성 이벤트로서 끝나서 안 되며, 매년 정례화하여야 한다. 이번 행사를 통해서 얻는 많은 시행착오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운동으로서 발전되도록 철저한 전략수립이 필요하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유라시아평화의길 상임공동대표)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대학 법학박사(국제법)

-한국외대 법대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위회 위원장(역임)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통일교욱협의회 상임공동대표,민화협 정책위원장(역임)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임)
-민화협 공동의장, 남북경협국민운동 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 ‘남북평화기원 강명구 유라시아 평화마라토너와 함께하는 사람들’(평마사) 상임공동대표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현재)

-국제법과 한반도의 현안 이슈들(2015), 한일 역사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공저,2013), 1910년 ‘한일병합협정’의 역사적.국제법적 재조명(공저, 2011),“제3차 핵실험과 국제법적 쟁점 검토”, “안중근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 등 300여 편 학술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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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9-04-30 09:00:42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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