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북러 정상회담을 두고 성공적이었느니 성과가 없었느니 하며 평가가 분분합니다.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현안이자 핵심의제가 한반도 문제, 특히 북미관계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북한은 ‘평화체제-비핵화’ 문제가 담긴 북미회담을 겨냥해 우호국인 러시아를 지렛대로 삼아 행동반경을 넓히자는 것이고, 러시아는 이를 계기로 한동안 뜸했던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는 효과를 얻고자 했을 것입니다.

사실 북미관계는, 지난 2월 말 하노이에서 열렸다가 사실상 결렬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말해주듯이, 예전 같았으면 파탄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벌써 박살났을 양국관계가 아직 유지되는 건 양국이 전략적인 의미에서 아직 관계가 파탄나길 원치 않는다는 것인데, 그 고리를 ‘김정은-트럼프’의 우호관계로 포장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나 트럼프 대통령 모두가 서로 ‘훌륭한 관계’니, ‘우호적인 관계’니 그리고 ‘편지를 주고받는 관계’니 하면서 추켜세우는데 기실 내용은 부족해 보입니다. 불과 2년도 안 된 2017년 9월에만 해도 서로 ‘늙다리’ ‘불망나니’ ‘깡패’ 그리고 ‘로켓맨’ ‘미치광이’ 등이라 부르며 말폭탄을 주고받다가 1년도 안 지난 지난해 6월 첫 정상회담을 하고는 최상의 케미라며 주가를 올렸지만, 이 모든 게 빈약한 내용이었음이 드러난 것이 하노이 회담이었습니다.

이제 하노이 회담의 뒷담화가 거의 다 나왔기에 결론부터 말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빚이 있습니다. 이미 북미 실무라인에서 대강 합의된 안이 있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 청문회 등을 이유로 예상 합의안이 베드딜이라며 ‘영변 플러스 알파’를 제기해 결국 노딜로 이끌었으니까요. 북한 측으로서는 천추의 한이었을 것입니다. 하노이 회담을 징검다리로 해서 막판 대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 미국의 막무가내 식 괴이한 셈법으로 인해 판이 깨졌으니까요.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미국의 책임론을 두고두고 문책할 것입니다. 이미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하노이 회담에 대해 “미국이 진정으로 조미관계를 개선하려는 생각이 있기는 있는가 하는데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한 계기로 되었다”면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공을 미국 측에 넘겼습니다.

김 위원장의 이런 대미 인식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습니다.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과의 확대회담에서 “얼마 전 열린 2차 조미수뇌회담에서 미국이 일방적이고 비선의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최근 조선반도의 지역 정세가 교착에 빠졌고 상황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며 우리는 모든 상황에 다 대비할 것”이라며 비장감을 드러낸 것입니다.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한 것입니다. 즉 3자를 통해 경고를 준 셈입니다. 그 경고의 핵심은 미국의 태도 변화입니다. 본질적으로는 70여년 내려온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변화이며, 구체적으로는 미국더러 6.12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에 적극 나서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바뀌지도 않고 또 이도저도 아니라면 북한은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정도가 된다면 북한은 제3자를 통한 간접 방식의 공격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직통 공략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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