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 6.15산악회 회원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앞. 집 먼 사람부터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서 9시가 조금 넘으니 대다수 집결한다.
용인에서 출발해서 오는 한 회원이 7km 남은 거리를 택시로 오고 있다는 연락이 온다. 선생님들이라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출발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아무도 발걸음을 떼려하지 않는다.
지루함도 떨칠 겸 이종문 615합창단 산악대장님의 시범과 구령에 맞춰 산행준비운동으로 가볍게 몸을 풀며 시간보내기를 한참, 10시가 다되어서 택시 한 대가 비상등을 깜박이며 그다지 가파르지도 않은 경사로를 힘겹게 기어오른다.
4km 남기고 운전석 뒤편 타이어가 터져버린 택시가 산악회에 처음 참석하는 대원을 싣고 느릿느릿 온다. 많이 민망했을 듯도 한데 내색하지 않고 미안해하면서 밝은 웃음으로 힘차게 산행대열에 합류한다.
칼바위, 대동문을 거쳐 진달래능선을 돌아 4.19묘지에 이르는 산행 길은 그리 어렵지는 않으나 우리 산악회는 어린이와 어르신들도 함께 하시기에 시간을 충분히 잡는다. 그래서 주변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능선을 따라 걷다가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이 보이는 곳에 다다르니, 주변에는 진달래를 비롯한 온갖 야생화가 만발하고 멀리 내다볼라치면 듬직한 봉우리들이 무슨 품평회라도 하는 듯 자태를 뽐내고 있기에 눈도 마음도 즐겁다.
산행 내내 마주치는 꽃들과 눈인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초입부터 반겨주는 활짝 핀 벚꽃은 4.19묘역까지도 이어지고 여러 종류의 제비꽃(고깔제비, 남산제비꽃, 민둥뫼제비꽃, 노랑제비꽃), 큰개별꽃, 양지꽃, 죽단화, 노루귀, 씀바귀, 복사꽃에 이르기까지 지천이다. 마침내는 꽃흥을 이기지 못한 대원들이 홍매화정원에 모여 사진놀이에 푹 빠져든다.
4월 산행이 항상 그렇듯이 올해도 끝 순서는 4.19묘역 참배다. 6.15산악회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시는 95세 유기진 선생님, 허리디스크 때문에 평소 즐기던 산행을 오늘만큼은 자제해야 했던 김재선 총대장님도 함께 참배한다.
묘역에 배치된 조각상 앞에서 여럿이 한 마디씩들 한다. 그리스 로마신화에나 나올 법한 조각들이 전면에 배치된 모습, 웰링턴국립묘지에서나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묘역 전면의 상징물들이 굴곡 많은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경건한 참배를 마치고 산상강연에 접어들면서 모두 권오헌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인다. “미완의 혁명으로서의 4.19~”로 시작하는 강연을 꼿꼿한 자세와 단호한 어조로 이어가자 지나는 행인도 귀 기울이고 혹자는 조용히 어디서 오신 분들이냐고 묻기도 한다.
강연 후 김미현(615합창단원) 회원의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우위영)’의 독창이 이어진다.
~~풀의 꽃으로 태어나
피의 꽃잎으로 잠드는 이여
우리 다시 만날때까지
그대 잠들지 말아라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힘이 실려 있으면서도 묘역의 분위기에 맞는 차분한 음색으로 이어지는 노래에 모두 박수로 화답하면서 뒤풀이로 향한다. 평소와 달리 뒤풀이가 조촐한 것은 재일 조선학교 후원주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이모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