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보다 많이 온순해졌다는 생각을 스스로 한다. 철이 들었다는 것과는 다른 결이지만, 그래도 시간이라는 약이, 늙어간다는 것이 나를 조금은 더 조용한 녀석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때때로 스스로 물어본다. 그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일까. 어설프게 세상 달관한 녀석 마냥 무표정하게 타인을,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 그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어쩌면 나는 조금은 이른 늙은이가 된 것은 아닐까. 벌써 세상에 대한 애정을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건방진 소리다.

여전히 어설픈 놈이기에, 술에 취해 울분이 솟구칠 때면 페이스북에 온갖 잡소리를 늘어놓고는 한다. 친한 후배 녀석은 내 페북 글을 보면서, ‘아, 오늘도 이 양반 한 잔 하셨네’ 하고 내 상태를 확인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불 킥’은 정해진 수순이다.

잘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잘 알고 싶었던 것도 많았다. 그리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고, 사랑하고 싶은 이들도 많았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때로는 거리낌 없이 울고, 웃고, 욕하고 싶었다. 가식으로 똘똘 뭉친 이들에게 비수가 될 만한 이야기를 면전에서 쏴주고 싶을 때도 있었고, 용서할 수 없는 이들은 용서하기 싫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성공한 것이 없다. 결국은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2019년 3월 현재, 대한민국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이야기들로 시끄럽다. 조금은 일찍 타락한 아이돌의 몰락, 김학의 전 차관 스캔들, 고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한 수많은 이들의 분노, 거대 야당 대표의 연이은 망언과 거기에 대한 여당과 정부의 어설프고 현명치 못한 대응, 데드 크로스, 최악의 실업률, 아직 살아있는 전두환의 구차함, 그리고 세기말적이라 느낄 수밖에 없는 미세먼지. 대한민국은 늘 그랬듯 역동적이고 뜨겁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수많은 이슈들 사이에서도 난 선뜻, 분노하지도, 재미있어 하지도, 하다못해 안타까운 마음도 두렵다. 하찮게만 느껴진다. 분명 건방진 심사인 것은 알겠는데, 이것 또한 생각처럼 간단치 않아서, 그저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다. 내가 왜 이런 걸까. 뭐가 문제인지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버린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지금 내 상태가 왜 이런지. 결국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는 가설 몇 개가 떠올랐다. 우선, 내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혐오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 2월 말 이후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급속도로 식었다는 것이다.

2월 말, 내가 몸담고 있는 일터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으며 노역에 시달리다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눈을 감은 조선인들의 유골을 송환하는 것이었다. 80년 만의 귀향이었다.

비록 내가 처음부터 함께 한 사업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이들의 헌신으로 그들이 고국 땅을 밟게 된 순간, 만감이 교차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기원했다. 이러한 숭고한 사업이 한 번의 쇼로 끝나지 않고 이어지기를, 그리고 여기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이 부디 큰 복을 받으시길.

하지만 그날 북미정상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을씨년스런 날씨는 쓰린 마음을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8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영혼들에게 한없이 죄송했다. 여전히 우리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음이, 여전히 뼛속까지 사대에 사무친 이들이 권세를 누리는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이 억울하고 창피했다.

북미회담이 결렬된 것과 사대주의가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 이들이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시라. 회담 결렬 후 소위 언론이, 지식인들이, 정치인들이, 사회 원로라는 이들이 어떤 소리를 지껄였는지를.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들은 조선인들이 아니었다. 객관성과 온전한 사실 확인에 앞서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모든 책임을 북에 돌렸고, 이내 화살은 우리 정부에게 쏟아졌다. 그들은 조선인이 아닌 미국인들이었고, 일본인들이었다. 새삼스러운 일이었지만, 난 그들이 지겨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북이 미국과의 협상 중단 가능성을 언급하자,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시 떨어졌고, 그 이유 중 하나가 ‘친북 성향이 강해서’라는 결과를 확인한 순간, 나는 이내 졸음이 쏟아졌다. 분노나 슬픔을 넘어, 그저 마냥 파묻히고만 싶었다.

▲ 장창준, 『북한과 미국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내일을 여는 책, 2018. 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때문에 난 장창준의 책을 나른한 마음으로 다시 읽어나갔고, 이내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그의 뜨거운 마음이 무시당한 것처럼 느껴졌고, 이승만이 다시 우리를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80년 만에 억울한 영혼들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이 땅의 평화는 몇 번의 회담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했다.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평화를 향한 간절함이 여전할 것임을 믿었다. 하지만 이제 난 슬슬 졸리다. 평화는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세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게 다가왔다. 제 정신이 아닌 게다. 무엇을 바라느냐. 도대체 넌.

장창준의 이야기는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게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도, 큰 각오를 다져야 하는 게 이 땅의 수준이자, 꼬라지다. 결국 느끼게 된다. 개자식들을 그대로 살게 내버려둔 결과가 지금의 우리라는 것을.

미국의 국익을, 일본의 국익을 먼저 생각하고 따지는 것들이 대한민국의 1%로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을 윤봉길 의사의 수통 폭탄으로 작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전두환처럼 노쇠한 범죄자들이 이 땅의 젊은이들을 떠나게 한다는 것을 느낀다. 헬조선이 되어버린 이 땅을, 젊은이들은 과연 지켜내려 할까. 지옥을 지키고 싶을까. 이 와중에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근 20년 동안 북을 떠나 남으로 내려와 살고 있는 이들의 수가 3만 명 정도인데, 작년 10개월 동안 헬조선을 떠나 이민을 선택한 이들이 3만이 넘는다는 사실에.

아직 모르겠다. 끝내 이 지겨운 졸음을 이겨내고 다시 까칠하고 사나운 내가 될 수 있을지. 그럴 힘이 남아있는지. 제 밥그릇 앞에 민족도, 평화도, 이웃도 버릴 수 있는 이 재미없는 세상에 내가 다시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장창준과 같은 이들이 헛되어 보일지라도 무모한 바위치기를 계속 한다면, 손에 남아 있는 계란이 한 개도 없을 때까지 끊임없이 바위를 향해 돌진한다면, 난 그들의 편에 설 것임을.

북한과 미국은 죽어도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믿는 이들이 먼저 읽어보길 추천한다. 아님 그냥 죽어버리던가.

아, 망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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