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일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 회장은 지난 1일 창립총회에 대한 설명과 함께 새로운 무인가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남북 미술교류에 대한 열망을 설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북과 교류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의 접근방식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먼저 조사하고 그걸 중심으로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먼저 그쪽에 알려주고 남과 북이 만나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하려고 한다."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카페에서 만난 전영일 조각가와 배인석 화가는 흔히 미술이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 등의 고전장르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시각 표현물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많은 실험이 이루어진 다양한 '시각문화'를 북측과 나누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지난 1일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민시교협, Korean Network for Visual Cultural Exchange)를 창립해 "본 협회는 기나긴 민족분단으로 말미암아 금기시되거나 왜곡되었던 시각문화를 분단해소의 관점에서 폭넓게 접근하여 민족의 미래를 위한 평화적 상호교류에 이바지하고자 한다"는 일성을 세상에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회장을 맡은 전영일 작가는 "시각문화란 광범위한 시각장르를 다 포함하여 표현하는 것으로서 설치부터 행위까지의 예술과 디자인 요소, 거대 구조물, 쇼같은 것을 다 포함하는 확장된 개념으로 이해한다"며 "이미 전 세계적으로 실험을 많이 한 이런 것을 민족 중심으로 풀어보아야 한다. 그런 것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과물을 북에서도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아겠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영역인 미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인 셈인데, 북에서는 미술을 고전적 의미로 분류를 하다보니 지금의 세계 흐름과는 달리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각문화라는 개념으로 좀더 확장해서 분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예를들어 남과 북의 구상력있는 젊은 역량이 함께 모여 여러가지 상품을 디자인해서 판다거나 북의 주민들이 일상에서 향유하는 팬시용품들을 가지고 남의 작가들이 '인민'들과 함께 놀면서 새롭게 창조하는 작업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협회 상임이사로 일하는 배인석 작가는 "우리 사회는 북의 그림을 평가할 때 '당에서 선전 선동을 위해 만들지만 그걸 사다가 집에 붙이진 않기 때문에 미술을 향유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데, 우리가 미술을 시각문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북에서 만든 디자인이나 달력은 생활속에서 충분히 향유되고 있는 문화"라고 설명했다.

또 "갈등이 될만한 일은 후대의 과제로 돌리고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남북이 서로 이질적인 것을 너무 힘들게 합치려 하거나 새로운 것을 급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갈등을 줄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창조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아닐까"라며, "생활속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업그레이드하여 제3의 것을 창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일상에서 향유하는 상품 디자인 등 자료를 한 곳에 모아 함께 궁리하고 쓰면서, 협회 작가들이 직접 교류도 하지만 교류를 원하는 다른 작가들도 불안하지 않고 차질없이 교류할 수 있는 창구역할도 겸해야 한다는 것도 구상중인 협회의 역할이다. 

좀 더 거창한 포부도 있다. 

남북의 미술이 세계 미술시장에 나란히 진출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자는 것은 그 첫 자리에 있다. 남북은 물론 세계의 평화 예술가들이 전쟁을 상징하던 장소에서 대규모 예술작업을 펼침으로써 민족의 평화염원을 시각적으로 전 세계에 보여주자는 것도 이들의 계획과 일정에 포함되어 있다.

'동창리 평화 문화예술특구'를 구상할 수도 있겠다는 기자의 제안은 웃음으로 넘기더니, 북측에서 지난 2016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국가기구로 격상시키면서 내각 산하에 민간교류를 담당하는 '민족사회문화교류협회'를 새로 설립한 일이 자신들의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의 창립을 촉진한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꼭 써달라고 한다.

▲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는 지난 1일 창립총회를 개최해 11명의 창립회원으로 출범했다. [사진제공-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

40대 말, 50대 초의 중견작가들인 이들이 남북 미술교류의 새로운 접근법에 대해 고민한 것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 작가는 지난 2006년 무렵부터 중국 베이징의 798 예술지구를 지켜 본 일부 예술가들이 이곳에 남북 합작 스튜디오를 만드는 꿈을 꾸어 왔으며, 그곳에 남북 작가들이 함께 작업한 결과를 공개하면 이곳을 찾는 세계인들에게 남북의 작품을 보여주고 우리도 거기서 뭔가 해볼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798 예술지구는 중국의 옛 군사기지에 예술가들이 모여 살면서 작업하는 공간으로 짧은 기간에 예술지구로 자리잡으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곳이니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여기에 전통등 분야 숙련기술 전수자이기도 한 전 작가가 지난 2016년부터 베이징 쑹정 예술지구에서 조각 작업을 하면서 한·중교류사업을 하던 중 연길 지역에서 겪은 민족적 경험이 협회 창립에 속도를 더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기존 미술 관련 단체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남북교류사업에 대해서는 우리 성원들이 애착이 많았다. 결론은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서 나가지 않고 그들의 손을 빌어 일을 할 수는 없겠다는 것이었다. 늦었지만 우리 할일에 맞는 우리의 조직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남북교류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을 했느냐를 가지고 우리 스스로 평가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우선 협회를 서울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등록할 예정인데, 감사를 포함해 11명의 회원과 50여명의 위원으로 출발하며 더 이상 회원은 받지 않고 이 인원만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총회를 구성했다.

후원하거나, 교류·협력·홍보·자문·연대를 목적으로 하는 위원, 사업을 함께 하는 회원 아닌 위원들은 더 충원할 계획이고 이들과는 기존 대규모 회원 조직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고 실효적인 의사소통을 보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에는 전 회장과 배 상임이사를 비롯해 김영철 AGI SOCIETY대표, 박계리 홍익대 연구교수 겸 베를린 자유대 초빙교수, 이준희 전 월간미술 편집장, 이채관 와우책문화예술센터 대표, 전승일 오토마타 아티스트, 최금수 네오룩 이미지올리기연구소 소장, 한상정 인천대 불어불문과 문화대학원 교수가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수정-17일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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