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이제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주목받는 이유는 북미관계의 진전뿐만 아니라 꽉 막힌 남북관계에도 숨통이 트일까 노심초사하며 지켜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모든 상황은 달라졌다. 전임 대통령의 정상회담 또는 합의 사항들은 금기어가 되어 거론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후속작업도 흐지부지되었다.”

한때는 민간단체 실무자로 이후는 정부 중앙부처의 공무원으로 북한 어린이 의료협력을 진행해온 귀중한 경험을 가졌지만 10년을 허송세월한 뒤 지난해 5월 다시 세 번째 북한 업무를 맡게 된 김진숙 과장 역시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지난해 떠들썩한 정상회담들이 많았지만 정작 남북 교류협력사업은 아직 본격화되지 못한 상태로 모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만 쳐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 김진숙, 『평화의 아이들』, 북루덴스, 2018.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같은 상황에서 김진숙 과장은 지난 16년 간 자신이 경험한 북한 어린이 의료협력 내용을 기록한 『평화의 아이들』(북루덴스, 2018.11.)을 내놓았다.

“16년 전인 2002년부터 북한을 오가면서 있었던 일들을 이렇게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 나의 글이, 북한에도 나와 같이 숨을 쉬는 내 또래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책은 호기심 많은 청소년보다는 남북 교류협력, 그 중에서도 의료협력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보다 유용한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라는 민간단체 상근자로 2002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그곳 시설을 둘러보고 북측 관계자들을 만난 경험은 불안정한 전기공급 사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추진하는 북측 관계자들의 열의를 동시에 접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북측과의 교류를 통해 저자가 파악한 ‘보건성→도 보건국→시(구역) 보건과’로 이어지는 북한의 의약품 공급체계나 북한 약품들의 품질 검사 결과, 북한과 스위스 합작회사인 ‘펑스제약합영회사’의 ‘펑스약국’의 존재 확인 등은 이 분야 관계자들에게는 하나하나가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대동강구역병원 지원 경험과 북한만의 독특한 의료제도인 호담당의사들에게 왕진가방을 지원한 사례는 보건분야 지원사업에서 각별한 사례다.

“왕진가방이 입소문이 나면서 북한은 대동강구역병원을 포함해서 평안도, 함경도, 량강도, 강원도 등에 분배할 1,600개의 왕진가방을 추가로 요청했다.” 결국 ‘사랑의 왕진가방 보내기’ 캠페인이 벌어졌고, “남이나 북이나 왕진가방은 인기 폭발”이었다. 6개월 만에 1,600개 왕진가방이 전달됐고, 이 운동은 국제적 운동으로 번졌고, 북한의 산악지대를 감안한 왕진백팩과 자전거 지원으로까지 발전됐다.

그러나 역시 본격 무대는 2006년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뒤다. 복지부에서 북한 업무를 맡아 ‘영유아 지원사업’을 담당한 것.

“내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라 스케일이 다르다고 느낀 이유는 체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근거가 되는 법과 예산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며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영유아 지원사업은 사업기간도 5년(2006~2010년)이고, 단순한 영양지원 사업을 넘어 아동사망률과 모성사망률 감소 목표를 위한 ‘종합선물 세트’ 식의 사업을 추진한다.

실제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 보건성 관계자가 직접 참가하고 WHO(세계보건기구)와 우리 복지부 3자가 체계적인 회의를 거쳐 매년 리진료소 600개, 군병원 30곳씩 5년간 단계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의약품지원과 북한 의사와 간호사 재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종합적인 사업이 진행됐다.

남북관계의 악화로 3자협력체에서 철수하게 될 때까지 저자는 이 프로젝트에 복지부 공무원으로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이 프로젝트의 진행 자료들을 확보함으로써 북한의 보건의료에 대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데이터를 축적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공무원으로서 2006년 민간단체들의 영유아 지원사업을 도왔지만 “민간단체 사업이 훨씬 노력이 많이 드는 지난한 작업”이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했다. 민간단체의 협력창구인 민화협을 상대로 보건사업을 설명해야 하고, 북측의 실제적 관심사항과 평양 이외 지역에 대한 부담감 등이 작용하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된 것.

이 외에도 개성공단 내에 민간단체 그린닥터스가 남북 근로자들을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부터 보수정권 하에서 예외적으로 2009년말 북한지역에 발생한 신종플루를 치료하기 위한 타미플루 지원 등의 경험도 기록으로 남겼다.

무엇보다 가슴아픈 경험은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후속으로 역사상 처음 열린 남북 보건회담에 참석해 사리원인민병원 현대화 등 5개항의 합의문을 도출을 지켜봤지만 결국 2008년 정권이 교체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반짝 각광받던 2015년 풍진 백신 지원 경험과 금강산 온정리인민병원 지원 경험도 소중하다. 특히 온정리병원 산부인과에 초음파를 지원하고 백내장 수술을 실시한 장면은 남북 교류와 협력이 얼마나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고 마음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더구나 그 과정에 만난 온정리병원 원장의 재능과 열정까지.

“나는 이럴 땐 정말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다 털어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다 마련해놓고 그래도 부족한 것을 도와달라고 하는데 누가 그걸 뿌리칠 수 있을까.”

약사로서 구로동에서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헌신해온 저자는 북녘 어린이 건강을 위해 박사 학위를 얻게 되고, 공무원으로 변신까지 마다 않았다. “당국자가 되더니 더 뻣뻣해졌구만요” 같은 핀잔도 들어가며...

이제는 ‘대북 지원에 새로운 패러다임’도 고민한다. 남북간 정치상황에 영향받지 않도록 “대북 지원도 국제사회의 ODA(공적개발원조) 절차를 따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의 전환이다. 원조를 받는 수원국 스스로 중장기적 개발협력사업을 추진하는 국제동향에 발맞추자는 것.

나아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DNA는 북한에도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게 하지는 않을까”라며 “같은 말을 쓰는 남한의 전문가들이 자주 북한을 찾아가 경험과 노하우를 나눈다면 북한식 ‘단박 도약’이 아주 어려운 일일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어공’도 10년이 넘어 사실상 ‘늘공’(늘 공무원) 과장으로 승진한 저자도 다시 가슴이 설레이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잘 성사되어 그야말로 한반도의 봄이 오면 남편과 평양 찍고 베를린까지 가보고 싶다”는 봄바람이다.

 

(수정, 24일 01:23)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