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넘게도 나의 서평 코너 이름은 ‘간서치의 둔한 서평’입니다. 여기에서 간서치(看書痴)는 바로 이덕무가 자신을 스스로 조금은 낮추어 부른 별명입니다. ‘책에 미친 바보’라는 뜻이죠.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문인인 이덕무의 별명을 감히 가져다 쓴 무모함으로 항상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일생을 독서와 함께 했던 대학자 이덕무의 고결함을 조금이라도 닮고자 하는 욕심이라는 변명을 해봅니다.

언제는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더니, 이제는 아예 ‘종이책의 위기’를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지도 꽤 되었습니다. E-Book이 보편화되며 들고 다니기도, 보관하기도 쉽지 않은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종이책은 살아남았습니다. 독서인구가 과거에 비해 퍽 줄었다고는 하지만, 평일에도 대형서점엔 사람들이 가득하고, 최근엔 독립출판사, 독립서점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가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국내 출판사의 침체는 오래되었습니다. 제도의 변화와 ‘책 읽는 이’들의 감소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꽤 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지만, 출판시장의 침체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출판사를 차리겠다고 하면 다들 말리는 분위기인 것만은 사실인 듯합니다. 일부 대형출판사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분투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물론 여지없이, 저는 잘 할 수 있는 것, 이른 바 특기가 없는 녀석입니다. 온갖 잡다한 취미는 가지고 있지만, 정작 특기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어렸을 때 밴드 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노래’를 들이밀기도 하지만 이제 그마저 과거의 ‘깡다구’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저 음악은 제 삶과 같이 지내온 친구인 셈입니다.

꾸준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녀석이 그나마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 바로 독서입니다. 책은 현명한 이와 어리석은 이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멍청한 저도 책은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눈 밝고 뛰어난 이들에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깨달음의 시간은 더디기만 하고, 영영 주변을 맴돌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읽어 나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른 바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책의 분야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가오는데 ‘재미’라는 것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렵사리 한 권을 마쳤을 때의 대견함도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책을 귀하게 여기게 되었고, 지금도 전 책을 읽기 전 반드시 책에 제 도장을 찍고, 독서번호를 적을 스티커를 붙이고, 투명 비닐로 조심스럽게 포장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빌려줄 때는 다소 민망하지만, 오랜 습관으로 굳어져 이제는 바꿀 수도 없습니다. 역시나 멍청한 녀석입니다.

▲ 권정원 편역, 『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선』, 미다스북스, 2011. 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제 독서에 큰 영향을 미친 이가 바로 이덕무입니다. 그는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학문과 문학 활동을 통해 참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려 노력했습니다. 그 역시 성인이 아니기에, 부족한 점이 있었고, 때론 흔들리기도 했지만,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결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규장각 검서관으로 일할 때에도 그는 뛰어난 재능과 성실함으로 수많은 책들을 펴내고 정리했습니다. 그의 사후 정조의 명으로 그의 문집을 만들어낼 정도로 그는 맡은 바 책임을 다했음을 인정받았습니다. 선비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는 지금이지만, 저는 감히 그를 진정한 선비 정신을 지녔던 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대학자와 한낱 서생인 저를 비교하거나 견주는 것은, 물론 말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평생을 노력한다 해도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의 재능은 물론 근면함조차 저에겐 아득하게만 보입니다. 매서운 겨울, 방안으로 들이닥치는 찬바람을 막고자 병풍을 두르고 결국 책을 이불삼아 살았던 이덕무. 그의 산문에는 이러한 그의 성품과 삶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그의 정신이 어느 새 죽비가 되어 제 머리를 내려칩니다. 넌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연암 박지원은 이덕무를 그리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친구가 저 세상으로 떠난 뒤 나는 이리저리 방황하고 울먹이면서 혹시라도 이덕무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까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고결한 인품으로 자신의 글에서 그윽한 향기를 만들어낸 문사 이덕무. 저는 혼탁해진 머리를 씻기 위해 늘 그의 글을 가까이 두고자 노력합니다.

한편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항상 근엄하고 진지한 학자만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글의 곳곳에 그의 장난기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러한 글입니다.

훤칠한 키의 장부(丈夫)가 내 귀에 대고 “너는 한숨짓는 것을 버려라” 하기에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성내는 버릇을 버려라” 하기에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했다. “시기하는 것을 버려라” 하기에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 했다. “자만심을 버려라” 하기에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 했다. “조급한 성질을 버려라” 하기에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 했다. “게으름을 버려라” 하기에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 했다. “명예에 대한 마음을 버려라” 하기에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 했다. “서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려라” 하기에, 속으로 어이가 없어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저는 그럼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저를 귀머거리와 장님으로 만들려 하십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그 장부가 웃더니 나의 등을 어루만지며 “잠시 자네를 시험해 본 것이라네”라고 대답하였다. -『선귤당농소』,『이목구심서』중

이덕무는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옛 선현들의 일화를 들며 “이 팔뚝을 책상에서 서른 해 동안 떼지 않았더니 그제야 도(道)에 진전이 있었다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 간신히 정신을 기쁘게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더디기만 하고, 식견을 넓히는 것은 아직 멀었습니다. 게다가 제 팔뚝은 한없이 얇기만 합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어디에도 제 잘났다는 이들은 넘치는데, 부끄러워하는 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남을 헐뜯고 끝내 커다란 상처를 주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보신을 추구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진중함보다는 가벼움이 오히려 우대받는 세상입니다. 너도 나도 자신을 경계하기 보다는 오히려 남을 경계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에서 이덕무의 인품과 사상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역시나 한 없이 어리석은 제게 이덕무는 일생 크나큰 스승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그에게 닿지 않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태산은 그저 그 자체로 커다란 가르침을 주기 때문입니다.

어느 새 설이 다가옵니다. 올해도 벌써 한 달을 흘려보냈습니다. 간서치 이덕무가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자수잠(自修箴)을 읽으며 한 해를 다시 미련하게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간서치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이가 되도록, 그렇게 바보처럼 읽어나가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절도 있게 행동하겠습니다!

분한 마음 생길까 경계하고 욕심이 생기는 것을 막아라.
허물을 고쳐서 착한 행동으로 실천하라.
이미 잘못을 뉘우쳤으면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이미 욕심을 막았으면 그 마음 변치 말며
이미 나쁜 버릇을 고쳤으면 다시는 하지 말고
이미 착한 행동으로 옮겼다면 변하지 말라.
이것으로 스스로 수양할 수 있을 것이니
죽도록 변치 말고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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