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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아이들아, 이 땅의 꽃들아<간서치의 둔한 서평(131)> 윤문영의『평양에서 태양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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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4  12: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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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을 넘어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고, 기차와 버스를 타고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날을 꿈꿔봅니다. 통일은 사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남의 철수가 평양의 주체사상탑에 오르고, 북의 영희가 서울의 남산타워에 오르는 날이 오면 그것이 곧 통일의 시작입니다.”- 『평양에서 태양을 보다』중

어쩌면 이 글이 독자들에게 닿을 때쯤이면 이미 새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2018년, 한없이 게을렀고 성실하지 못했던, 게다가 글마저 보잘 것 없었던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낌없이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그저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다. 그리고 여전히 척박한 이 땅에서 묵묵히 통일과 민족화해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통일뉴스>의 성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문자 해촉’ 통보해주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오후 1시 48분. 장소는 마포의 일터다. 아침에 밥을 통 먹지 않고 유튜브만 쳐다보는 딸아이를 혼내고, 훌쩍거리는 녀석을 남겨둔 채 일터로 나와 버렸다. 당연히 딸아이의 눈물이 내내 맘에 걸리고, 미안하기만 하다. 어제부터 슬슬 열이 올라, 해열제라도 먹이려면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도통 먹질 않아 그만 버럭 화를 내버렸다. 아니, 어쩌면 어제 제대로 아이 병간호도 하지 않고 잠만 냅다 자버린 나에게 화를 내는 아내에게 나버린 심술을 대신 딸에게 쏟아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사실 그랬다. 때문에 딸아이에게 더 미안하고 애틋하다.

이제 새해가 되면 딸아이는 일곱 살이 된다. 어느새 이리 훌쩍 자랐는가, 신기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미안하기만 하다. 그동안 제대로 아빠 노릇이나 했는지 돌아보면 할 말이 없어지고, 담배만 찾게 된다. 사는 게 그렇다. 늘 부모님과 아내와 딸아이, 그리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 무슨 위대한 일을 한다고, 주제넘게 곁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 밥을 목구멍에 넘긴다. 염치없는 것은 저도 알지요.

흡연 경고 그림이 더 살벌하게 바뀌어도, 담배를 입에 물며 글을 쓰고, ‘새해엔 꼭 금연하고 운동을 하겠다!’는 연례행사도 멈춘 지 오래다. 심지어 너무나 사랑하는 딸아이가 ‘담배 자꾸 피우면 코에서 방귀만 나와!’라고 협박해도 도통 듣질 않는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세상에 대한 의혹이 사라져야 한다는데도 난 지금도 스스로 의혹을 안고 사는 셈이다. 하물며 세상의 의혹을 풀어낼 깜냥은 바라지도 않는다. 여전히 형편이 없이 사는 녀석이다.

2018년은 어느 해보다 조바심을 안고 살아낸 것 같다. 연말 그 흔한 송년회에도 몇 차례 얼굴을 들이밀지 못했다. 일터에서 내가 처리해야 할 사업들이 연말까지 몰려 정신 차리지 못한 것도 있고, 스스로 나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한 것이 연말이 갈수록 더 심해진 것 같다. 무엇이든 내가 먼저 인정하고 마음이 놓여야 일 하나를 온전히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대충 사고만 치지 않고 마치면 끝낸 셈 쳤다. 나에 대한 기대치와 기준이 그만큼 낮아진 것이리라.

그러다 아주 작은, 어쩌면 큰 사건을 겪게 되었다. 먼저 그동안 때려치우지 않고 이 동네 언저리에서 버티어 냈다는 점을 나라가 높이 사서(그렇게 믿고 있다), 큰 상을 받게 되었다. 훈장이라는 것을 난생 처음 받은 것이다. 조국통일에 큰 이정표를 세운 대업을 이룬 것도 아닌데, 난처하고 부끄러웠다. 그냥 오래 버텼으니 이거라도 받아라, 하신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내 무참했다. 이 작은 훈장으로 딸아이의 목구멍으로 무엇을 넘겨줄 수 있을까 생각한 내가 어이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은, 지난 12월 15일부터 닷새간 중국 섬서성에서 치룬 동북아산림협력국제회의였다. 내가 일터에서 맡은 업무 중 남북산림협력사업이 있다. 원래는 이 업무를 전담하는 이가 있어야 하나, 지난 10여 년 동안 남북관계가 경색된 탓에, 제대로 된 월급을 챙겨줄 수 없어 내가 본의 아니게 겸직을 맡아왔다. 그리고 2014년~2015년, 2017년에 이어 네 번째로 중국에서 국제학술회의를 치르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난 산림분야에 대해 요만큼의 전문지식도 갖추지 못했다. 나는 북한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도 사회언론분야를 공부했다. 사방사업이나 양묘 기술, 병해충방제나 ‘조선의 창성이깔나무 림농복합경영의 합리적 구조모형결정’ 따위를 알리 만무했다. 그런데도 4년 동안 남북의 산림전문가, 중국, 일본, 독일, 몽골 전문가들이 모여 진행하는 학술회의를 꾸려왔다. 주변의 눈 밝은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고, 난 실무적 업무나 회계 그리고 어르신들 수발(의전)을 맡아왔다.

그런데 뜻밖의 선물을 바로 여기에서 받았다. 2017년 세 번째 회의 때 북측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이다. 북측 산림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자 김 선생이었다. 1977년 동갑내기인 김 선생과 짧은 닷새 동안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헤어질 때 조금은 울컥해지는 감정을 갖게 될 정도로 친해졌다. 김 선생과 2017년 12월 헤어질 때 나눈 대화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다.

“아,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사진이라도 서로 교환하면 좋겠는데, 내가 휴대폰으로 찍은 것을 메일로 보내줄 수도 없고….”

“뭐 지금 나누지 못한다 해도 어떤가. 우리 다시 만날 때 염 선생이 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을 뽑아서 가져다주면 되지. 그카기(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다시 보자고. 꼭.”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2018년 12월에 이뤄졌다. 이번 학술회의를 위해 참석한 북측 인원 중 김 선생이 다시 포함된 것이다. 그동안 학술회의에 한 번 참석한 북측 인원이 재 참석한 경우가 없었기에, 내심 포기하고 있었는데 김 선생이 처음으로 다시 행사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야, 이거 그 사이에 많이 늙었구만 그래, 염 선생!” “멉니까, 김 선생은 철들지 않는 게 그저 여전히 풋내기인가?”

생각해보면 그동안 적지 않은 북측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들과는 사업 관련 이야기만 나누었을 뿐, 친구는 아니었다. 물론 대부분 내가 만난 이들이 나보다 훨씬 연장자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감히(!) 분단된 한반도 현실에서 남북 사람들끼리 친구가 무슨 말인가.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위험천만한 일이 아닌가, 라고 스스로 위로하곤 했다.

그런데 김 선생은 아니었다. 77년 뱀띠 동갑내기 친구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살고 있는 유일한 나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린 작년(2017년)보다는 더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식 자랑이었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인연을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내 딸아이와 같은 나이의 아들 하나를 김 선생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둘 다 아빠와 같은 뱀띠! 나와 김 선생은 “뭐 이런 인연이 다 있나!” 하며 한 차례 더 술잔을 나누었다.

농담으로 내가 건넸다. “이거 통일이 되면 우리 자식들을 혼인이라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김 선생의 입에서 무엄한(!) 발언이 튀어나왔다. “아, 그건 좀 생각을 더 해봐야갔어. 우리 아들이 워낙 인물이 빼어나서 말야.” “뭐? 아니, 이 친구가 말이 되는 소리를! 우리 딸이 얼마나 귀엽고 예쁜데, 아들 사진이라도 보여줘 봐! 그래야 내 김 선생의 말을 인정하든지 말든 하지!”

내 휴대폰 배경화면을 통해 이미 내 딸의 귀여운 얼굴을 확인한 후 김 선생이 던진 위험천만한 멘트였다. 아니,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들의 사진을 가져 오지도 않은 것 아닌가? 그럼 내가 어떻게 아들이 잘 생겼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냔 말이다. 결국 혼인협상은 난항에 빠졌고, 나는 그에게 아들이 정말 잘 생겼는지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증거를 요구했다. 결국 협상 실패! 우리는 후속회담을 기약하며 크게 웃으며 다시 술잔을 나누었다.

그리고 우린 다시 헤어졌다.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우린 서로에 대해 여전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당연하다. 우리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집 주소, 이메일, 전화번호 등,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저 건강하라고 했다.

동시에 우리는 서로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김 선생의 아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늦둥이라는 점, 본인 말로는 아주 근사하게 생겼다는 점, 그리고 승진이 오랫동안 되지 않아 오히려 이번 행사에 다시 올 수 있었고, 덕분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점도.

그도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딸이 누가 뭐래도 가장 예쁘고 귀여운 딸이라는 점, 나 역시 결혼 후 늦게 얻은 귀한 딸이라는 점, 그리고 아빠를 닮아 성격이 까칠까칠하다는 점까지.

   
▲ 윤문영 글·그림 / 정창현 감수, 『평양에서 태양을 보다』, 내인생의 책, 2018. 12. [자료사진 - 통일뉴스]

2018년 12월 30일,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평양에서 살고 있는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내 딸보다 조금은 더 큰 아이는 남쪽의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선생님,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남쪽의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 그 언젠가를 꿈꾸고 있다.

오랜 분단에 익숙해진 우리는 북녘이라는 단어와 친구라는 단어를 이어붙일 수 있는 상상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는 북에 살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온한 생각이고, 위험한 상상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 자체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비정상의 상황인지 이제는 깨달을 때가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더 이상 상상력의 감옥에 갇혀 살아갈 수 없음을 외쳐야 한다. 김 선생의 잘생긴 아들 녀석과 천방지축 우리 딸이 서로 만나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책이 바란 것처럼 우리 딸이 북녘 땅을 자유롭게 찾아가고, 김 선생의 아들이 남녘 땅을 찾아와 놀 수 있어야 한다. 우린 그 시작을 이제서나마 천천히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올 한 해를 돌아본다. 보잘 것 없었고, 한반도 구성원의 행복과 세계 평화에 기여한 것도 없었던 한 해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 땅의 평화와 남북의 화해를 위해 아주 조금은 내 힘을 보탰던 해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김 선생과 내가 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노력한 해였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행복은 곧 우리 아이들의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분단된 이 땅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기로 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헌신과 아내의 헌신과 딸아이의 존재에 부끄럽지 않은 새해를 만들어보겠다는, 어쩐지 쉽지 않아 보이는 목표를 세우기로 했다. 그렇다면 일단 먼저 담배를 줄여야겠지, 술도 줄이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울어야겠지. 더 많이 사랑해야겠지.

다시 한 번, 한 해 동안 나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한다. 그리고 여전히 조급하고, 여전히 어리석고, 여전히 어리지만, 그럼에도 다시 가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느리더라도, 돌아가더라도, 때론 울더라도 가보겠다. 그 길의 여러 눈 밝은 분들의 행복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다. 내 예전 보스이자,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나의 보스이신, 그리고 이 책의 감수자이기도 한 정창현 대표에게 특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8년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다. ‘맡은 책임은 무겁고, 이를 실천할 길은 어렵고 아득하다’는 뜻이다. 적폐청산과 더불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사명을 갖고 출범한 현 정권이 여전히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일 테다. 개혁이 쉽다면 그건 개혁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이 땅의 평화를 심었다는 점에서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나머지는 더 분발해주길 바란다.

증자의 말을 위로삼아 건넨다. 이것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이렇게 살아내 보겠다. 다들 행복하시고, 행여 불행이 와도, 떳떳하고 치열하게 맞이하자. 아, 김 선생! 내년에도 승진은 하지 마시라우!

“덕을 임무로 삼았으니 무게는 견딜 만하고, 죽을 때까지 할 일이니 진전이 더디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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