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강원도연합 회원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이후 평화의 물결이 시작 되었음에도 재일동포들은 아베 정권의 탄압과 차별에 싸우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 그리고 분단의 역사에 대해서 학교 안에서 배운 것보다 학교 밖에서 배운 것들이 더 많다. 할머니의 어머니 이야기, 교과서가 아닌 책,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 등에서 말이다. 한국의 교육에서 역사의 중요성은 점점 밀려나고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역사 공부를 하기 힘든 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1945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 2018년 지금 해방 된지 70년이 지났지만 일본의 식민지배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본으로 강제징용 되어 차별 받고 탄압 받던 재일동포들이 해방 된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다. 그런 우리 동포들이 분단으로 인해 더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재일동포들이 일본으로부터 받는 차별과 탄압에 침묵하지 않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동포들을 만나러 갔다.

▲ 지바조선초중급학교 복도 게시판에 붙어있는 문구이다. [사진제공-김민아]

2018년 10월의 마지막 날, 재일동포들을 만나기 위해 2시간이 넘는 시간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갔다. 예상보다 따뜻한 날씨가 동포들을 만날 기대를 더 부풀게 만들었다. 공항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지바조선초중급학교(이하 지바학교)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아이들이 창문에 쪼르르 서서 반갑게 인사해 주는 모습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계단에 서서 교실 문 뒤에 숨어서 수줍게 인사하는 학생들이 마냥 반가웠다.

지바학교는 1946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 된 이후에 창립했다. 과거 학생수가 400여명이었지만 지금은 66명으로 매년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다. 과거에 지바학교에서 열린 미술전람회에 학생 작품 중에서 위안부를 그린 그림이 걸려있었고 예술발표회에서 북녘의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조선의 여성들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가 고통 받았던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임을 강조했고, 보조금 지급 중단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말하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학생들의 권리와 교육권을 앗아가는 것은 한 나라의 정부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고 안정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에 곧 회복 될 줄 알았던 보조금 지원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러한 조선학교의 문제와 역사를 목이 쉬어 가면서 열심히 이야기 해주던 교장 선생님의 눈가에는 눈물 맺혀있었다. 교장선생님의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감히 이해할 수 없지만 눈물과 쉰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환영의 인사로 아이들의 노래와 악기 공연은 가사와 멜로디에서 많은 감정들이 밀려왔다. 아쉬운 이별의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학교 복도에는 <미래를 향하여 나! 너! 하나>라는 게시판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재일동포들을 만나러 온 이유였다. 첫 날 동포들과의 만남은 예상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이었다.

▲ 조선대학교 교내에 있는 도서관이다. [사진제공-김민아]

방문 이틀째 되는 날에 간 회색 건물의 조선대학교의 첫 인상은 투박했다. 하지만 정문을 지나 학생들의 “안녕하십니까”라는 한 마디에 따뜻한 공기가 학교 주변을 감쌌다. 조선학교는 국어 강습소로 시작해서 현재 유치원 38개, 초급부 53개, 중급부 33개, 고급부 10개, 대학 1개가 운영되고 있다. 그 중에서 조선대학교는 1956년 4월에 창립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조선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후배들을 위해 2013년부터 문부과학성(이하 문과성) 앞에서 조선학교의 고교무상화 적용을 요구하는 “금요행동”이라 부르는 항의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학생들은 조선대학교에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 매주 금요일 4시에 문과성 앞에서 금요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금요행동은 200여 차례를 훌쩍 넘겼다. 조선대학교 교내 곳곳에서 학생들의 항의행동들의 실천과 의지가 보이는 글귀들이 보였다.

조선대학교에서 학생들과 귀중한 시간을 갖게 해주셨다. 학생들과 직접 얘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셨다. 밝고 수줍은 많은 학생들이었다. 만약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고 조선이 분단되지 않았다면 나와 같은 교실에서 같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친구였을 것이다. 술잔을 부딪치며 미래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는 친구였을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고 나니 여러 가지 감정들이 밀려왔다.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 중의원제일의원회관 제 3회의실에서 조선학교를 탄압하는 아베 정권 규탄 국제 선언 발표 기자회견이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김민아]

중의원제일의원회관에서 가장 중요하고 긴장 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기자회견은 참가단 중 몇 분들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일본의 기자 분들의 질문을 받았다. “한국은 왜 총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지원을 하나”라는 질문이 들어왔다. 이에 참가단의 여러 답변 중에서 “일본인으로써 반대로 생각해 보아라. 일본 국민들이 외국에 강제징용 되서 긴 시간 동안 차별 받고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답변이 있었다. 기자의 질문 속에서 일본이 남녘과 북녘의 사이가 당연히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우문현답이었다.

이후 문과성, 외교부 등 여러 단위 관계자들이 우리의 요구를 듣기 위해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외교부에게 “북녘으로 수학여행을 다녀 온 아이들이 기념품을 사왔는데 공항에서 전부 빼앗겼다. 이에 대해서 듣고 싶다”라는 질문에 외교부는 “자세한 것은 내부 사정이라 얘기 할 수 없고 법률상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담담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일본 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구상만 갖추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온듯했다.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당연한 교육의 권리를 요구했지만 반대편에 앉은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의 요구를 듣지 않는 다는 것을 명확히 눈앞에서 본 기자회견이었다.

10월 30일, 동포들을 만나기 하루 전날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제외에 대한 위법을 소송한 재판이 기각되었다. 실망도 있었지만 동시에 더 긴장되고 책임감이 느껴졌다. 일본 아베 정부의 학생들을 이용한 치졸한 정치와 헤이트스피치, 학생 교복에 칼질을 하는 등 일본에 우익단체들의 폭언과 폭력 등 조선학교의 차별과 탄압은 계속 되고 있다. 그리고 군마현 강제징용탑 철거에 대한 재판도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과거를 지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 금요행동 11차 전여농 참가단이 조선대학교 교내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제공-김민아]

조선대학교 학생의 발언 중에서  “우리는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이길 때까지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발언이 있었다. 정의라는 것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들은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악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을 때 생겨난다. 스스로 생각하고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학교에도 고교무상화 제도를 적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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