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유엔사령부(유엔사) 특별고문 이문항 선생은 2001년에 발간한 역작 <JSA-판문점(1953-1994)>에서 “서해와 동해상에는 ‘군사분계선’이 없고,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무장화’되었고, 또 ‘판문점’엔 ‘심판’이 없다”고 갈파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정전협정이 준수되고 있지 않거나 또는 정전협정을 임의로 해석하고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정전협정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역설적인 언명이 마치 경구처럼 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중에서 한두 개는 바뀔 것 같습니다. 정전협정을 지키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지난 10월 중에 남북과 유엔사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지뢰를 제거한데 이어 초소와 병력·화기의 철수 작업도 마무리했습니다. 이어 남북, 유엔사가 ‘3자 공동검증’을 통해 인력과 무기 등의 철수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남과 북의 정상이 지난 9월 19일 평양에서 합의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군사분야 합의서)에서 약속한 JSA 비무장화가 완료된 것입니다. 당시 청와대가 이 군사분야 합의서를 두고 “사실상 불가침합의서”라고 규정했을 정도이니 그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 판문점 JSA를 비무장화하기 위해서는 유엔사, 즉 주한미군사령부의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남북, 유엔사가 ‘3자 협의체’를 구성해 협의를 해왔습니다. 이를 두고, 청와대 측은 “남북한 군사합의서에 남, 북, 유엔사 3자 협의체라는 언어를 사용했고 이 부분은 매우 의미가 높다”고 강조했습니다. 남북이 한반도 군사적 긴장완화를 주도하고 유엔사가 이에 협조하는 형식이라는 것입니다.

빈센트 브룩스 유엔군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도 남북과 3자 협의체를 구성해 JSA 내 비무장화 작업을 지원한 것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것이 “유엔사와 북한군 간의 현존하는 군사정전위원회 체제에 부합하는 것”이며, “남북 군사합의서 이행을 위한 남북 군사대화와도 연결됐다”는 설명입니다.

JSA 비무장화가 완료됨에 따라 관광객의 자유왕래가 가능하게 됐습니다. JSA를 방문하는 양측 민간인과 관광객, 외국 관광객 등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JSA 남북 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됩니다.

또 JSA 지역에서 공동경비를 서는 남북 인원 각 35명은 총기를 휴대할 수 없게 됩니다. 비무장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경비근무 인원들은 노란색 바탕에 ‘판문점 민사경찰’이란 파란색 글씨가 새겨진 넓이 15㎝의 완장을 왼팔에 차게 됩니다. JSA를 방문하는 민간인 등과 경비 인원을 구분하기 위한 조치인 셈입니다.

이렇게 보면 위의 이문항 선생이 언명한 △‘군사분계선 없는 서해와 동해상’, △‘비무장지대의 무장화’, △‘심판 없는 판문점’ 중에서, 두 번째는 ‘JSA의 비무장화’에 따라 점차 가능하게 되었고, 세 번째는 이번 ‘남북, 유엔사 3자 협의체’의 경우처럼 판문점에 ‘새로운 심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첫 번째인데, 이는 이미 실체 없는 북방한계선(NLL) 논란으로 남북 사이에 또는 남측 내에서조차 몇 번이고 홍역을 치른 바 있습니다. 그런데 NLL 문제도 ‘군사분야 합의서’에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대책을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나와 있듯이, ‘군사분야 합의서’를 이행하면 해결될 사안입니다.

이러는 와중에, 특히 남북은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11월 1일 0시부로 지상, 해상, 공중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5일에는 남북이 한강하구 공동이용을 위해 공동수로조사를 개시했습니다. 모두가 정전협정에 지키라고 나와 있는 사안들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JSA 비무장화’, ‘육해공에서 적대행위 중지’ 그리고 ‘한강하구 공동조사’ 등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남과 북이 소리 소문 없이 아주 은밀하게 공조를 통해 정전협정을 지키면서 사실상 한반도에서 전쟁의 불씨를 하나씩 제거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전협정을 준수하면서 종전선언의 필요성에 더 근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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