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련 / ‘통일뉴스 백두대간종주대’ 단장

일자: 2018년 8월 26일
구간: 생달리 -차갓재-대미산-부리기재-박마을
산행거리: 11.75km(접속구간3.9km)
산행시간: 6시간 29분(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산행인원: 12명


 

▲ 대미산에 운무가 피어 오르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오미자가 익어가는 안생달로

7월 중순부터 계속된 무더위가 8월 중순이 넘어가도록 식을 줄을 모른다. 태풍 소식에 부디 바람 피해 없이 비만 적당히 몰고 와 가뭄과 무더위를 일시에 몰아주기를 누구 할 것 없이 간절히 바랐다.

제주와 남녘에 많은 피해를 준 태풍 솔릭은 예상과 달리 중부내륙엔 소소한 비만 뿌린 채 지나쳤다. 무더위에 진저리친 뒤라 산행일 비 예보가 싫지만은 않다.
 
꾸물꾸물하던 하늘은 괴산 휴게소에 정차했을 때 한바탕 소나기를 퍼붓는다. 여지없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문경새재 IC를 벗어날 때쯤 도로 위에 물기가 없다.
 
생달리로 가는 여우목로는 죽령에서 하늘재와 문경새재를 잇는 경북 오지의 핏줄 같은 길이다. 길옆으로는 대미산에서 발원하여 조령천으로 흘러드는 신북천이 한동안 따라온다.

여우목로는 날머리 박마을과 천주교 성지 여우목마을 이정표을 지나 고도 620m의 여우목 고개를 넘는다. 또아리를 튼 도로를 내려와 좌측으로 난 소로를 타고 오르면 왼편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산자락엔 오미자 덩굴이 지천인 안생달이 자리 잡고 있다.
 
대미산과 황장산 사이에 자리 잡은 안생달은 문경에서도 최북서쪽에 위치하는 오지 중에 오지다.

생달리’는 ‘산다리’에서 유래한다. ‘산다리’는 산과 달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두메산골이라는 뜻이다. 그 ‘산다리’가 ‘생달이’로 변음하였고 ‘생달이’ 중 안쪽에 있어 ‘안생달’로 불리운다.
 

▲ 들머리 안생달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비를 맞으며 출발하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시원한 소낙비 그리고  소박한 이름의 작은 차갓재

오락가락하던 빗줄기가 순간 소나기로 돌변하고 대원들은 색색의 우의를 입고 산행 길을 준비한다. 강남순 대원은 그 와중에도 어느 틈엔가 와인피플에 들러 대원들을 위해 오미자와인을 구입해 온다.
 
작은 차갓재로 오르는 길은 한적한 포장도로가 잠시 이어지다 숲길로 접어든다. 빗줄기는 차츰 잦아들고 30분정도 걸었을까 조금씩 땀이 이마에 맺히는가 싶었는데  작은 차갓재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구간은 접속구간이 들머리와 날머리 모두에 있다. 접속구간이 길면 난감해 하면서도 각오를 다잡곤 하는데 안생달에서 작은 차갓재로 오르는 접속구간은 몸 풀기에 최적일 정도로 적당한 길이다.

다음 고개인 차갓재 너머 명전리에는 차갓마을이 있다. 차갓재는 연이어 고개가 나온다는 뜻도 있고, 차갓마을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 작은 차갓재로 오르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대간 능선을 향해 오를 때 마을이 없는 도로에서 산행을 시작할 경우와 자연부락을 지나 오를 경우 느낌이 다르다. 마을과 오솔길 그리고 고개는 낭만과 추억 같은 아스라한 서정을 불러온다.
 
고개에 올라설 때마다 반대쪽으로 넘어가는 길의 흔적을 찾아보곤 한다. 대부분 희미한 자취만 있거나 길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수풀로 덮여 있다.

지난 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고개들은 이제는 등산로 이정표의 역할만 할 뿐이다. 이것은 고개의 숙명이다.

한때 권력이었던 고개는 더 빠르고 넘나들기 좋은 고개가 열리면 이전의 고개는 인간의 시간에서 자연의 시간으로 빠르게 변모한다. 하늘재가 문경새재에, 문경새재가 이화령으로 힘의 추가 넘어간 것처럼...

자연의 숨결이 가득한 숲속으로 
 
작은 차갓재에서 대미산 가는 길엔 남한 내 백두대간 중간지점을 알리는 곳이 연이어 두 지점 나온다. 한 곳은 차갓재에 돌에 새긴 표지석이 서 있고 그 다음엔 돌 위에 얹어놓은 표지석이 있다.

전용정 대장의 말에 의하면, 산림청에서는 벌재 근방을 중간지점으로 발표하였단다. 어쨌거나 문경 그중에서도 벌재와 대미산 사이 어디쯤일 것이다.

남한 내 중간지점 표지석을 보는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다. 하루라도 빨리 남북간 백두대간이 연결되어 통일된 백두대간의 모습이 그려지는 그날을 간절한 마음으로 손꼽아 본다.
 

▲ 이 구간만 세번째로 지난다는 김명한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중간지점까지 유일한 완주자 이석화 대원이 어서 따라 오라는 듯.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두 번째 표지석에서 모두들 강남순 대원이 선물한 오미자 와인을 한잔씩 마신다. 쌉쌀한 맛이 감칠맛이 있다. 산에서 마시면 그 무엇이 맛이 없겠냐만 이 고을에서 직접 재배한 것으로 만들었다니 느낌이 새롭다.

▲ 두번째 중간지점에서 쌉쌀한 와인 한 잔.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오미자 와인을 선물한 강남순 대원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숲속은 시원할 정도로 청량하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숲길을 걷다가 맞춤한 안부에서 점심을 한다.

어김없이 오늘도 강남순 대원의 밑반찬은 모두의 입맛을 돋운다. 하늘도 이 시간만큼은 심술을 부리지 않고 점심을 마칠 즈음이 되서야 빗줄기를 다시 내린다.

▲ 즐거운 점심시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나무와 수풀로 둘러싸여 조망은 없지만 소나무와 떨어진 솔잎들로 은은한 솔내음이 가득하다. 사람의 손때가 덜 간 숲속의 길은 도심의 무더위에 지친 대원들에겐 더 할 수 없는 치유의 공간이다.

이 순간엔 번잡한 고뇌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DNA에 잠재하고 있는 자연성이 깨어난다. 잘 정비된 등산로가 아닌 거칠고 야성이 가득한 숲길을 걷는 묘미는 백두대간이 아니면 느껴볼 수 없는 경이로운 기쁨이다.

▲ 숲속길을 걷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길섶에 핀 야생화.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길섶에 핀 노란 야생화.[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간간이 산짐승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가 움푹 패어 드러나기도 하고, 수풀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진 길은 쓰러지고 꺾어진 거목들로 연이어 가로막혀 있다. 햇살에 드러난 봉우리 근처엔 키를 넘는 잡풀들이 팔과 얼굴을 할퀸다.

▲ 쓰러진 나무 밑으로 빠져나오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김익흥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중간 중간 빗물을 머금은 내리막에서는 엉덩방아를 찧는 대원들이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암석이 거의 없는 흙산이기에 넘어져도 부상을 당할 염려는 없다지만 어린애들처럼 좋아하는 건 대체 뭐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고 민첩한 오동진 후미대장과 다부진 이계환 대원은 똑같이 벌에 쏘이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오랜만에 참여한 김익흥 대원도 뒤질세라 따라 찧는다. 엉덩방아의 달인 김성국 대원도 아무 일 없는데 웬 일들이야 했더니 앞서가던 김성국 대원 왈 “벌써 미끌어졌어요.”

어머니의 푸근함과 아버지의 인자함이 물씬한 대미산을 향해

문수봉 갈림길까지 오르는 길이 다소간 경사가 있을 뿐 대미산 오르는 길은 유순하다. 문수봉 갈림길에서 대미산은 좌측 7시 방향으로 심하게 틀어야 한다.

백두대간 리본이 없었으면 문수봉까지 갈 수도 있는 요주의 지점이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쓰러져 썩어가는 이정목이 자연의 세월을 말해준다.

▲ 문수봉 갈림길에 나뒹구는 이정목 잔해.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이미 문수봉 갈림길의 고도가 대미산과는 60m 정도밖에 나지 않아 대미산까지는 비교적 무난하게 오른다. 하산하였을 때 박마을에서 바라본 대미산의 정경도 오르는 능선에서의 느낌처럼 푸근하고 인자한 모습이다. 그래서인가 정상석도 작고 소박하면서 운치가 있다.
 
정상 부근이 검푸른 눈썹처럼 도드라져서 처음엔 검고 푸른 눈썹의 의미를 지닌 대미산(黛眉山)이라 하였는데 후에 퇴계 이황 선생이 아름답고 크다는 뜻의 대미산이라 칭송한 이후로 현재까지 대미산(大美山)으로 불린다.

▲ 대미산 정상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대간팀에 새로 합류한 김태현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대미산 정상엔 여우목 마을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조선말 관원의 눈을 피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문경새재로 가지 않고, 여우목 고개에서 대미산과 꼭두바위봉을 넘어 관음계곡과 하늘재를 지나 마패봉 뒤편 지름재를 거쳐 충주방면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대미산 정상서 부리기재로 방향을 트니 잠시나마 조망이 터진 곳이 나타난다. 저 멀리 여우목 고개 너머 운달산줄기에 운무가 피어오른다.

▲ 운달산에 운무가 피어 오른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빗줄기 벗 삼아 다시 박마을로

대미산까지 오르는 동안 잠잠했던 빗줄기는 정상에 이르자 다시 흩뿌린다. 빗줄기는 하산하는 내내 우의 밖으로 드러난 바지 하단과 등산화를 흠뻑 적신다. 부리기재에서 박마을로 하산하는 길은 초반이 급경사지만 한번 지났던 곳이라 그런지 빗속에서도 모두들 차분하게 잘 내려간다.

▲ 하산에 앞서 부리기재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마을 못 미쳐 계곡에 도달하였을 땐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고 모두들 비에 후줄근한 모습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후미가 안 오길래 걱정했는데 유유자적 걸어 왔노라며 비에 함빡 젖었음에도 밝은 표정이다.

아마도 지난 번  박마을 민가에서 하산주로 마셨던 막걸리와 시원한 맥주를 떠올리며 힘든 것도 잊고 내려온 것은 아니었을까?

▲ 비에 흠뻑 젖은 채로 후미를 기다리는 이계환, 김성국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드디어 하산, 웃으며 숲을 빠져나오는 이민우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내려선 박마을은 한 달 전과 사뭇 달랐다. 푸른빛을 띠던 사과는 붉게 변했고, 불그스름하여 열매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던 오미자 덩굴은 온통 짙은 선홍빛을 띠고 있다.

누런 담배잎이 펄럭이던 곳엔 벌써 잎을 걷어 들이고 남은 줄기와 못 쓰는 이파리들만이 쓸쓸하게 남아있다.

▲ 박마을 오미자 덩굴 앞에서 심주이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 했다. 탄광산업이 쇠퇴한 이후 오미자와 관광으로 눈을 돌린 문경시의 노력에 문경의 오미자는 전국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문경은 오미자의 고을이 되었다.
 
25구간 대야산 산행 때 처음 발을 디딘 문경도 어느덧 다음 구간을 끝으로 작별한다. 문경은 가장 많이 백두대간을 품고 있는 고장이다. 석탄산업과 문경새재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백두대간을 통해서 살아있는 문경을 만났다.

지나온 많은 고을들이 다 그러하듯 머릿속에 박제처럼 생동감 없는 이미지만 있던 곳들이 몸으로 겪으면서 생생하게 말을 건네 오고 살갑게 다가온다.  
 
백두대간을 지날 때 들머리와 날머리가 자연부락인 경우가 손꼽을 정도인데 이번에 두 곳 모두가 자연부락이다. 자연부락들이 소멸하지 않고 백두대간 품안에서 전통과 미래를 조화롭게 도모하여 그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식사를 부탁한 민가의 안주인에게 물으니 이번 여름의 무더위와 가뭄도 이곳에선 딴 나라 이야기였단다.

문경의 백두대간 지역은 문경시와 비교해서도 4-5도 정도 기온이 낮고 백두대간을 시원으로 한 계곡물이 사시사철 마르지 않아 사과, 오미자등 과일의 당도도 뛰어나다고 한다.

▲ 오미자가 선홍빛으로 물들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사과도 빨갛게 무르익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민가에 도착하였을 때 심주이 대원이 서편 저 멀리 왼쪽으로 기운 듯한 뾰쪽한 산의 이름을 물어온다.

마침 옆에 민가의 주인장이 있어 여쭤보았더니 주흘산이라고 한다. 문경의 진산이 주흘산이고 대미산은 문경의 모든 산중의 산이라 하지 않던가!
 
다시금 고개를 들어 대미산을 바라본다. 멀리서 주흘산이 큰 울타리를 이루고 푸근한 어머니처럼 인자한 아버지처럼 대미산은 박마을을 보듬고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 앞에는 사과와 오미자가 아무 걱정 없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 박마을 앞 여우목로 위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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