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이 지난달 24일 경의선 철도 현대화사업 공동조사를 실시했다. 남북은 지난 22일부터 철도 운행을 통해 공동조사를 하려고 했지만, 유엔사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유엔군사령부가 남북철도 현대화사업을 막아섰다. 우리 정부가 군사분계선(MDL) 통행계획을 48시간 이전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이유이지만, 2002년 상황과 다르지 않다. 유엔사가 때만 되면 남북관계 개선에 장애물을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엔사는 30일 “한국 정부와의 협조하에 개성-문산 간 철도를 통한 정부 관계자의 북한 방문 요청을 승인하지 못한다고 정중히 양해를 구했고, 동시에 방문과 관련된 정확한 세부사항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도 이날 “유엔사와 협의 중이었고, 협의를 했었다. 48시간 전에 통행계획이 전달 안 된 것은 맞다. 그래서 불허된 것”이라고 확인했다.

통일부는 지난 22일 서울에서 출발한 남측 열차 6량을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개성을 거쳐 신의주까지 운행하고 27일 귀환하는 방식으로 경의선 북측구간 현대화사업을 위한 공동조사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열차는 남측 기관사가 운행해 방북한 뒤, 북측구간에서는 북측 기관사가 운행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MDL 통행을 관할하는 유엔사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표면상 이유는 정부가 통행계획을 48시간 이전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것. 정부는 북측과 협의가 늦어져 21일에 유엔사에 통보했다.

통일부는 당혹스러운 반응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보통 통행계획에는 단순한 몇 가지 사항만 들어가 있다”면서 유엔사가 세부사항을 알려달라는 것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유엔사가 요구한 세부사항은 남측 인원 몇 명이 언제 어떻게 방북하는 등 철도 현대화사업의 상세한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통행업무만 관장한 유엔사가 남북 사업에 딴지를 걸고 있는 셈이다.

2002년에도 미국 정부, 유엔사 앞세워 딴지..‘판문점선언’ 이행 차질

이번 유엔사의 불허는 2002년의 상황과 유사하다. 2002년 11월 김대중 정부 당시 유엔사는 남북 경의선.동해선 철도 연결을 위한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 작업을 위한 남북 양측 상호검증단 파견절차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보다 앞선 9월과 10월 유엔사와 북측이 비무장지대 공사 관리권을 남측에 이양하는 합의문에 서명했음에도, 이를 막아선 것. 당시 부시 미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중유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는 등 북미관계 악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진척 기미를 보이던 북미관계가 다시 교착국면에 접어들면서, 미국 정부가 유엔사를 앞세워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상황.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는 주한미군사령관이 48시간 규정은 물론, 추가적인 내용 요구를 불허 사유로 들고 있지만, 남북 간 사업을 지연시키라는 미국 정부의 뜻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유엔사가 관할권을 들고나와 승인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미국 정부가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것이다. 유엔사의 불허는 미국 정부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비핵화 등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한국 정부가 앞서가지 말라는 의미”라고 짚었다.

미국 정부가 유엔사를 앞세워 딴지를 걸었다는 점에서, ‘판문점선언’ 이행에 차질을 빚게 됐다. 당장 불허된 철도현대화사업은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8월 중 개소가 목표였지만, 9월로 미뤄지게 됐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로 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도 영향을 받으리라는 전망이다.

일련의 상황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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