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년 만에 만난 남녘의 어머니 이금섬 할머니와 북녘의 아들 리상철 씨는 차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지막으로 손을 맞댔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22일 작별상봉을 끝으로 기약없는 이별을 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이산가족의 만남 시간이 1시간이 늘었다. 70여 년의 세월, 헤어진 가족들에게 1시간이 늘어난 게 무슨 소용이랴. 기약 없는 생이별의 순간, 작별상봉이 진행된 금강산은 다시 울음바다였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22일 오전 10시부터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시작했다. 애초 작별상봉은 2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전날 남측이 1시간을 더 늘려달라는 제의를 북측이 받아들여, 3시간으로 늘었다.

다시 작별을 맞이하는 날, 이산가족들은 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 북녘의 아들을 만난 남녘 아버지 이기순 할아버지(91세)는 남쪽에서 가져온 소주를 꺼냈다.

“너 술 좋아하냐”고 묻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소주를 따랐다. 처음이자 마지막 부자의 술잔이었다. 간간이 대화를 나누던 아버지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말없이 소주만 들이켰다.

“두 살 때 헤어졌어. 두 살 때..”를 되뇌던 아버지의 아들을 바라보는 눈가에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날 단체상봉에서 건강 문제로 만나지 못한 남녘의 오빠를 북녘의 여동생은 작별상봉장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여동생은 수시로 북측 관계자에게 오빠를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할까 초조하던 여동생은 오빠 김달인 할아버지(92세)가 들어서자 큰 목소리로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소리쳤다. 68년 만에 만난 남매는 주름이 깊게 팬 손을 꼭 잡았다.

▲ 남녘 김붕어 할아버지와 북녘 여동생 팔녀 씨가 작별상봉을 하며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남녘 김병오 할아버지와 북녘 여동생 순옥 씨는 작별상봉을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남녘 할머니를 만난 손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권석 할머니(93세)가 상봉장에 들어서자, 손자들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손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손을 어루만졌다.

남녘에서 온 삼촌은 그런 조카들을 보며 “철아 울지마”라고 달랬다. 삼촌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북녘의 여동생을 만난 김병오 할아버지(88세)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허공을 바라보며 흐느꼈다. 다시 헤어질 여동생을 차마 보지 못하고 오빠를 동생은 손을 꼭 잡고 “오빠 울지마, 울면 안 돼”라고 달랬다. 파르르 떨린 입술을 앙다문 여동생도 결국 “하이고”를 내뱉으며 눈물을 흘렸다.

남녘 오빠를 기다리던 북녘 여동생들은 수심이 가득했다. 오빠 김춘식 할아버지(80세)를 보자마자 여동생들은 오열했다. 그런 여동생들의 모습에 오빠도 눈물을 흘렸다. 남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김 할아버지의 아들은 그런 아버지와 고모를 보다못해 초코과자를 꺼내 고모 접시에 놓았다. 고모는 “고맙다”며 한입을 베어 물었다. 여동생도 오빠의 접시에 과자를 놓았다. 오빠도 여동생에게 과자를 건넸다. 과자를 한 입씩 베어 문 남매는 다시 오열했다.

▲ 북녘의 올케와 조카가 버스에 올라탄 남녘 시누이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남녘의 어머니 한신자 할머니(99세)는 북녘의 두 딸과 다시 헤어진다는 생각에 건강을 당부했다. “내가 너희들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경자 너도 그렇고 경실이도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기도해. 그거 너희가 알아야 한다. 너희들이 낳았을 손자, 손녀도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 엄마의 마지막 당부에 두 딸은 울먹였다.

북녘의 딸은 남녘의 아버지 안종호 할아버지(100세)에게 과자를 잘게 쪼개 입에 넣어드렸다. 아버지는 그런 딸의 손을 꼭 붙잡고 쓰다듬었다.

가족들은 작별상봉 뒤 오를 버스 번호를 알려줬다. 70여 년 만에 만나 다시 헤어져야 하는 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지막까지 기억하려는 듯.

남녘의 오빠 신재천 할아버지(92세)는 북녘 여동생에게 “내가 타고 가는 버스는 8번, 8번, 8번 버스야”라고 알려줬다.

“서로 왕래하고 그러면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먹이고 살도 찌우고 싶은데...죽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그래”라는 오빠의 말에, 여동생은 “개성에서 김포 금방이잖아. 빨리 통일이 돼야 돼”라고 답했다.

오빠는 “내가 차 가지고 가면 40분이면 가. 아 왕래가 되면 배 불리고 가는데...”라고 계속 아쉬워했다.

야속하게 버스는 출발하고...가족들은 오열

오후 1시경 작별상봉이 끝났다는 방송이 나왔다. 가족들은 다시 오열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발길은 떨어지지 않았다.

북녘에 두 딸을 두고 온 어머니 한신자 할머니(99세)는 종료 방송이 나오자 오열했다. 남측 관계자의 안내로 출입문까지 갔지만 더 이상 발걸음을 땔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품에 안긴 북녘의 두 딸은 오열했다. “어머니”

버스에 오른 한신자 할머니는 창문 너머로 딸들을 애타게 기다렸다. 창문을 계속 두드리며 딸을 찾았다. 두 딸은 한복 치마를 걸어올리고 다급하게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딸들을 본 어머니는 뭐라고 딸들에게 말을 하는 듯했다.

딸들은 야속한 버스를 두드리며 오열했다.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 건강하시라요!”

그런 딸을 보는 어머니는 애가 탔다. 버스 창문이 높아, 남북 관계자들과 기자들은 딸들을 안아올렸다. 남북의 모녀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하며 눈물을 흘렸다.

남녘의 오빠 김달인 할아버지(92세)를 만난 여동생은 종료방송이 나오자 오빠의 손을 잡고 울기 시작했다. 오빠도 울었다. 오빠가 건물을 나가는 뒷모습을 눈에 담으려는 듯, 동생은 난간에 몸을 기대 계속 손을 흔들었다.

남녘의 삼촌을 만난 조카 리광필 씨는 버스를 바라보여 아이처럼 울었다. 이들을 담당한 기자를 바라보며, 리 씨는 “내가 우리 기자님만 자꾸 쳐다보게 된다”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그치지 못한 조카는 손바닥에 볼펜으로 글씨를 적어 삼촌에게 보여줬다. “장수하세요”

삼촌은 그런 조카를 보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제21차 남북이산가족상봉 1회차 행사는 이날 끝났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작별상봉에 이어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오후 1시 15분부터 30분간 버스 차창을 사이에 두고 남북 가족들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다.

2회차 행사는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다.

▲ 남북 가족들이 버스를 사이에 두고 이별을 아쉬워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떠나는 남쪽 가족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는 북측 가족.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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