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이산가족들이 21일 오후 3시경 금강산호텔에서 단체상봉을 했다. 최고령자인 101세 백성규 할아버지 가족이 북녘의 며느리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이틀째 만난 남북 이산가족들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이튿날 작별을 감지한 듯, 아쉬움의 표정도 역력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21일 오후 3시경부터 금강산호텔에서 단체상봉을 이어갔다.

북녘의 남동생을 만난 김혜자 할머니(75세)는 “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네”라고 하자, 동생 은하 씨는 “내일 아침이 또 있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누나는 동생에게 “내가 서울에서 ‘은하야!’하고 부를게”라고 말하자, 동생은 “그럼 제가 ‘네~’할게요”라며 웃었다. 누나는 거듭 동생에게 “사랑해”라고 말했지만, 동생은 쑥스러운 듯 아무 말이 없었다.

“너는 사랑한다는 말 안 하니”라는 60여 년 만의 누나 핀잔에, 동생은 “누님을 존경해요. 누님이 날 사랑해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라고 말했다.

이튿날이면 헤어짐을 감지한 듯, 누나는 백발이 성성한 동생에게 “너무 좋다. 꿈같다. 지금까지도 꿈꾸고 있는 것 같다”며 “같이 있고 싶다. 안 보내고 싶다”고 아쉬워했다.

북녘의 동생을 만난 형 차제근 할아버지(84세)는 다시 만난 동생을 보자마자 “동생!”이라고 반가워했다. 하지만 동생을 북에 두고 온 형의 마음은 착잡했다.

차 할아버지는 “내가 버리고 나와서 항상 죄책감에 가슴이 아파. 내가 형으로서 동생을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나와 미안해. 버리고 나와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동생 버리고 나만 내려와서 내가 너무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런 형의 무릎을 매만지며 북녘의 형은 “아이고 뭐가 미안해요”라고 위로했다.

▲ 남녘의 어머니 이금섬 할머니가 북녘의 아들 리상철 씨와 꼭 껴안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남녘 이금연 할머니는 북녘의 올케, 조카와 만나 다과를 하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처음 만난 남북의 사촌이 다과를 나누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북녘 여동생과 남동생을 만난 형 박기동 할아버지(82세)는 동생들과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내 하루밖에 남지 않음을 아쉬워했다.

박 할아버지는 “60여 년 만에 만나 반갑지만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안됐다. 기약이 없다”고 말했다. 함께 올라간 여동생 선녀 씨도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날지 기약이 없다”며 “평화가 빨리 이뤄져야 하는데 담이 너무 높다”고 아쉬워했다.

북녘 언니와 여동생을 만난 배순희 할머니(82세)는 “70여 년 만에 만났으니 못다 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며 “어제, 오늘 한 이야기도 또 하고 싶다”고 간절함을 드러냈다.

이날 단체상봉에는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건강상 이유로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북측 조카를 만나기 위해 온 강화자 할머니(90세)는 이날 단체상봉에 불참했다. 오전 개별상봉과 객실중식을 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단체상봉은 포기한 채, 호텔에 머물렀다.

67년 만에 남녘의 어머니를 만난 북녘의 두 딸은 기자들을 향해 “어머니를 봐서 너무,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지만,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남녘의 여동생이 어머니는 피로해 쉬기로 했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지만, 못내 아쉬워했다.

북녘 여동생 김유덕 할머니(85세)도 남녘 오빠 김달인 할아버지(92세)를 만나지 못했다. 김 할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아 숙소에서 쉬기로 한 것. 남녘 조카가 건네는 과자와 음료수를 받을 뿐, 김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연회장 입구만 바라봤다.

이날 북측은 가족들에게 다과 봉투를 선물했다. 북측이 제공한 봉투에는 사탕, 초콜릿 과자, 과일 단묵, 강정, 배단물, 금강산 샘물, 캔커피 등이 담겼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단체상봉장을 돌며, 가족들을 격려했다. 

[공동인터뷰] 남북 형제의 만남..남 이종식(81세), 이수남(77세), 북 리종성(86세)

남북 이산가족상봉 2일차 단체상봉이 열린 21일 오후 금강산호텔. 남측 취재진과 재일총련 <조선신보> 기자는 이들 가족을 공동인터뷰했다. 

리종성, 이종식, 이수남 형제는 1950년 8월 하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복숭아 과수원 부근에서 형 리종성 씨가 인민군으로 가면서 헤어졌다. 형제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새벽마다 장독대에 물을 떠놓고 맏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다음은 공동인터뷰 내용이다.

■ 기자 : 형을 만난 소감이 어떤가?
□ 이수남 : 명절 때마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형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떠올리면 괴로우니까 말을 잘 안 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84세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생전에 매일 장독대에 물을 떠놓고 기도하셨다. 10년을 하셨다. 무사히 돌아오라고. 그러다가 기력이 쇠하셔서 못하시다가 돌아가셨다. 

68년 만에 만남이다. 형님에게 너무 고맙다. 돌아가실 줄만 알고 살았는데, 살아 있어서 너무 기쁘다. 또 여러 마음이 든다.

□ 리종성 : 기쁜 건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오늘 만남은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의 사랑과 은덕 때문에 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쟁의 위기 속에 있었지만, 우리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산가족들을 배려해주신 것은 장군님의 은혜 덕분이다.

감사하다. 기쁜 것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 빨리 조국통일이 되어서 외세없이 우리민족끼리 살기 위해 더 힘차게 노력하자.

■ 부모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했는가.
□ 리종성 : 사진으로 만났다. 68년 만에. 눈물이 쏟아져서...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던 모습이 있었다. 내가 맏아들인데 못 모신 것이 죄스럽게 생각됐다. 오직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위대한 수령님 덕분이다. 죽는 순간까지 당국을 위해서, 장군님을 위해서 힘껏 일하자고 생각했다.

■ 개별상봉 때 주로 무슨 이야기를 했나.
□ 이수남 : 가족들 이야기했다. 부모님 이야기도 했고, 손자 이야기도 했고, 집안의 모든 가족들 사진 꺼내놓고 이야기했다.

■ 시간이 짧았나
□ 이수남 : 너무 짧았다. 헤어지려니까 마음이 아프고 형님도 마음이 마찬가지일 거다. 마음이 아프다.

■ 이번 만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무엇이었나
□ 이수남 : 어릴 때 추억을 많이 이야기했다. 부모님이 뭐하셨고, 지난 일을 이야기하다 보니 진짜 우리 형님을 만났구나 싶어서 감격했다.

 

▲ 남측 관계자가 이달영 할아버지 가족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북측 관계자가 박갑일 할아버지의 가족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북측은 이날 단체상봉에 다과를 준비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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