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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를 이기는 법<간서치의 둔한 서평(126)> 한홍구 외『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
간서치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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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3  09: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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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년배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TV를 오래 시청하지 못한다. 아니, 아예 틀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즐겨 보는 특정 프로그램을 다시 찾아보는 정도다. 그런 프로그램 역시 한정적이다.

반면 싫어하는 프로그램은 꽤 많다. 모순이다. 잘 들여다보지도 않으면서 호불호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TV 관련 뉴스나 연예가 소식 등은 어느 포털을 들어가 봐도 쉽사리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작 프로그램은 안 보고 그것에 대한 평가나 광고성 기사들은 심심풀이로 봤다는 뜻일 게다. 무엇이 더 현명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스마트폰 시대가 낳은 현상일까.

지금은 한풀 꺾인 듯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오디션 프로그램이 모든 방송사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스타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재능과 개성을 어필하려 눈물겨운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프로그램들이었다. 그리고 거기엔 이른 바 멘토, 심사위원들이 절대자로 등장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들의 평가나 충고가 과연 객관적인지 나 같은 일반인들은 정확히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들의 말은 곧 진리가 되었다. 그렇게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

지금은 어떨까. 지금도 <프로듀스 48>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음악에서 요리로 옮겨가 한 유명 요식업 CEO가 식당 하나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경쟁과 평가라는 구도는 여전하다. 감히 음악을 소수의 인원이 객관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심지어 음식마저 정확한 순위를 매겨 우열을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난 불편하다.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들은 기피대상 1호다.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저들끼리 낄낄거리는 프로그램 역시 나에겐 살짝 한심하다.

심지어 이제는 자신의 사생활마저 판매한다. 자녀들의 생활을 판매하고, 모친까지 등장해 훈훈하게 사생활 판매를 협업한다. 매니저와 연예인의 일상도 판매 대상이다. 연구해 볼 대상이긴 하다. 왜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거기에 대중들은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첫 느낌은 ‘현대인들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외로운 거구나’였지만, 이내 ‘관음증’과 ‘빅 브라더’ 등 그리 아름답지 못한 단어들이 떠올라 당황스러웠다. 때문에 이러한 프로그램 역시 시청하지 않는다.

사회가 메마르고 각박해질 때 오히려 미담이나 감동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만들어진다고 했던가. 지금 방송되는 주요 프로그램들을 보자면, 정신적 빈곤에 깊이 빠져있는 현대인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겹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우리 청춘들의 모습도 보인다.

사찰과 해킹, 도찰 등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염탐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다. 사회적 인권 감수성이 더디게나마 향상되고, 여권의 신장이 극히 미미하게나마 이뤄지며, 힘겹게 이러한 범죄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매일 매일 자신의 사생활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한다. 아니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판매한다. 그저 ‘좋아요’ 한 번 더 받으려는 욕망으로만 이해하기엔, 무언가 더 깊은 원인이 있어 보인다. 이 역시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로 해석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 한홍구 외, 『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 – 인생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중대신문사 출판위원회 기획, 철수와영희, 2012. 9. [자료사진 - 통일뉴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 책의 제목과 연결된다. ‘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본주의 사회를 규정짓는 특징 중 하나인 획일화에 대한 저항을 뜻한다. 언뜻 획일화가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주의보다 더 강력하게 획일화를 원한다. 아니, 획일화로 인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다. 획일화는 곧 대량 생산, 대량 소비로 이어진다.

무슨 개소리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개성과 창의성을 무엇보다 존중하고 인정하는 게 바로 자본주의 사회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개성과 창의성은 오직 ‘상품화’가 가능할 때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글을 포스팅할 때마다 수많은 ‘좋아요’를 받는 것은 그 사람이 상품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스스로 자본이 되는 과정이다.

때문에 젊은이들은 이른 바 셀럽을 욕망한다. 개성으로 포장된 획일화에 동참한다. 비슷한 외모, 비슷한 노래, 비슷한 패션이 개성과 유행이란 이름으로 매일 생산된다. 난 그 수많은 걸그룹들을 분별할 능력과 의지를 상실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들 역시 개성으로 똘똘 뭉친 ‘상품’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공부, 학벌, 정치, 외모, 성, 패션, 종교를 이야기하며 ‘획일화’에 대한 저항을 강조한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 겉모습에만 신경 쓰지 말라, 장미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장미인양 위장하지 말라, 지금의 나를 극복하고 진짜 나를 찾아라 등 주제는 달라도 결론은 얼추 비슷하게 맺어진다. 진정한 나를 찾으라는 조언이다.

세계에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획일화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나는 우리 젊은이들은, 실력이나 개성, 소질, 꿈보다는 부모의 능력이나 배경으로 자신의 삶이 대부분 결정된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게 된다. 금수저는 태어날 때부터 찬란한 미래가 약속되지만, 흙수저는 그야말로 인생 내내 넘사벽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 곳에서 이른 바 벼락 같이 스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과연 비정상일까. 또는 획일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공무원이 되고자 시험에 사생결단하는 이들이 대부분인 현실을 우리는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때문에 슬프게도 책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조언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큰 울림을 주지 못한다. 그들이 아무리 화려하고 유명하며 큰 영향력을 지닌 오피니언 리더들이라 해도 젊은이들의 눈에는 그저 또 다른 꼰대의 훈계로만 들릴 수 있다. 아니면 또 다른 넘사벽일 뿐이다.

세계적으로, 또 우리 사회로 좁혀 살펴봐도 도무지 희망을 찾기 어려운 시대다. 옥스팜 인터내셔널 위니 비아니마 총재는 이렇게 말한다. “2016년 6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창출된 세계 전체 부의 82%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의 몫이 되는 세상.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하위 50%에 해당되는 37억 명의 사람들은 그 어떤 부의 증가도 보지 못했다. 말 그대로 제로.”

2017년 1월 기준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6명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1만 3,092명이 자살했고, 이는 하루 평균 36명꼴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의 말처럼 “재벌에게 산업을 조직할 거의 무제한의 자원과 권력을 몰아줘 성장과 고용과 사회 안정을 취한다는 기존의 한국 자본주의 작동 방식”은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화려한 성적으로 돌아왔지만, 대신 하루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시대, 실업자 3명 중 1명이 청년 세대인 시대에 “인생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는 책의 부제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청춘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이들의 획일화 성향, 정치와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무저항은 선택이 아닌 강요의 결과가 아닐까.

그야말로 경제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에 나가보면 높은 빌딩숲 사이로 임대 광고가 붙은 건물들이 수두룩하다. 물가는 구렁이 담 넘듯 슬그머니 오르는 동안,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커녕 무조건 들어가고 보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펴봐도 일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신의 조언이라 하더라도 절실히 다가올까. 세계 평화와 한반도 통일이라는 다른 혹성 이야기가 들리기나 할까.

이 책과 같이 한때 연예인급 지식인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의 조언과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다가, 지금은 잠잠해진 것도 결국은 더 이상 아무리 들어봐도 소용이 없다는 청춘들의 결론이 나왔기 때문 아닐까. 취업에 대한 실질적 공포, 미래에 대한 극히 현실적인 두려움은 이미 젊은이들의 삶을 뒤바꿔 놓았다. 이들은 이미 ‘내가 나일 때 빛나는 것’이 아니라 ‘돈 많고 배경 든든한 부모와 선후배를 가지고 있는 나일 때 빛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 모른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무지’ 그리고 ‘무기력’을 공포의 이유로 들었다. 미래에 무슨 불행이 닥쳐 큰 상처를 입힐지 모른다는 무지와, 그 불행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이 공포를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지금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공포의 기저에도 이러한 무지와 무기력이 존재할지 모른다. 사실 이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느끼는 공포일 것이다. 하지만 청춘들은 특히 더 강력한 공포에 직면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공포를 독설과 위로, 싸구려 힐링과 조언 등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 그리고 그렇다고 설득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듯하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결국은 사회 전체를 변혁해야 하는 거대함으로 귀결될지 모른다. 저항과 전복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더 이상 혁명은 존재할 수 없는 시대에 한심한 소리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촛불혁명을 통해 여전히 혁명은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면 촛불혁명 역시 정치권력의 교체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하지만, 어쨌든 혁명의 존재 이유는 여전하다는 것을 우린 경험했다. 적자생존, 일단 나 혼자라도 살아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무력하다.

결국 연대로 무장하고 다시 현실과 싸울 수밖에 없다. 잘 나가는 이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그들에게 젊은이들의 요구를 강력히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연대는 불가피하다. 여기에 한 손, 하나의 목소리를 보태주는 것이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철수와영희’는 가치 있는 책을 펴내는 소중한 출판사다. 이 책 역시 대학교 신문사 성원들이 스스로 고민해 이뤄낸 결실이라는 점에서 여타 대형출판사가 유명인들을 섭외해 찍어내듯 생산하는 책들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갖는다. 무엇보다 아무리 빤한 이야기라 해도, 화자들의 이야기는 경청할 만하다.

오히려 이러한 이야기들이 더 이상 청춘들에게 깊이 와 닿지 않게 된 현실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 기성세대들의 반성이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지구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저마다 우주를 안고 살아간다. 개인 하나하나가 모두 우주다. 그 수많은 경이로운 우주들이 밝은 빛을 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절대적 기준 따위 전혀 없는, 진정 빛나는 곳이 될 수 있다.

그 길에 말 더럽게 많고, 어디서든 훈계 한 번 해야겠고, 세상은, 정치는, 인생은 어떤 것이라 건방지게 단정지어버리는 용감하고 꼴 보기 싫은 꼰대들이 동참하기 바란다. 그 잘난 입 좀 다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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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8-07-25 12:19:54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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