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12일 오전 9시(현지시간, 한국시간 오전 10시) 싱가포르 남부 센토사섬에 있는 카펠라 호텔에서 열리게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회담 이틀 전인 10일 싱가포르에 도착, 세기적 회담에 대비하고 있다.

다양한 회담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핵심의제인 ‘한반도 비핵화’가 양 정상의 합의문에 어떻게 담길지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은 이른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원하고 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더구나 북한은 풍계리 핵시험장 폐기 조치를 선제적으로 단행함으로써 비핵화 의지를 보여줬다. 따라서 북미 정상이 ‘완전한(complete) 비핵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완전한 비핵화가 합의된다면 '검증가능하고(verifiable)',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비핵화 원칙 역시 합의 가능한 목표임에 틀림없다.

악마는 ‘검증가능한 핵폐기’ 과정의 디테일에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도 언급한 바 있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검증가능한(verifiable)’ 핵폐기의 경우처럼 딱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다. 북미 정상이 검증가능한 핵폐기에 합의하더라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공동성명은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로 잉크가 마르기 전부터 비틀거렸지만 2007년 2.13합의와 10.3합의 등을 거치며 불씨를 되살려냈다가 결국 핵프로그램 신고와 검증을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꺾이고 말았다.

미측이 북측의 신고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와 북측이 미측의 특별사찰 요구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느냐가 이번 북미 협상 과정에서도 다시 핵심 현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디에 얼마만큼 어떤 핵물질과 핵무기가 보관돼 있는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북측의 성실한 신고와 미측의 절제된 사찰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어떤 합의도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북측이 성실한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미측은 북측이 뭔가를 감춰두고 협상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할 것이고, 미측이 북한 전역을 언제라도 사찰할 권한을 요구한다면 북측은 미측이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북미 양측이 합리적인 선에서 받아들일만한 신고와 특별사찰 범위에 합의하고, 집행과정에서 신의 성실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북한이 뭔가를 숨겨둘 수 있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것이고, 북한도 비핵지대화를 선언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여지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북미 양국의 ‘정치적 합의’에 의한 핵폐기가 진행되면 이같은 논란은 잠재워질 것이다. 핵무기는 보유를 선언함으로써만 정치군사적 의미를 갖게 되는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갖고 있다고 밝힐 수 없는 핵무기는 설사 있다 하더라도 정치군사적으로 아무런 지렛대 역할도 할 수 없는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다.

9.19공동성명 마지막 관문, ‘평화적 핵이용권’

그러나 실제로 북미간 가장 첨예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은 ‘불가역적(irreverssible) 핵폐기’ 분야다. 6자회담 막바지에 ‘경수로로 시작해 경수로로 끝난 날’이 이어졌던 기억이 또렷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불가역적 핵폐기를 추구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투명한 사찰과 감시를 수용하더라도 경수로조차 운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북미 간에 종전을 선언하고 관계정상화에 나서 미국이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한다면 ‘평화적 핵이용권’은 주권국가의 고유권한이라는 입장이다. 핵연료를 이용한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어느 정상국가라도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핵발전을 위한 경수로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이 생성되지는 않아 국제적 제재대상은 아니다. 국제적 감시를 성실시 수용한다는 전제 하에 북한 역시 경수로를 이용한 원자력발전을 금지당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핵연료주기를 완성한 경수로를 운용하고 있다면, 유사시 핵무기 보유국으로 되돌아가는 기간이 현저히 단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비가역적이 아니라 ‘사실상 가역적(reversible) 핵폐기’에 불과하게 될 수 있는 셈이다.

핵연료주기(Nuclear Fuel Cycle)를 완성하다는 것은 핵연료로 사용되는 우라늄 채광부터 시작해 정련, 변환, 농축, 핵연료 사용,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핵연료로 재가공하는 일련의 순환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한마디로, 핵물질을 계속 다루고 있고, 그에 종사하는 인력들이 유지되고 있는 것. 따라서 만약 미국이 변심해 북미간 협정을 무효로 되돌릴 경우 북한도 핵무기 보유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짧게 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되는 것이다.

2005년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 채택 당시에도 마지막까지 쟁점이 된 것은 북한의 경수로 운용 요구였고, 결국 9.19공동성명 비핵화 항목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타 당사국들은 이에 대한 존중을 표명하였고, 적절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데 동의하였다”고 타협적으로 명시됐다.

경수로 ‘기회 비용’과 에너지 지원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일반인들이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경제적 지원이 아닌 안전보장 문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제시했던 ‘안보 대 안보’ 교환인 셈이다.

최근까지도 북한은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요청한 바는 없다. 경제제재만 사라지면 북한은 외부 세계와의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외부에서 투자자금을 끌어들이는데 장애만 조성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경수로 운용을 바라지 않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에게 ‘기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북한에게 경수로 발전을 못하게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지원해야하기 때문이다.

1994년 북미 기본합의 당시에도 핵개발 동결대가로 1,000MWe급 경수로 2기를 제공하고 대체에너지로 연간 중유 50만t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실제로 북한의 함경북도 신포에 경수로 건설작업이 시작됐고, 완공시까지를 시한으로 중유 지원도 시작됐다.

여담일 수 있지만, 경수로 건설을 위한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 당시 금호사무소 현장사무소장으로 1997년부터 2년간 북한에 상주했던 서훈이 바로 지금 국정원장으로서 남북미 협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물론, 미국은 당시 북한의 체제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속셈에 따라 실제로 경수로를 완공할 의사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은 경제지원이 아니라 북한 핵폐기의 불가역성을 담보하기 위한 ‘안보 대 경제’ 교환이었다는 점이다.

11년 후인 2005년 9.19공동성명에도 “중화인민공화국, 일본, 대한민국, 러시아연방 및 미합중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하였다”는 문구가 포함됐고,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2백만 킬로와트의 전력공급에 관한 2005.7.12자 제안을 재확인하였다”는 대목도 포함됐다.

추상적인 “적절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데 동의하였다”는 합의에 북측이 동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에너지 지원과 200만 킬로와트 전력공급이 포함된 것이다. 2005년에 비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훨씬 진전된 상태라는 점도 기회 비용 계산시 고려요인이 될 것이다.

중국의 갈탄 이용한 화력발전소 지원 눈길

박근혜 정부 시기 미국의 대기업인 GE(General Electric Company)가 북한에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송배전망을 구축하는 사업을 추진했던 것은 경수로를 우회한 에너지 지원을 민간자본을 통해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두 차례 만난 뒤 북중간 경제협력 가속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의 화력발전소 건설 지원 항목이 눈길을 끌고 있다.

품위가 낮은 갈탄을 이용한 화력발전 기술을 보유한 중국이 북한지역에 매장량이 많은 갈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를 지어주는 경제협력 프로젝트다. 북한의 갈탄 매장량은 평남 안주 등에 160억톤으로 추정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더라도 미국은 북한에 경제지원을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주변국들이 분담할 것이라고 떠들고 다니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이 대북 경제지원에 나설 것이라는 계산이다.

실제로 한국 기업인 한국테크놀로지는 남북간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주가가 상승한 기업으로 꼽힌다. 이 회사는 “세계 5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북한의 석탄(갈탄)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석탄고품위화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는 수분함유량이 높아 발열량이 떨어지는 석탄의 수분을 15%로 낮춰 고품질로 바꿔주는 기술”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대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철도도로 건설과 화력발전소 건설 등에 국가가 나설 필요가 없다”며 “북한은 이미 최고인민회의 정령으로 ‘BOT 방식’의 경제개발 방침을 세워두고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BOT(Build-Operate-Transfer) 방식이란 민간자본이 자금을 조달해 프로젝트를 건설(Build)하고, 일정기간 운영(Operate)하면서 그 사업 수익으로 운영자금을 충당, 부채 상환 및 배당을 실시하고, 운영기간이 종료되면 정부 등 관련기관에 양도(Transfer)하는 방식이다.

물론 외국 민간자본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담보물로 북한은 채산성이 좋은 광산 등을 제시할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2013년 신의주-개성 고속철도.도로 건설 계약을 국제투자집단과 BOT 방식으로 체결한 바도 있다.

경수로 우회로 찾기와 ‘우주개발권’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식이 되기 어렵다면 북한에게도 ‘가역적 핵포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는 논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힘이 지배하는 국제정치 질서에서 강대국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음으로써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수로 지원이라는 직접적 방식이나 화력발전소 지원이나 200만 킬로와트 전력지원과 같은 간접적 방식 등 의지만 있다면 다양한 우회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보통국가가 갖는 우주개발권을 북한이 명문화하자고 요구할 경우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와 운용에 대한 입장도 필요하다. 만약 북한의 우주개발권을 부인할 경우 역시 그에 상응하는 기회 비용을 직접적 방식이든 간접적 방식이든 지불해야 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인공위성 발사 기술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기술과 대부분 겹쳐있어 군사적으로 곧바로 전용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11월 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바 있다. 미국 본토가 북한의 미사일 사정권 안에 들게 된 것이다.

인공위성은 향후 경제발전을 위한 핵심기술로 각국이 군침을 흘리는 영역이고 북한은 이미 2016년 2월 은하3호 로켓에 실은 인공위성 광명성 4호의 발사와 궤도진입에 성공해 실력을 과시한 바 있다.

북한은 “우주개발은 주권국가의 자주적 권리”라며 “우리는 앞으로 국가 우주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정지위성을 비롯한 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실용위성들을 더 많이 우주공간으로 쏘아 올릴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논의돼야 할 것이다. 북한 인공위성의 타국 대리발사 등이 논의되기도 하지만 현실성은 미지수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에서 큰틀에서의 북미간 한반도 비핵화 관련 합의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단계별 동시행동으로 실천에 옮겨가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거나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신고와 검증을 둘러싼 ‘검증가능한(verifiable)’ 핵폐기와 평화적 핵이용권과 우주개발권을 둘러싼 ‘불가역적(irreversible)’ 핵폐기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이며, 불가역적 핵폐기를 보장하기 위한 경제보상 문제도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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