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 석 대’ 피할 수 있는 ‘촉진자’

자고로 중매를 잘 서면 술이 석 잔이고 잘못 서면 뺨이 석 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중매쟁이의 역할이 어렵다는 것일 겁니다.

전격적인 26일 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여러 모로 파격적이어서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지만 기자의 눈길을 확 끌어당긴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의 “로드맵은 북미 간에 협의할 문제”라는 발언입니다. 북미 사이를 삐걱거리게 한 북미정상회담의 ‘의제’ 중 핵심사안인 ‘비핵화 로드맵’은 양자가 직접 협의해 타결하라는 주문입니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간 샅바싸움이 본격화되면서 양쪽으로부터 뺨맞기 딱 좋은 처지에 놓인 청와대가 슬며시 들고 나온 것이 ‘중재자’가 아닌 ‘촉진자’라는 것입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25일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 기조강연에서 ‘부정적 함의’가 담긴 중재자 보다는 ‘촉진자(facillitator)’ 역할이 중요하다고 거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는 양국 간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런 의지들을 서로 전달하고, 또 직접 소통을 통해서 상대의 의지를 확인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역할이 ‘촉진자’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북미 간 직접 소통을 촉진시키는 역할로 한정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긴 연원을 갖는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직접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나서도록 하되, 우리는 한반도의 주인으로서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도록 촉진자의 역할을 해나간다면 ‘운전석’에 앉은 값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셈법일 것입니다.

부동산 사업가 트럼프 대통령의 복덕방 주인 행세

최근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취소 소동 중에 눈길을 끈 또 하나의 문구는 “당신이 마음을 바꾼다면, 망설이지 말고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취소 서한 중의 한 대목입니다.

문정인 특보는 25일 기조강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리얼리티쇼 MC하던 사람이다. 그리고 부동산 사업을 오래한 분 아니냐. 우리가 부동산 거래를 할 때 가격 안 맞으면 명함 주면서 “생각나면 전화해요” 그거하고 비슷하다”고 절묘한 비유를 내놓았습니다.

부동산 재벌 사업가 출신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복덕방 주인처럼 매물 가격이 안 맞자 매물 주인에게 명함을 주며 “생각나면 전화해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고객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매물 주인인 김정은 위원장은 김계관 외무성 1부상 입을 빌어(위임에 따라) 거래를 계속하자고 화답했습니다.

복덕방 주인 행세를 했지만 사실은 매물(북핵)의 고객인 트럼프 대통령과 매물 주인 김정은 위원장은 둘 다 배짱을 튕기는 벼랑끝 협상에는 나름대로 전통있는 노하우를 가진 인물들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일본 총리라는 중간 거간꾼의 ‘납치자 문제, 중장거리 미사일 문제’ 카드를 끌어들여 협상판을 흔들었고,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라는 뒷배를 끌어들여 뒷심을 보강하며 실무협상장에 나타나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양측이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오해를 불식시키고, 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할 의제에 대해 실무협상을 통해 충분한 사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못이기는 척 문 대통령의 충고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당연히 북미 실무협상이 시작되고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도 소생하는 흐름입니다. 일각에서는 내친 김에 평양 개최설까지 솔솔 피워올리고 있습니다.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

민족의 생존을 건 협상을 중매나 복덕방 거래에 비유한 것이 경망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실제 돌아가는 판세의 흐름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다자들이 벌이는 국제정치의 판이라는 것도 사실 모두 자국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치열한 물밑경쟁임은 뻔한 ‘사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저는 지난 4월의 역사적인 판문점회담 못지않게,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다”라는 말이 치열한 국제정치판에 신선한 울림을 줍니다.

더구나 “산의 정상이 보일 때부터 한 걸음 한 걸음이 더욱 힘들어지듯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평화에 이르는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현실감각을 갖춘 발언은 한층 무게감과 신뢰감을 실어줍니다.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부여도 수사로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권력을 감시,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쳐보이는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국민 여러분께서도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는 문 대통령의 당부가 귓가에 맴도는 것도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촛불이 없었다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오늘도 없었을 것입니다.

* 중매인과 부동산중개사를 낮춰보는 표현이 아님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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