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막연한 자신의 판단을 믿는 경우들이 있다. 물론 사실과 들어맞는 걸로 판명될 수도 있지만 틀린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른바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한 편견이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잘 몰랐던 우리 국민들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생중계를 지켜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면, 아마도 암암리에 나름의 편견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남북관계 전망이 갑자기 열리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등 관심 밖이었던 어려운 용어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중에서도 시간이 갈수록 ‘통일 방안’이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평화공존과 사실상의 통일, 중립화 통일,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 1국가2체제와 양국체제 등등 오랜 분단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개념과 방안들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는 북한이 남북한의 통일보다는 평화공존을 더 바랄 것이라는 생각들이 깔려있다. 이른바 ‘전략적 수세기’, 즉 힘의 열세에 처해 있는 북한이 통일을 할 경우 남쪽 중심으로 힘이 쏠릴 것을 우려해 일단 두 개의 국가가 평화공존하는 방안을 선호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이같은 판단이 ‘편견’일지도 모른다고 일깨우고 있다. ‘판문점 선언’의 제목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다. 남측이 준비한 공동식수 표지석의 글귀는 ‘평화와 번영을 심다’이다. 당초 남측의 초안에는 판문점 선언 제목에 평화와 번영만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판문점 선언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은 ‘평화’지 ‘통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에 통일이 포함됐고 1조 1항도 “남과 북은 남북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나갈 것이다”는 선언적 문구가 들어간 점이 눈길을 끈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 서명후 발표에 나서 “판문점이 평화의 상징으로 된다면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 하나의 문화를 가진 북과 남은 본래대로 하나가 되어 민족만대에 끝없는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해 전형적인 ‘민족 통일론’을 피력했다.

두 개의 국가가 평화공존하는 과정을 거치더라도 하나의 민족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내세운 셈이다. 물론 말과 현실이 꼭 같으리라고 단정할 수만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북한은 두 개의 국가가 평화공존하는 것을 더 선호하리라는 판단이 편견은 아닌지 살펴야할 이유는 충분히 제시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회의에서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아주 쉬운 말로 미래의 선택지를 넉넉하게 열어둔 것으로 평가할만하다. 비교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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