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남북 정상회담은 한마디로 평화회담이었습니다. 이는 최근 한반도 정세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또한 5월 말-6월 초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의식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회담 전부터 정부당국이나 전문가들이 공동선언에 ‘비핵화’ 문구가 들어갈 것인가?, 들어간다면 어느 수준에서 들어갈 것인가?,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가 들어가야 성공적인 회담이 되지 않겠는가? 라는 분석과 주장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3조 ④항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며, ‘완전한 비핵화’가 명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회담은 남측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회담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그간 북측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회담에서 평화 문제가 논의된 것은 불가사의하기까지 합니다. 통상 한반도 문제는 평화 문제와 통일 문제로 나눠지는데, 이제까지 북측의 입장은 전자는 미국과 후자는 남측과 논의해 해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2000년 남북의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에는 통일 문제와 민족 문제만 들어있지 평화 문제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해 10월 12일 북-미 간에 이뤄진 공동코뮤니케에는 평화 문제가 다뤄집니다.

북측은 이 같은 기조를 비교적 일관되게 지속해 왔고, 여기에 이른바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비핵화 문제까지 추가되게 되었습니다.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남측은 북측과의 회담에서 비핵화의 ‘비’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북측은 핵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지 남측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한 예로 올해 초까지만 해도 1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종결회의 때 북측 리선권 단장이 이날 오전 전체회의 남측 기조발언에서 나온 ‘비핵화’를 문제 삼아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회담에선 한반도 평화 문제가 다뤄지면서 비핵화가 주요 의제로 떠오른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 문제와 비핵화 문제가 논의되고 또 합의했다면 북측의 큰 변화인 셈이죠.

이런 중에 정상회담에서 통일 문제와 민족 문제가 수시로 나와 균형감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번 회담에서 채택된 선언문의 명칭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판문점 선언)이듯이 ‘통일’이 들어가 있으며, 또 판문점 선언에는 1조에서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라면서 그 ⓛ항에서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다고 천명한 것입니다.

게다가 양 정상의 발언이나 발표의 경우, 문 대통령은 오전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한반도의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와 함께 가는 우리 민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데 이어, 오후 만찬사에서 “남과 북이 우리 민족의 운명을 주도적으로 결정해 나가되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함께 받아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며 재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도 만찬사에서 “온 겨레의 공통된 염원과 지향과 의사를 숨기지 말고, 불신과 대결의 북남 관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함께 손잡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김 위원장이 판문점 선언 서명 직후 연단 앞에서 한 기자회견이 아닌가 합니다. 기자회견 내용은 모두 민족 문제로 되어있는데, 특히 “오늘 내가 다녀간 이 길로 북과 남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가슴 아픈 분단의 상징이 평화의 상징이 된다면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 하나의 문화를 가진 북남은 본래대로 하나가 돼 민족의 끝없는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대목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 하나의 문화’는 북측이 2002년에 민족론과 관련해 정식화한 민족의 징표인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지역, 하나의 문화’와 비슷합니다. 어쩌면 최근 시기에 민족의 징표 중 ‘하나의 지역’이 ‘하나의 역사’로 수정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김 위원장은 평화 담론으로 일색화된 정상회담에서 민족의 징표를 굳이 강조함으로써 민족 문제를 일깨우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에서 평화 문제와 통일 문제의 해결이 가시권에 들어온 지금, 그 둘은 동전의 양면이기도 합니다.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어야 만족통일이 가능하며, 또한 통일이 담보되지 않는 평화는 공염불이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이 합심해 그 두 가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에서 ‘자주’, ‘민족대단결’과 함께 ‘평화통일’이 적시돼 있나 봅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