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사이끼리, 연인끼리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다, 무심코 이런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아이고, 이걸 어디다 쓰니?” 돌아오는 답변, “꼭 나를 어디에다 써야만 하겠니?” 때론 말썽만 부리는 자녀에게 부모가 한탄조로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 어떤 숭고한 미션을 위한 것도 아니요, 세계 평화와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아니다(물론 되면 좋겠지만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도 물론 아니다. 뭐 그렇게 말한다면, ‘넌 당최 생각이 있는 놈이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냥 부모님의 사랑의 결실일 뿐이지. 국가와 조직과 사회와 당과 국제사회의 그 무엇을 위해 당찬 사명을 안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틀렸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한 세상 대충 살다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입장에 대해서도 반대다. 그렇게 생각을 하던 안 하던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입고 먹고 자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대충 살기란 쉽지 않다. 암요. 눈물 나죠.

그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어찌 살아가는 것이, 어차피 태어난 한 세상을 그럭저럭 의미 있게, 또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정답은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리라. 하지만 한 가지 그나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공통분모는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를 거부하거나, ‘난 오직 불행만을 위해 살아가리라’ 결심하는 이들은 없지 않을까.

그렇담 다시 질문이 돌아온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이는 유사 이래 수많은 철학자들의, 종교인들의 화두였고, 지금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라고나 할까. 과거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물질적 번영을 이룬 오늘이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혹은 알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갈 뿐이다. 과연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난 모르겠다. 물질적 부가 구석기 시대와 비교해 상상 불가할 정도인 지금도 나는 우리가 구석기시대인들보다 행복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행복의 기준은 시대와 개인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떼로 덤벼들어 무려 코끼리 한 마리를 잡았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었을까. 그야말로 로또에 당첨된 것 마냥 행복하지 않았을까? 당분간 굶주릴 걱정은 없을 테니 말이다.

지금 남북의 새로운 평화의 기운이 샘솟는 지금의 감동을, 애초 분단 따위 상상도 하지 않았을 조선 전기의 평범한 민초들이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 자연스럽게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면서도 전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가, 일제시대 창씨개명을 강요당해야 했던 조상들이 광복을 맞았을 때의 행복을 상상할 수 있을까.

결국 행복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타인이 아닌 내가 느끼는 매우 긍정적이고 가슴 벅찬 감정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지속가능하게 이어지는 것이라고.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나만의 감정이라고.

과거 일터에서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났던 임승수 선생은 그 이후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꾸준히 소통하는 사이다(뭐 임 선생이 다방면에 바쁘시기에 온라인상에서만 주로 소통하지만). 최근 와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 감탄하던 차에(난 와인은 늘 어렵다), 이 책에 대한 전방위적인 선전공세에 휘말려 결국은 구입, 전방위적으로 읽어 내려갔다.

워낙 긍정적인 마인드가 강렬하신 분이기에, 늘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 스트레스가 극강에 달해있는 나에게 책은 소중한 쉼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당최 행복한 삶은 무엇이냔 말이다!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게 계획 없이 살아왔다. 초등학교 때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으며 ‘공부 따위 제일 쉬워요!’를 외치던 천둥벌거숭이는 중·고교 때 사상이 울퉁불퉁한 은사님들을 연이어 만나며 처음으로 사상 근육을 키웠다.

그리고 분단과 민족, 통일이라는 사상 최대 골치 아픈 숙제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풀 수 있는 과제는 물론 아니었고, 별 고민 없이 북한학과라는 희귀한 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당찮게도 언론인이라는 이름으로 밥을 얻어먹고 다니다, 지금은 통일운동단체에서 역시 밥을 얻어먹고 다닌다.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름 한 길을 걸어왔다. 애초 계획 없이 살아온 놈이니 감히 후회 따위 있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북측 친구들을 만나 인사하고 나름 교류협력사업을 논하는 자리도 즐거웠고, 대학 시절 후배들과 함께 고성항에 내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원들이 양 옆에서 무섭게 노려보는 가운데 그 사이를 걸어갔던 살벌한 기억도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다. 개성 시내를 심지어 조선인민군의 호위를 받으며 달렸던 기억이나, 개성공단에서 남북의 노동자들이 함께 땀 흘리는 모습을 벅찬 심정으로 바라본 기억도 새록새록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이야 말할 것도 없고, 개성에서 맛 본 냉면의 기억도 여전하다.

남북관계가 어려웠던 시기에는 중국에서 북측의 인사들을 만났다. 산림협력을 논했고, 북측 동무들과 노래를 부르다 울컥했던 기억도 아름답다. 도저히 술에는 이길 재간이 없어, 우악우악 토악질을 하고 다시 들어가 건배를 들었다. 그 모든 것이 단순한 시간이 아니었다. 나에겐 나름대로 그것들이, 행복하기 위한 나의 결정이자 행동이었다.

그렇다. 행복은 제각각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 속에서 행복마저 단일화 하려는 이들이 눈을 벌겋게 뜨고 단 돈 백 원이라도 우리로부터 뜯어내기 위해 혈안이지만, 그리고 오직 소비만이 행복의 길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우리는 그것만이 행복이라고 믿지 않는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바본가요.

만약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나를 평가한다면, 임 선생 못지않은 불량품일 것이다. 모아둔 돈도 없고, 그럴싸한 명예도 물론 없다. 어디 가서 대접을 받을 생각도 없지만, 그럴 가능성도 제로다. 다만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것일 뿐.

▲ 임승수,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 생계형 마르크스주의자의 유쾌한 자본주의 생존기』, 서해문집, 2018. 4. [자료사진 - 통일뉴스]

임 선생의 삶은, 본인이 내심 인정하는 것처럼 절대 불량품의 삶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삶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그것도 지출을 최소화하며 만들어내는 마술사이자, 주옥같은 글로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의 도가니를 선사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수많은 맛집을 순회하며 국내 경제 활성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으며, 역시 수많은 강연장을 누비며, 야매나 허황된 꿈이 아닌 리얼 자본주의 시대의 생존법을 전수하는 세이버이다. 물론 여전히 적지 않은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와 자본론을 전파하는 바람직한 사상가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한 인간이 감당하기엔 벅찰 정도의 역할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임 선생은 분명 불량품이 아닌 언신(언제나 신상품)이다. 아, 물론 인간을 물건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결연히 반대한다. 사람은 그저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임 선생의 따끈따끈한 책을 통해 또 한 번의 큰 위로를 받았다.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덩달아 내 변변치 못한 삶 역시 내세울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운 것도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것도 감사하다.

남북관계가 급진전되고 남북 사이에 감동적인 장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분명 벅찬 모습이다. 혹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으니, 이젠 꽃길만 걸으시겠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일은 없다. 돈이나 명예를 보고 이 길을 걷는 이들은 없다. 만약 있다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이 길은 그냥 그렇게 고난의 행군일 뿐이다.

물론 내가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일들이, 남들의 인정도 받고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훌륭하다면 더 바랄 나위는 없을 것이다. 나도 한 번쯤은 집에 자랑스럽게 외치고 싶으니까. ‘나 돈 많이 벌어요!’라고.

하지만, 이직을 하지 않는 이상. 가능성은 희박해요. 그저 남북이 싸우지 않고, 전쟁하지 않고 사이좋게 좋은 이웃이자 형제로 살아갈 수 있음, 그것으로 족하다. 남북을 오가며 그 길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만족한다. 돈이야 뭐 언젠가는 생기지 않을까요? 슬프네.

임 선생의 유쾌한 생존기를 읽으며, 나 역시 유쾌한 통일운동가의 생존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의 글 솜씨를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욕심은 있다. 언젠가 정말 감동이 흘러넘치고, 눈물과 콧물이 없이는 독서 불가한 명작을 한 번 써보리라는 부푼 꿈을 안고 서평을 마친다.

이 책이 대박이 나서 부디 임 선생이 사랑하는 가족과 또 다시 해외 순방을 떠나시고, 맛있는 음식 많이 드시고, 와인도 원 없이 드셔서, 또 다른 명작을 집필하실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임 선생의 책을 읽는 기쁨을 해외 여러 나라 국민들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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