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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국회에서의 통일논의(1973.3~1979.3)<연재> 역대 국회와 통일문제 논의 (9)
노중선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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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7  08: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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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민족자주문제와 통일문제에 천착해 온 노중선 <통일뉴스> 상임고문의 ‘역대 국회와 통일문제 논의’를 연재한다. 필자는 제헌국회에서부터 20대 국회에 이르는 역대 국회에서 통일문제와 관련한 논의들을 ‘민족화해와 자주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필자는 향후 국회가 평화통일과 민족자주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의를 거쳐 민족화해시대에서 분단 극복을 위해 자기 역할에 적극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 연재는 매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9. 제9대 국회에서의 통일논의(1973.3~1979.3)

제9대 국회는 1선거구에서 2명을 선출(공화 73, 신민 52, 통일 2, 무소속 19)하였고 대통령의 제청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유신정우회 소속 73명으로 구성되어 여당 세력이 절대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국회였다.

이와 같이 제9대 국회는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통치체제의 구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제적 1인 독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 한 이른바 ‘유신헌법’(주1)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박정희 독재정권의 대북 적대적 정책을 충실하게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그 어떤 결의도 담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통법부’ ‘거수기’ ‘행정부의 하수인’ 등 역대 국회 중에서도 가장 모멸적 비판을 받아야 했던 임기 6년의 국회였다.

그리하여 1973년 6월 ‘6.23 평화통일외교정책 선언’(주2)이라며 남북한 상호 내정 불간섭, 남북대화 계속, 남북한의 국제기구 동시참가 및 유엔동시가입 불반대 등을 내용으로 한 이른바 ‘6.23선언’을 발표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나 민주통일당은  “6.23선언은 2개의 한국을 인정하고 분단을 영구화할 위험이 있다”고 평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일 뒤인 6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이를 초당적으로 지지 결의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대통령의 평화통일외교정책 선언에 관한 결의안>을 가결하였던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는 박정희 대통령이 6.23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에 관한 정부 보고를 접수하고 현상유지를 바탕으로 하여 긴장완화를 지향하는 현 국제사회의 조류를 직시하면서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은 한민족의 자주적인 노력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다는 민족사적 당위성에 비추어 이 선언에 따른 국가정책추진에 필요한 총력 외교태세의 조성에 거국적으로 참여하여야 하는 시대의 요청을 절감하면서 평화를 지향하는 인류의 염원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향한 5천만 한민족의 의지를 담은 박정희 대통령의 6.23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을 전폭적 그리고 초당적으로 지지할 것을 결의한다.”(주3)

이 때 신민당의 정일형 의원은 반대토론에서 “… 국내정치에 있어서 시정을 요구하는 선행조건을 결정하여 중외에 발표한 바가 있는데 절차도 무시하고 합의사항도 깨뜨리면서 꼭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려고 하는 데에는 승복할 수가 없다”(주4)며 유일한 반대자였다.
 
그리고 1974년 10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안보 및 외교에 관한 질문을 통해 김영삼 의원은 “통일문제는 민족의 문제이지 정권의 독점물이 될 수 없는 것”이라며 정부는 남북대화의 주무가 “국회의 감시권 안에 있고, 국회를 통하여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국토통일원으로 넘기고 이를 국민적 차원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초당적인 ‘남북대화협의기구’를 국회의 상설기구로 구성할 것”을 주장하고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할 때에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저지하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중공이나 소련과의 관계 개선의 길을 모색하여 이를 실현시키는 적극적인 평화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나는 통일을 위해서 남북분단의 비극을 국제사회에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 지구상의 어디든지 갈 것이며 어떠한 사람과도 만날 용의가 있다”(주5)고 하였다.

1974년 11월 15일 국방부와 주한유엔군사령부가 발표한 북의 비무장지대 지하터널 구축문제와 관련하여 11월 19일 국회는 <북괴의 격화된 침략행위에 대한 UN메세지안>, <북괴의 격화된 침략행위에 대한 결의안>을 각각 의결하였다.
 
그리고 1975년 5월 20일 베트남의 공산화 통일과 관련하여 국회는 <국가안보에 관한 결의안>을 의결하였다. 이 때 결의안 내용은 “안보상의 위기에 직면해서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미국이 월남에서와 같은 실태를 한반도에서는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결의를 행동으로 표명 할 것”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한 덩어리로 단결해서 총력안보태세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주6)는 것 들이었다.
 
1975년 7월 9일 <사회안전법안>이 가결되었는데 그 골자는 “반국가사범의 재범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소재의 파악, 보호관찰, 감호 등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보안처분제도를 입법 신설하는 것”이었다.
 
이 법안의 토론 과정에서 김원만 의원은 “①이 법이 필요하다면 행정부에서 제출했어야 될 텐데 국민의 권익을 누구보다도 보호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되고 국민인권에 대해서 앞장서서 투쟁을 해야 될 우리 국회의원들이 이 법을 제기했다고 하는 이 자체에 대해서 유감의 뜻을 표한다. ②이 법안을 검토한 결과 너무나 많은 문제점이 있고 교각살우의 결과가 예견되기 때문에 이리를 잡으려다가 범의 무리를 만드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또는 열사람의 죄인을 놓지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 법의 정신에 입각해서 이것을 반대한다. ③반공법 제4조에 역점을 두는 것은 관제공산당을 많이 만들어서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세력을 키워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여야가 합의까지 봐 놓고 여당측에서 배신행위를 하는데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 이를 전적으로 반대한다”(주7) 고 했다.
 
또 1975년 10월 6일 국회 본회의의 신민당을 대표한 기조연설에서 김영삼 의원은 남북당사국과 미국, 소련, 중공, 일본 등 한반도 관련 6개국이 참가하는 ‘동북아 평화회의’를 제안했는데, 이 회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을 조성하기 위하여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과 남북한에 대한 미, 일, 중, 소 4개국의 교차승인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남북한 당사국이 주도적으로 6개국 평화회의를 실현하기 위해 먼저 ‘남북한외상회의’라는 새로운 남북대화의 창구를 마련할 것을 남북한 양측에 제의하였다.(주8)

1977년 7월 6일 국회에서 <주한미지상군철수반대결의안>, <반국가활동에 대한 결의안>, <시국에 관한 대정부건의안>등의 안건들이 의결되었고 같은 해 12월 17일에는 <반국가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 여당 단독으로 의결되었다.
 
이는 모두 여당의원들에 의해 발의된 것들이고 내용은 모두 한미동맹 강화와 대북적대 정책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분단유지 강화일 뿐 민족화해와는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는 그 자체가 남과 북은 물론 해외 동포들까지도 망라한 민족구성원 모두는 실로 가슴 벅찬 설레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공동성명 발표와 함께 이산가족의 만남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에서부터 남북조절위원회 회담이 진행되는 등 그동안 철저하게 단절되었던 남북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구성원 대중들의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발전을 향한 기대는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국회는 당연히 그 같은 대화들이 보다 발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촉구하고 대변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초보적인 통일 문제 논의조차도 외면한 채 전과 다름없이 대북 적대 정책과 한미동맹만을 강조하면서 다만 ‘승공 통일’을 내세워 통상적으로 분단의 유지를 위한 안보 논의로 일관했던 국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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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2년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우리 민족의 지상 과제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 걸고 초헌법적인 국가긴급권을 발동해 계엄령을 선포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국민투표를 통해 유신헌법을 확정 공포했는데 그 구체적 주요 내용은 ①대통령 선거제도를 직선제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한 간선제로 바꾸고 ②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 ‧ 국회해산권 등 초헌법적 권한을 부여하며, ③대통령이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회의원 및 법관의 임명권을 갖고, ④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소선거구제에서 2인선출구제로 바꿔 여야의원이 동시에 당선되도록 만듦으로써 국회의 비판기능을 전면 마비시키는 등 유신헌법은 대통령 1인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고 입법부와 사법부를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반민주적 악법이었다. 이후 10.26사태에 의한 유신체제의 종말에 이를 때 까지 민주주의 근본을 부정하는 유신체제에 대한 전국민적 저항과 이에 대한 독재정권의 탄압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한국사전편찬회 편,『한국근현대사사전』, 가람기획, 1990.11, 426쪽)

2. “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6.23선언) 내용
“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과업이다.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계속 경주한다.
② 한반도의 평화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며, 남북한은 서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침략을 하지 않아야 한다.
③ 우리는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한 남북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하여 성실과 인내로써 계속 노력한다.
④ 우리는 긴장완화와 국제협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이 우리와 같이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⑤ 국제연합의 다수회원국의 뜻이라면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우리는 북한과 함께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제연합 가입전이라도 대한민국 대표가 참석하는 국제연합총회에서의 ‘한국문제토’의에 북한측이 같이 초청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⑥ 대한민국은 호혜평등의 원칙하에 모든 국가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이며, 우리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도 우리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을 촉구한다.
⑦ 대한민국의 대외정책은 평화선린에 그 기본을 두고 있으며, 우방들과의 기존 유대관계는 이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것임을 재천명한다.
나는 이상에서 밝힌 정책 중 대북한관계 사항은 통일이 성취될 때까지 과도적 기간 중의 잠정조치로서, 이는 결코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여 둡니다.” (국토통일원 남북대화사무국,『南北對話白書』(1982.9.15.) 310~311쪽)

3. 제87회, 국회회의록, 제2호 (1973.6.27) 25쪽

4. 위 자료 25~27쪽

5. 제90회, 國會會議錄 제7호(1974.10.7.) 1~4쪽

6. 『國會史』(제9대국회사료편), 국회사무처. 1984. 12, 500쪽

7. 『國會史』(제9대국회사료편), 국회사무처. 1984. 12, 518쪽

8. 제94회, 國會會議錄 제5호(1975.10.6)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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