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 / 전 한신대학교 교수

 

단기 2351년(서기 2018년) 4월 27일일, 온 동네 목련 개나리 진달래 활짝 핀 봄 날 아침, 남북 두 동네의 두 님들이 판문점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이래로 역사는 다시 한 번 큰 일로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 두 동네 아침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남쪽 동네에서는 발목을 잡고 “김정은도 만나는 데 우리는 왜 못 만나느냐” 아우성이다. 농성 노동자들, 지체 장애인들이 그렇다. 그런가 하면 야당 지도자는 ‘못 간다. 특검부터 받으라’고 길을 가로 막는다. 동네 또 다른 한 쪽 구석에서는 여성들이 모여 ‘미투 미투’라고 법석인다. 정상회담 기간만이라도 정쟁을 지양해 달라고 호소까지 할 지경이다. 마당에 천막을 처 놓고 가는 길을 막고 있다.

이해 집단에 따라서는 통일 같은 것보다는 당장 생계 문제와 복지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대통령이 판문점 가는 길까지 막고 우리부터 먼저 만나 문제 해결하라고 하는 데는 마음 한 구석 유감으로 남는 것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민중민주 노선이다. 민족해방 노선과는 다르다. 성해방이 민족해방보다 더 중요하다. 전 세계 2000여 기자들이 몰려온다 해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길을 막는다.

아무리 역사적인 날, 세계적인 대사건이라고 하지만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날일뿐이란 사람들이 엄연히 남녘에선 한 동네 안에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해 집단에 따라서는 관심사에 따라 크고 작은 그리고 경중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소실대탐(小失大貪)’이란 말이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황금이 주요할 리 없다. 그들에게는 몇 푼어치 장난감이 더 탐날 것이다. 백작 작위를 받고 나라를 팔아먹은 인간들, 소현세자가 청나라 볼모로 잡혀 갔다가 다른 어느 것보다 묵과 벼루를 탐내 가지고 온 일화, 삼국통일을 한다고 당나라를 끌어드린 김유신과 김춘추, 역사는 이들에게 크고 작은 일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소련은 몇 푼어치의 돈을 받고 알라스카를 미국에 팔았지만 지금 그 곳은 천연가스 매장이 무진장이라고 한다. 마지막 사무라이가 소실대탐한 역사가 오늘의 일본이 있게 했다.

한편, 북녘 동네 분위기를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략 짐작은 할 수 있다. 그들이 지나 온 과거를 보면 추측은 할 수 있다. 1930년 대 북만 원정 때 천고령 눈 산에서 어린 병사 성림이는 죽어가면서 나를 버리고 빨리 가라고 다른 동지들을 재촉했다. 고난의 행군 때 장철구 여인은 도저히 눈 속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마찬가지로 버리고 가라고 독촉했다.

그 동네에서 부르는 애창곡 가운데 ‘사향가’가 있다. 아들이 집을 떠나 던 날 새벽, 어머니와 주고받은 노랫말. “내 고향을 떠나 올 때 나의 어머니 문 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귀에 쟁쟁해” 어느 어머니가 사지로 떠나는 아들에게 ‘잘 다녀오라’고 할 수 있으랴. 고리끼의 ‘어머니’,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깃발을 대신 잡고 선봉에 선 어머니들의 고향, 대략 그 동네의 4.27 아침 분위기를 이렇게 짐작할 수 있다. 북녘 동네에서도 발목을 잡는 사람들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동생 야곱에게 팔았다. 구약성서 기자는 야곱의 이런 사기 행각을 미화하고 있다. 그의 소실대탐이 오늘의 이스라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야당이란 사람들 얼굴에 에서의 얼굴이 겹쳐진다. 이들이 정권이 잡는 날 과연 희망이 있을까?

4월 27일 아침은 밝아 오고 있다. 야당 대표 홍준표는 정권을 잡으면 남북 정상회담은 모두 도루묵으로 만들고, 대통령을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릴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판문점에 돌아오는 날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각오하지 않고는 떠날 수 없는 무거운 발걸음. 그러나 눈 내리는 광야에 백마 타고 오실 초인의 발걸음.

2016년 초가을에서 소한 대한 지나도록 광화문 광장에 타오르던 촛불함성만 들으시고 뒤돌아보지 마시고 가시라. 험한 길, 고난의 길이지만, 골고다 언덕 뒤에서 숨어 눈물 흘리던 이름 없는 사람들이 역사를 바꾸었듯이, 이 동네에서도 몇은 ‘잘 다녀오시라’고 합창하리라.

4월이 가고 5월이 오면  신록과 함께 발목 잡는 모든 사람들 미워하지 마시고, 노동자들, 장애인들, 여성들, 성소수자들 모두들에게 통일조국의 행복을 가득 안겨다 주기만을 빈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통일이 자유 평등 평화 가득한 승리의 길임을 우리 모두 알리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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