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평을 쓰고 있는 오늘 이후 5일이 지나면 분단 후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 그야말로 북한의 역사를 새로이 써나가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끝내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종식시키는 데에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물론 2017년 5월 출범 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안정에 무엇보다 주력한 문재인 정부의 역할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선친의 ‘선군정치’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지금 세계무대에 화려히 데뷔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숨가쁘게 전개된 한반도 정세에 우리는 물론 전 세계가 충격을 받고 있다. 한반도 분단 이후 지금까지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북한이 이렇게 순식간에 천지개벽의 변화를 보여주리라 예상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트럼프의 미국, 시진핑의 중국 그 어디도 지금의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다. 정전이 종전으로, 그리고 다시 평화체제로 이어지리란 기대감이 우리 모두를 흥분케 하고 있다. 지긋지긋한 분단의 고통이 드디어 사라지려 하는 것일까. 우리는 드디어 한반도 통일이라는 역사를 마주하게 될 것인가.

물론 성급한 기대는,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북한에 대한 일방적 적대와 압박만큼 위험하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우리는 그 결과가 긍정적이리라 확신할 수 없다. 확신해서는 안 된다. 지금껏 우리를 비롯해 전 세계가 ‘희망으로서의 북한’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혼동해 빚어진 참혹한 결과를 간과해선 안 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자신들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생존을 모색하는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을 잊는 순간, 우리는 또 다시 과거의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 우리는 무지와 오만이 만들어낸 착각 속에 남북관계를 이어왔고, 북한을 상대했다. 북한을 비정상적인 괴뢰집단으로 규정하고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붕괴시키려 하거나, 적당히 당근을 제공하고 협력과 교류를 이어가면 알아서 스스로 우리에게 문을 열 것이라 믿기도 했다. 결국 지난 70년의 분단사는 남북의 동상이몽이 만들어낸 세월에 다름 아니었다. 북한 역시 우리를 제대로 몰랐지만, 우리 역시 북한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북한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만약 북한을 완전히 이해하고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거나 몽상가일 것이다. 혹은 사이비 지식인일 수도 있겠다.

앞서 지금 북한이 천지개벽의 변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틀린 말이다. 분단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역사와 남북관계를 꾸준히 살펴온 이들이라면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그 당시의 국제정세를 관찰해 온 이들이라면 북한의 오늘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혹자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지금 북한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요인으로 꼽는다. 또 다른 이는 문재인 정부의 치밀하고도 강력한 남북관계 개선 및 핵 문제 해결의지를 꼽기도 한다. 물론 어느 면에서는 모두 맞는 말이다. 일정 정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의 결과로서의 지금이다. 그리고 오바마 정부 8년의 무기력이다.

그 사이 북한은 현재와 같은 핵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더 이상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만지작거릴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는 중국을 비롯한 여타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란과 북한은 이미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협상을 하기 보다는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헛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기 보다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압박한다면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는 망상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여기에 오바마는 심지어 ‘핵 없는 세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지만, 북한의 핵문제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전략적 인내라는 외계적 단어만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 김연철, 『70년의 대화 –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창비, 2018. 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 모든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책의 필자는 바로 지난 과거에서 교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지명자는 과거 CIA 국장 시절 코리아 미션센터(KMC) 발족을 자신의 주요 업적이라 소개한다. 물론 북한을 압박하고 궁극적으로 무너뜨리기 위해서였겠지만, 북한이라는 상대를 조금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사실 이런 노력은 훨씬 오래 전부터 미국이 해야 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어땠을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관계개선과 교류협력에 앞장섰던 통일부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있으나마나 한 부처가 되었다. 오히려 개성공단을 폐쇄시키며, 전혀 근거 없는, 증거 하나 없는 논리를 들이대며 남북교류협력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을 능멸했다. 정부에 따라 널뛰기를 했던 국정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북한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는 극소수만 남게 되었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제일 나를 분노케 했던 것은 스스로의 역량도 없으면서, 불가능한 이야기를 떠들어댔다는 점이다. 그들은 늘 북한을 철저히 응징하겠다고 엄포만 놓았다. 때로는 남북 간 신뢰를 만들어가 우리의 국력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떠들었다. 둘 다 그럴 능력이 1%도 없었음은 당연하다. 할 능력이 없는 이야기로, 때로는 의지조차 없는 이야기로 국민을 우롱했다. 분단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좌절케 했다. 그 죄는 지금이라도 무겁게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정부로서 응당 감당해야 할 평화통일의 임무를 방기했다. 그 결과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였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의 회복과 정상화, 발전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 결과가 곧 개최되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서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자각한 것처럼 보이는 통일부도, 여전히 한심하긴 하지만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의 계산이 어떤 것이든, 비핵화 의지가 전략이던 전술이던, 그 따위 것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 따위 이야기로 현재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다고 보수 정치세력들이 믿는다면, 영영 그들은 재기할 수 없을 것이다. 평화를 원하는 국민의 염원을 외면한 채 국민의 선택을 다시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김정은의 전술 혹은 전략을 역이용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만들어 내는 역량을 갖추면 된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의 욕심을 이용하면 되고, 황제의 권위에 맞는 역할을 원하는 시진핑의 욕망을 이용하면 된다. 사면초가에 빠진 아베의 부활 의지를 이용하면 되고, 동아시아의 주요 역할자로 계속 남길 원하는 푸틴의 욕망을 이용하면 된다. 그럴 역량을 갖추면 된다. 그 외에 다른 이야기들은 모두 헛소리이거나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한반도 평화를 원치 않고, 분단 체제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수구 세력들의 발악일 뿐이다. 기레기들의 글에 굳이 흥분할 필요가 없듯, 그들의 발악에 굳이 반응할 시간이 없다.

현 정부가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해왔던 과거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에는 일견 동의한다. 하지만 그 방향에 따라 나는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게 아니라 이용당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나쁘지 않다. 현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그 영향으로 한반도가 안정되고, 평화가 정착된다면, 당연히 그 결과로 국민들의 지지와 선택을 받게 될 것이고, 이는 국내정치적으로도 정부와 여당에게 당연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를 두고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한다고 야당이 비난해봤자 무의미할 뿐이다. 자신들의 무능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뿐이다.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게 아니라 대북정책의 긍정적 결과가 국내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 뿐이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가져오는 정부와 정치세력을 반대할 국민은 없다.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말은 새삼스럽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국들과 협력과 조율, 때론 각국의 상황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부터 정말 실력이 드러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에 있어 정전협정 당사자이자,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인 미국의 역할과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다. 이는 남북 모두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간혹 느껴졌던, 미국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나, 지나친 의존을 지양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운명이 아닌 우리의 운명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물론 잘 인식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정부와 각 부처에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는 친미사대주의 세력들이 보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다가오는 역사적 담판에 앞서 이 책은 여러모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제는 통일국책연구기관의 장이 된 필자는 과거 70년의 남북관계를, 대결의 시대(분단 이후 1972년 7·4남북공동성명까지), 대화가 있는 대결과 제도적 합의의 시대(1972년부터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까지), 접촉의 시대(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부터 2007년까지), 제재의 시대(2008년부터 2016년까지)로 나누어 친절히 설명한다. 그리고 각 시대의 의미와 한계를 이야기한다.

이 시대들이 쌓여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어떠한 시대’로 규정하고 훗날 기억될 수 있을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의 역량과 의지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남북관계와 통일을 ‘예견’하는 원시 상태에서 벗어나 ‘예측’이 가능한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망언을 ‘말빨’로 착각하시는 어느 야당 대표가 ‘세월호 사건, 3년 해먹었으면 이제 됐다’는 또 다른 뉴 드립으로 많은 이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는데, 이를 패러디하자면 남북관계를 점치듯 무책임하게 떠들어댔던 시절은 70년이면 차고도 넘치게 충분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젠 최대한 정확히 예측하고 그에 따라 정책이 반듯하게 서야 한다.

이 책의 필자는 내가 무척 존경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글은 언제나 탁월하고 생각은 깊다. 소신을 굽히지 않는 기개도 존경할 만하다. 다만 지금 일부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스스로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특정 진영을 넘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권위를 갖게 되시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사족을 달자면, 한반도의 봄이 오는 것과는 달리 유난히 내게 다가온 겨울이 길고 혹독하기에, 여전히 글이 온순치 못함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런 거친 글을 쓰는 것조차 힘겹다는 점도 핑계 아닌 핑계로 말씀드린다. 늘 그렇지만, 내 부족한 글을 자신의 시간을 내어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들에게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만 드린다. 끝까지 살아, 기어이 살아, 다시 인사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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