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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쏘기<연재> 심규섭의 아름다운 우리그림 (183)
심규섭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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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2  07: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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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언/사인삼경-사인사예(士人三景-士人射藝)/지본담채/26x21cm/조선후기/개인소장. [자료사진 - 심규섭]

담졸(澹拙) 강희언(姜熙彦)은 숙종 때 태어나 영조, 정조 때 활동했던 중인출신의 화가였다. 겸재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은 서양화풍이 들어간 [인왕산도]가 있다.

영조 때 음양과(陰陽科)에 급제하여 감목관을 지냈는데, 음양과는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기상청과 비슷하다. 종8품 정도로 하급 기술직이다.

그럼에도 선비화가였던 정선에게 그림을 배우고 강세황, 김홍도와 교류했다는 것은 선비문화를 깊이 체득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위 그림은 선비들이 활쏘기를 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림에는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세 명 모두 다 커다란 갓을 쓰고 있다.
사실 커다란 갓은 활쏘기에 방해가 된다. 그럼에도 갓을 쓴 모습을 그린 것은 이들이 선비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장치로 해석된다.

세 명의 각기 다른 행동은 활쏘기의 순서를 보여주고 있다.
좌측의 한 명은 사대(射臺) 아래에서 활을 조립해서 점검하고 있고, 우측의 선비는 사대에 올라와 활을 든 채 화살을 꺼내고 있다.
그리고 중간의 선비는 활시위를 한껏 당겨 금방이라도 쏠 기세이다.
활을 만지는 손놀림, 우측 팔에 보호대를 장착한 모습, 활을 쏘는 자세는 상세하고 정확하다.

그런데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선비는 왼손잡이다. 보통 왼손으로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시위를 당기는데 그림 속의 선비는 오른손으로 활을 잡고 왼손으로 시위를 당기고 있다. 보호 장구를 장착한 모습만 보자면 사대 아래에서 활을 채비하는 사람도 왼손잡이다. 오른손잡이는 사대에서 화살을 꺼내는 사람뿐이다.

우리 전통 활은 오른손으로 쏘든 왼손으로 쏘든 별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왼손잡이의 비율은 평균 10% 정도이기에 일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왼손잡이를 두 명이나 등장시킨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서양과는 다른 우리그림의 조형원리가 숨어있다.
보통 서양에서는 좌측에서 우측으로 글을 쓴다. 흔히 가로쓰기라고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글을 오른쪽 상단에서 아래로, 좌측방향으로 쓴다.

이러한 글쓰기 방향은 그림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
서양그림의 서명은 대부분 우측하단에 한다. 이 말은 화면을 구성하는 방향성도 글쓰기 방향처럼 좌측에서 시작해 우측으로 끝난다는 말이다.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회화에서는 왼쪽에 낙관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화면의 방향성이 우측에서 좌측 대각선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궁중회화를 대표하는 [십장생도]의 경우에도 공간의 방향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흐른다. 그래서 그림 속의 사슴은 왼쪽으로 걸어가도록 표현되어 있다.

서양화 전시를 할 때는 왼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방향으로 나오게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그림의 경우는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나오게 한다. 그림의 공간방향과 감상자의 동선을 일치시키기 위함이다.

물론 그림에는 좌우방향이 없는 경우나 정면일 때도 있기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공간방향을 설정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위 그림도 공간의 방향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배치하고 있다. 낙관은 좌측 아래에 찍혀있다. 시선의 방향은 활 쏘는 사람을 중심으로 화살이 날아가는 왼쪽방향으로 전개된다.

이런 화면구성에서 오른손잡이가 활을 쏘게 되면 얼굴이 가려지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왼손잡이를 등장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 단원 김홍도/활쏘기/종이에 연한 색/27×22.7cm/단원풍속도첩/국립중앙박물관.
이 그림에서 활쏘기를 배우는 사람들은 선비라고 특정할 수 없다. 교관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군사훈련을 받는 농민일 가능성이 높다. 이 그림에는 낙관이 오른쪽 하단에 찍혀있지만 공간의 방향은 왼쪽으로 향하고 있다. 교관이 활쏘기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인데 활을 쏘는 사람은 왼손잡이다. 오른손잡이로 그리면 얼굴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좌측 상단에는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활쏘기를 하는 선비들의 진지한 모습과는 별 관련이 없는 장면을 왜 그려넣었는지는 의아하다.
하지만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림에서 활을 쏘는 사대(射臺)는 표현되어 있지만 과녁은 그리지 않았다. 실제 사대와 과녁과의 거리는 150m 정도라고 한다.
화면을 가로로 길게 만들어 그린다고 해도 활 쏘는 사람과 과녁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그림에서 원근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작게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조형적 부담에도 빨래하는 아낙들을 작게 그려서 멀게 보이게 하면서 넓은 공간감을 만든 것은 과녁이 멀리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또한 빨래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활쏘기도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선비들이 활쏘기를 하려면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개인이 소장한 것인지 관청에서 빌려 사용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살상용무기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 정서와 맞지 않는다.
실제 활쏘기의 한 방식인 애기살을 국가기밀로 정해 엄격하게 통제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무튼 활로 사람을 살상하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관청의 관리감독 하에 빌려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선비들은 소나무 아래에서 활쏘기를 좋아했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 그림의 우측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자칫 쏜 화살이 소나무 가지에 걸릴 것 같은 시각적 불편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소나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소나무를 중심에 놓고 화면을 구성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이 그림에서 소나무의 역할은 중요하다.
선비와 소나무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소나무에는 영원성,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나무는 활쏘기를 하는 선비들의 내면적 가치를 드러내는 미술적 장치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활쏘기는 단순한 놀이나 무술연마의 목적보다는 유학적인 내용을 체화하는 과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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