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에 오랜 시간동안 헌신해 온 동료가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더니, 곧 망설임 없이 대학원에 들어갔다. 한 번 결심하면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정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다시 공부한다는 것이, 게다가 평소 매사에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 하나 대충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이 또한 멋지게 해낼 것이란 믿음도 갖는다.

이제 막 다시 공부를 시작한 동료와 최근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해 이맘때와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란 단어가 어울릴 지금이다. 무력감과 두려움 속, 우리의 운명을 과연 온전히 우리의 힘과 의지로 결정할 수 있을까 비관했던 그때와 비교한다면, 지금은 100% 낙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의 힘으로 희망을 만들어내고, 평화를 이 땅에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게 되었다. 놀라운 변화이자 큰 진전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제 잇속을 차리느라 몽니를 부리는 이들이 존재한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에도 정부와 대통령을 향한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이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지난 3월 6일 자유당(아시겠지만, 전 자유한국당을 이렇게 부릅니다. 본인들 스스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수차례 밝힌 바 있거니와, 제 생각엔 그때 자유당이나 지금 자유당이나 수준이 엇비슷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당이라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 합의 발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다.

“대화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고, 전쟁보다 낫다는 주장의 잘못을 따질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강력한 표현이 아닌가. 솔직히, 이 집단의 구성원들이 과연 제정신일까, 궁금했던 때가 많았지만, 이번만은 심히 한심하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우리는 분단체제에 기생하며 연명하는 집단’임을 고백한 꼴이다.

또 하나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제기되었다. 이른 바 전문가 집단으로 불리는 학자들의 태도다. 한반도의 미래를 온통 비관적으로만 예측하고, 우리 정부의 역할과 역량의 한계만을 유독 부각하던 이들이, 이제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으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간 대화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자, 다시 이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평가한다. 또한 불과 얼마 전 자신의 발언과 글을 잊은 것 마냥 “난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부르대고, 오히려 정부와 대통령에게 “더 똑똑하게 처신하라”는 훈계까지 늘어놓는다. 눈뜨고 보기 힘들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얼마 전까지 북미 간 대화를 위한 접점 찾기가 어렵고, 우리가 양국을 이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할 만한 역량이 부족하다고 비아냥거렸던 이들이, 이젠 우리 정부에 “한국은 북미 간 중재자로 불려서는 안 된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비핵화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윽박지른다.

뿐만 아니다. 북한의 김정은을 형편없는 독재자, 극악한 살인자로만 몰아붙이고, 트럼프가 절대 북미 대화에 나서지 않으리라 장담했지만 지금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김정은의 외교 리더십은 만만치 않았고, 트럼프는 ‘핵을 가지고 있는’ 김정은과의 대화를 선택했다. 물론 헛다리짚은 이들 중 자신의 빗나간 판단이나 평가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현란한 말장난이나 말 바꾸기만 시전 했을 뿐이다.

아, 언론은 차마 말하기도 귀찮아 아예 생략한다. 솔직한 심정은 남북관계나 국내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의 절반 정도는 언론의 상업적이고 무책임하고 일단 싸지르는 보도 행태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주 미안하지만 그렇게밖에 안 보인다.

물론 모든 학자들이, 모든 언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니 공연히 흥분은 마시길 바란다. 그런 부류들이 짐짓 자신들이 대단한양 대접받기를 바라는 꼴이 우스워서 굳이 언급한 것뿐이다. 학자의 양심, 언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제 갈 길을 알아서 뚜벅뚜벅 가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소수라 안타까울 뿐이지.

결국 뚜렷한 해법은 찾을 수 없다.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있어 정답은 없어 보인다. 그저 현 상황이 부디 큰 변수 없이 지속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를 현실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누가 그것을 바라지 않겠는가. 아, 앞서 언급한 자유당은 제외해야겠다. 자발적 소외다.

북핵 폐기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듯, 절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그동안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하며 핵 개발에 힘써왔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성과를 쉽사리 포기할 순 없다. 또한 만약 북미 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양국 간 수교가 이뤄진다 해도 그 즉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폐기할 것이라 장담할 수도 없다. 협정은 언제든 파기될 수 있지만 한 번 폐기된 핵은 다시 복원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가오는 3차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한미 양국은 철저한 준비와 상호조율을 마친 뒤 테이블에 나서야 한다. 김정은의 우려와 불신을 씻어내는 동시에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의 길에 반드시 진입해야 한다. 막연하고 단순하게 ‘너희가 핵을 폐기하면 우리가 이것을 주겠다’라는 식의, 이미 이명박, 박근혜 시기 실패를 입증한 방식으로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날려버릴 것이 빤하다. 김정은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믿고 싶었던 것처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화성 15호를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이전엔 2006년 10월 9일 제1차부터 2017년 9월 3일 제6차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여섯 차례 핵실험을 감행해왔다. 그 사이 남한에는 대통령이 세 차례 바뀌었고, 북한은 한 차례 리더십의 교체가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까지 소위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결국 북한 핵 문제를 풀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왜 우리는 20여 년이 넘도록 상시적 북핵 위기를 겪고 있을까. 이는 결국 상대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우리 힘으로 상대를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만심이 보태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북한 문제를 국내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 역시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이러한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누구의 말처럼 이젠 지긋지긋한 핵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다시 첫걸음을 떼어야 한다.

▲ 이종태, 『햇볕 장마당 법치』, 개마고원, 2017. 12. [자료사진 - 통일뉴스]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린 정말 북한을 잘 알고 있었나?’ 그리고 ‘어떻게 해야 북한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데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북한의 어떠한 변화를 우리는 긍정적이라 표현할 수 있는가?’ ‘무엇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저자는 나름의 답변을 제시한다. 제재와 압박으로만 북한을 굴복시키거나 변화로 이끌 수 없다. 북한은 저자의 표현처럼 “한국전쟁 이후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도 생존한 나라”다. 제재를 이어간다면 오히려 정권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른바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적들의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는 논리가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화를 통한 접근이 옳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북한에서 핵이 가진 의미를 냉정히 인식하고, 북한이 진정 핵을 폐기할 수 있는 조건을 생각해야 한다. 북한에게 핵은 군사적 자주노선의 핵심이다. 북한은 “나라의 자주권과 생존권은 그 어떤 청탁이나 국제적 협약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 손에 틀어쥔 핵 보검에 의해서만 고수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평화협정이나 북미수교만으로 쉽사리 핵을 폐기할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

북한이 핵을 폐기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인 군사적 압박의 완전한 제거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는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완전한 중단을 뜻하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남은 하나인 북한이 스스로 군사적 자주노선을 완화하거나 폐기하는 것이다. 즉 북한이 군사적 자주노선을 스스로 현대화할 수 있도록 유도, 지원하고 압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북한의 군사적 자주노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외부세계와의 교류 활성화를 꼽고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중국의 사례를 강조한다.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을 통해 북한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설명을 잠깐 들어보자.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은 더디어 보이는 시장주의의 전파가 장기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사회·경제적 변화로 나타나는지 역력히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 사회주의 체제는 경제발전의 절실한 필요성 때문에 특구의 외국인 투자자에 한정해서 ‘개인’과 ‘시장’ ‘인권’을 허용하는 특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전통적 사회주의 체제에 이질적인 요소들이 지리적으로는 특구에서 전국으로, 인구 차원에서는 외국인에서 중국인으로 점차 확산되며 사회·경제 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버리고 있다. 국가와 그 국가를 다스리는 공산당이 모든 것이었던 중국에서 ‘개인’의 힘과 권리가 커지면서 개인을 보호하는 법들이 만들어졌고, 공산당의 자의적인 통치는 제한되고 인권 수준이 향상되었다.”-본문 249p

북한의 오늘은 어떤가. 중국이 위로부터 선별적으로 내려간 시장화였다면, 북한은 극단의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아래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시장화가 급속도로 북한 전체 사회에 퍼져나가고 있다. 이젠 북한 당국조차 전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북한은 잠깐이나마 남한과의 경제협력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은 ‘시장주의 제도의 실험 공간’이었다. 여기에서 ‘시장의 발전’을 위한 법제도를 초보적이나마 만들어 시행했다. 이제 개성에서의 경험은 나선지구에서 이어지고 있다. 더디지만 북한의 시장화와 법제화가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시장경제의 발전이 결국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점차 강화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중국이 그 좋은 예다. 이제 더 이상 중국에서 공개처형은 볼 수 없다. 결국 북한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외부의 강요와 제재가 아니라 북한이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면서 인민들의 자유를 증진시키고, 법률로써 사회를 다스려 나갈 때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북한이 그런 길을 갈 수 있도록 기회와 조건을 만들어주고 유도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교류협력정책이 이러한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제 다시 지금을 보자. 남문희 <시사인> 기자의 표현대로 ‘노련한 중재자’ 역할을 한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북미 간 오랜 반목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여전히 촘촘한 국제 대북제재는 변함없지만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극적인 변화 계기를 가져온다면, 저자의 바람처럼 우리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다시 열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창은 단지 남북의 창이 아닌 전 세계로 열려있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창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결단 역시 필요할 것이다. 핵 폐기라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다른 평가’가 요구된다. 신뢰할 수 없는 미국과 언제나 돌발 변수를 가지고 있는 남한을 온전히 믿기는 여전히 어렵겠지만, 오직 핵만으로 자주성을 수호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랜 제재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제 인민이 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인민’의 공화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저자의 구상과 주장은 일단 북한에 대한 국제 대북제재가 해제되고, 남북 간 경제협력이 자유로워야 현실 적용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어느 정도 풀려야 할 것이고, 때문에 장기적인 차원에서 고려하고 준비해야 할 문제다. 이는 저자도 책에서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우리는 장기적 차원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구상하는 데 소홀해왔다. 당장 정권을 잡는 게 중요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게 먼저였다. 그 사이 분단체제는 질기게 이어져 왔고, 남북의 수많은 구성원들이 그로 인해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굳건한 평화를 정착하고 나아가 통일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이고 깊이 있는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북의 평화와 화해, 협력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간절함을 담아내야 할 것이다.

때문에 그 어떤 얄팍한 보도, 기사나 학자들의 빤한 이야기보다 이 책은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저자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진지하게 분단과 평화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2008년 7월 11일은 금강산으로 관광을 갔던 박왕자 씨가 북측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한 안타까운 날이다. 하지만 동시에 남북경협에 헌신했던 수많은 기업인,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진 날이기도 했다. 이제 곧 구속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앞뒤 생각지 않고, 남북관계에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은 채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켰고, 이어 5·24조치로 경협마저 막아 버렸다. 이는 물론 북한의 도발도 원인이 되었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남북관계를 닫아버린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남북관계 파탄 의지’가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역사에 지울 수 없는 과오를 남긴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3월 9일, 우리 곁을 떠난 남북경협의 개척자 유동호 바두바투 대표님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그가 끝내 보지 못한 남북평화시대를 남아있는 우리들이 반드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가 생전 단 한 번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처럼, 더 나은 세상은 언제나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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