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제전이 자칫 투쟁의 현장으로 얼룩질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북한과 미국 간 길항(拮抗)의 장이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옮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양국은 ‘말싸움’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공방을 벌였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원거리 공방을 벌였는데 지금은 평창에 멍석이 깔리자 근접전(近接戰)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평창에서 양측의 공방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상반된 행보입니다. 북한은 평화공세를, 미국은 대결공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포츠 행사에 정치적 대결이나 이념적 공세를 가져와선 안 됩니다. 미국은 자중해야 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북측 인사들이 육해공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한반도에 아연 활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북측 고위급 대표단이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들어오며, ‘삼지연 관현악단’은 8일 강원도 강릉아트센터에서 예술공연을 펼쳤습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방남은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가자들 중에서 하이라이트입니다. 김 상임위원장은 북측 헌법상 ‘국가수반’으로서, 이미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방북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앞서 선발 파트너로 나온 바 있습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최고 존엄’의 가계(家系)이니 방남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김 상임위원장의 안정감과 김 제1부부장의 파격이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국제사회에 강력한 평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북측은 평창올림픽을 ‘민족적 경사’로 치르자고 했는데, 남측에 온 북측 인사들의 규모나 수준에서 볼 때 넘치는 의욕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평창올림픽에 임하는 미국의 자세는 다소 삐딱합니다. 8일 내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압박”을 되풀이했습니다. 펜스 부통령은 한국에 오기 전에 이미 평창올림픽에 참석하는 것과 관련해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러 가는 것”이라고 말해 분위기를 어둡게 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펜스 부통령은 지난해 6월 북한에서 풀려난 지 6일 만에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부친 프레드 웜비어 씨를 미국 대표단에 넣어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함께 참석할 예정이며, 앞서 9일 오전에는 탈북자들과 함께 경기도 평택 제2함대사령부 내 ‘천안함 기념관’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하나같이 북한 측을 자극하는 내용들입니다.

스포츠는 정치와 이념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은 평화의 제전입니다. 특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에서의 평창올림픽은 극적인 북측의 참가로 ‘평화올림픽’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갖췄습니다. 그런데 하객일 뿐인 펜스 부통령이 평화의 제전에서 북한에 대해 대결적 행보를 취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을 훼손시키고 동맹국을 난처하게 만드는 못된 행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질렸는데 이젠 펜스 부통령에까지 휘둘릴 판입니다. 거듭 미국의 자중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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