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만에 만난 남과 북이 관계개선의 의미 있는 첫발을 뗐습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한 남측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측은 9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고위급회담에서 3개항으로 된 공동보도문을 발표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북측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남북 군사당국회담 개최, △남북 고위급회담과 각 분야의 회담들 개최 등입니다. 이들 합의는 6.15시대 때의 장관급회담을 필두로 한 군사회담, 체육회담 등을 연상시킵니다. 단 하루 만에 6.15시대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먼저, 북측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남측이 그리도 바라던 평화올림픽이 담보되었습니다. 북측은 고위급대표단과 함께 민족올림픽위원회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역대급입니다. 다양한 색깔의 대규모 인원이 남측에 오는 것입니다. 북측은 경기장과 무대에서 응원과 공연을 한껏 뽐낼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양측이 공동문화행사를 치른다면, 이를 통해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남북 군사회담은 최근까지의 한반도 정세로 보아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군사회담이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갈지 예단하기가 쉽지 않지만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남북이 마주 앉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발생한 남북 적대적 군사 요인을 제거하고 최소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조치가 취해질 것입니다.

남북 고위급회담의 지속적 개최는 흡사 6,15시대 때의 남북 장관급회담을 연상시키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관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아울러, “각 분야의 회담들도 개최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했기에 향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간의 회담이 이어질 것입니다. 특히, 3항에서 “남과 북은 남북선언들을 존중하며, 남북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 민족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언명했는데, 이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원칙으로서 앞선 남북 합의들에서 나온 ‘자주’ 원칙 및 ‘우리 민족끼리’ 원칙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남측이 요구했던 이산가족상봉은 동계올림픽 기간(2월 9일-25일) 중에 설날(2월 16일)이 있기에, 북측이 ‘설 계기 이산가족상봉’을 받기가 거북했을 것입니다. 북측은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국제사회에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고 또 한반도 평화에 이바지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을 텐데, 여기에 이산가족상봉이 들어가게 되면 분위기가 분산돼 메시지 전달이 약해질 것을 우려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옥에 티는 남과 북이 이날 마지막 회의인 종결회의에서 ‘비핵화’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인 점입니다. 양측이 공동보도문을 읽고 교환한 뒤, 북측 리선권 단장이 이날 오전 전체회의 남측 기조발언에서 나온 ‘비핵화’를 문제 삼았다는 것입니다. 남측이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서 협력하면서 한반도에서 상호 긴장을 고조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조속히 비핵화 등 평화정착을 위한 대화 재개가 필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대목은 남측의 불찰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남북 당국간 회담이기에 구동존이에 입각해 북측을 배려했어야 합니다. 북측은 핵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며, 이날 리 단장도 얘기했듯이 “우리 동족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줄곧 밝혀왔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남측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남측으로서는 대북정책에 ‘한반도 비핵화’를 설정하고 있기에 굳이 이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면 회담이 몇 차례 진행된 뒤 꺼내도 늦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교훈은 남과 북이 아무리 잘하려고 작심하고 나와도 사소한 잘못 하나로 판이 깨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만나지도 못한 남과 북이 하룻밤에 만리장성 쌓듯이 이 정도로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저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마음만 먹으면, 그 이상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남북은 첫 고위급회담에서 그동안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고 제2의 6.15시대를 예견할 만큼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정도라면 남과 북의 ‘국민’과 ‘인민’에게 큼직한 새해 선물을 선사한 것으로 보아도 될 듯싶습니다.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을 ‘민족의 경사’로 치르고 또 이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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