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박근혜 탄핵’에 이어 문재인 새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남북관계의 복원에 따른 한반도 정세 변화가 기대됐으나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남북관계에서는 일말의 변화의 조짐도 없었으며, 오히려 북미관계는 ‘말폭탄’에 이은 ‘말전쟁’으로까지 나아가 설전(舌戰)이 실전(實戰)으로 비화할 정도로 험악해져 한반도는 몇 차례에 걸쳐 ‘전쟁 위기설’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북한은 11월 29일 발사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급인 화성 15호 성공을 두고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미국 역시 실제 완성 단계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상당 수준에 이른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는 화성 15호가 북핵 해법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이른바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한국은 얼어붙은 한반도 정세로 인한 좁은 운신의 폭에 허덕이다가, 지난 10월 31일 그간 한중관계 경색의 원인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해법을 담고 있는 합의문 발표를 계기로 한숨을 돌렸다가, 이번 12월 14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평화적 해결 등에 합의하고 사드 문제를 사실상 봉합함으로써 새로운 한중관계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올해 한반도 정세에서 유일하게 변화가 온 한중관계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어떤 변화를 줄지 주목하면서, 통일뉴스는 <2017년 송년특집>으로 ①북한 내부 ②북미관계 ③남북관계 ④한미·한중관계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올해 9월 3일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시켰다. 11월 29일에는 (이론적으로) 미국 본토 타격 가능한 ICBM ‘화성-15형’ 시험발사를 성공시키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른바 “11월 대사변”이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권좌에 오른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력 건설을 ‘지도’한지 6년만이다. 2012년 미국과의 ‘2.29 합의’ 파기, 핵문제 전면 재검토(외무성 비망록, 2012. 8. 31)를 거쳐,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천명(2013. 3. 31)한지 4년 8개월만이다. 

올해 1월 20일 미국에서는 정계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했다. 대북 접근법도 ‘전략적 인내’에서 ‘최대의 압박과 관여’로 바뀌었다. 

두 접근법의 공통점은 억지(군사)-제재(경제)-고립(외교)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 테이블에 나오도록 압박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제재-대화 투트랙 접근법에서 대화(협상)의 문턱을 높이고 제재(압박)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둘 다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차이점은 (명목상으로라도) 군사 공격을 옵션으로 갖고 있느냐 여부다. ‘전략적 인내’를 실행한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 등 동맹을 배려하여 선제타격 옵션 등을 거론하지 않았다. 반면, ‘최대의 압박 캠페인’을 이끄는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올해 4월과 8월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잇따라 불거진 배경이다. 
     
‘물밑접촉’에서 ‘8월 위기’까지

▲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첫날 신년사를 발표했다. [노동신문 캡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첫날 신년사에서 새로 등장하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대해 ‘관망’ 자세를 취했다. 핵 억제력 강화 조치를 꾸준히 실시하는 한편, 미국 신 행정부의 의중을 탐색하는 외교도 병행했다. 북한식 ‘투트랙’을 운용한 것이다. 

북미관계에 밝은 전직 고위당국자는 “양측이 협상으로 갈 좋은 기회를 최소 두 차례 놓쳤다”면서, 올해 2월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사건’, 6월 북한에서 풀려난 오토 웜비어 씨의 사망 사건을 거론했다.
 
오바마 행정부 말기,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과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 등이 뉴욕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20여 차례 만나 ‘오토 웜비어 석방’을 매개로 북미관계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이를 통해 양측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인 3월초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과 조셉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 간 뉴욕 회동을 주선했으나, 2월 13일 ‘김정남 암살사건’으로 무산됐다. 

여진이 잦아든 5월초 최 국장과 윤 특별대표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조용히 만났다. 6월 6일 북한은 지난해 7월 미국의 김정은 위원장 제재에 반발하여 폐쇄했던 ‘뉴욕채널’을 다시 열고, 웜비어 씨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알렸다. 윤 특별대표는 6월 12일 의사 2명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13일 혼수 상태인 웜비어 씨를 데리고 나왔으나, 6일 후 웜비어 씨가 사망했다. 북미관계의 문도 다시 닫혔다. 

▲ 미 항공모함 '칼 빈슨호'(CVN 70)가 3월 15일 부산항에 입항했다. [사진출처-주한미군사령부]

‘김정남 암살사건’으로 북미대화가 중단된 직후, 전략폭격기 ‘B-1B’와 항공모함 ‘칼빈슨’ 등이 동원된 한미연합군사연습이 시작되면서 한반도는 ‘4월 위기설’에 휩싸였다. 

‘웜비어 사망사건’으로 다시 대화가 끊어지자, 북한은 7월 14일과 28일 ICBM ‘화성-14형’을 발사했다. 미국 측 허버트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예방전쟁(8.5)’,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8.8)’와 ‘군사행동 장착완료(8.9)’ 발언이 쏟아졌다. 8월 9일과 10일 북한은 각각 전략군 대변인, 김락겸 사령관 명의로 ‘화성-12형에 의한 괌도 포위사격 방안’을 발표하며 맞섰다. 8월 14일 김정은 위원장이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당분간 미국의 행동을 좀더 지켜보겠다”고 한발 물러서고, 8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이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하면서 ‘8월 위기’가 가까스로 봉합됐다.

테러지원국 재지정 vs 핵무력 완성 

8월 15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각국의 노력으로 긴장됐던 조선(한)반도 정세에 일부 완화 신호가 나타났으나 8월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미국과 한국이 조만간 군사연습을 거행함에 따라 조선반도 정세가 다시 격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8월 21일 한.미는 ‘을지프리덤가디언’ 군사연습을 시작했다. 이에 맞서, 북한은 8월 29일 일본 열도 너머로 ‘화성-12형’을 발사했고, 9월 3일 ‘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실시했다.   
   

▲ 트럼프 대통령이 9월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완전파괴를 위협했다. [미 국무부 페이스북 영상 캡처]

9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를 통해 “대북 압박 최대화”에 합의했다. 이날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미국은 엄청난 힘과 인내를 가졌으나, 자신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을 것”이라 협박하고, “‘로켓맨(김정은)’은 그 자신과 그 정권의 자살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조롱했다.

사흘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가 세계의 면전에서 나와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모욕하며 우리 공화국을 없애겠다는 역대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를 해온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받아쳤다.    

9월 15일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 이후, 북한은 75일 간 휴지기를 가졌다. 미국 국무부 일각에서 ‘60일 도발 중단 시 대화’ 구상을 제기했으나, 백악관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별다른 메시지 없이 아시아 순방을 끝낸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다고 발표했다. ‘김정남 암살사건’과 ‘왐비어 사망사건’을 이유로 들었다. 

11월 29일 북한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또 하나의 신형 대륙간탄도로켓 무기체계’인 ‘화성-15형’을 시험발사하고,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12월 4~8일 미국은 한국과 함께 스텔스 전투기 F-22 6대 등 항공기 230여대를 한반도 인근에 투입해 대대적인 무력시위를 벌였다. 캐나다가 주최하는 유엔사 파견국 회의를 통해 대북 해상봉쇄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중국 측에는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러시아 측에서는 북한 노동자 고용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접점은 없나? 

북한의 기본 입장은 지난 10월 20~21일 ‘모스크바 비확산회의’에서 최선희 국장의 발표에 충실하게 담겨 있다. 

최 국장은 “조선(북)은 군사적 활동과 제재·압박 등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지속되는 한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핵보유국으로서의 조선과 공존하는 올바른 선택을 취한다면 출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적대시 정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적 트윗 등 비방.중상, △군사연습과 전략자산 전개 등 군사.핵 위협, △미국 국내법(양자) 및 유엔 안보리 결의(다자)에 기초한 경제 제재를 열거했다. 

최 국장은 “조선은 현실을 직면하고 문제를 조미 간에 해결할 것”이나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포기 등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고, 대조선 제재 부과를 반대하는 데 있어 여타국들의 공동노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입장은 북한을 절대로 핵 보유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북한이 진지한 비핵화 협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최대의 압박 캠페인’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한.미의 대규모 군사훈련 중단을 비핵화-평화협정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중국의 ‘쌍중단’ 구상에 반대하고 있다.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제재를 해제하거나 늦출 의사도 없으며, 북한 내 인권침해자들을 추궁하는 캠페인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미가 지금처럼 제 갈 길을 간다면 ‘공포의 균형’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IFANS 주요 국제문제분석 2017-46』)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북한이 2차 핵타격 능력을 확보하여 핵 억제력을 완성하고 한미가 확장억제 등 대응 군사력을 증강하여 전쟁 위기와 군비경쟁이 고조되는 악순환이 상시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의 창이 아주 닫힌 것은 아니다. 지난 12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 측에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다. 15일에도 “소통 채널은 열어놓고 있다”고 확인했다. 외교소식통은 “백악관 관리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싶다”고 말했다.  

▲ 펠트먼(왼쪽) 유엔 사무차장이 지난 7일 평양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났다. [사진출처-조선의오늘]

지난 5~9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은 리용호 외무상 등과의 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 및 안보 상황의 심각성에 뜻을 같이 하고 유엔과 북한 간 의사소통 정례화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과의 소통 채널 구축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북한이 유엔을 중재자 또는 완충지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내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 메시지를 발신한다면 그것 또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에 오른 것이 국면 전환을 위한 첫발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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