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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시대 교체<연재> 민경우의 ‘시대를 보는 색다른 시선’ (7)
민경우  |  mkw19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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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7  11: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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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저는 오랜 기간 학생운동, 통일운동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2012년부터는 사회운동을 접고 수학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요 관심사는 한국 수학교육을 혁신하는 것입니다.

5년 정도 일선 교육현장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전업활동가로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수학이나 과학, 첨단 과학기술을 접하면서 새로운 시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촛불이 있었고 신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촛불과 신정부 출현은 또 한 번의 정권교체라기보다는 어떤 시대의 종말과 시작 같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 초반 대도시에 출현한 청년 인텔리들의 꿈과 염원이 실현된 것으로 봅니다. 익숙한 표현을 빌리자면 386세대가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검토해 보는 것도 유익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수학 선생으로 일하면서 갖게 된 이런 저런 생각들을 격식 없이 적어 볼까 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보는 색다른 시선’ 정도로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 필자 주

         
1.

어머니는 자주 점집에 다녔다. 절과 교회에 다니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궁극적으로 믿는 것은 점이었던 것 같다. 공부 잘했던 아들이 학생운동에 휘말리자 어머니는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열심히 점집을 찾았고 나중에는 잘 될 거라는 점쟁이의 예언을 진심으로 믿었다. 

우리는 점이나 미신, 무당이나 주술을 무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미친 책을 한 권 들라면 주저 없이 애니어그램을 들겠다. 애니어그램은 고대 이슬람 수피즘의 성과물을 미국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보여주는 애니어그램의 뿌리도 점이나 무당과 다름없다.

아버지는 빈농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정치적으로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중졸의 아버지가 아들을 설득했던 논리의 대부분은 복덕방에서 노년 세대가 떠들썩하게 벌이는 정치 방담이었다. 거기에는 데이터도 없고 일관된 논리도 없고 사실을 검증하려는 노력도 없다. 당연히 아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종편의 정치토론은 아버지의 화법과 많이 닮았다. 종편은 구세대의 사유방식을 재현한 것이다. 종편이 노년 세대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노인들의 이야기는 귀담아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반면 우리가 배웠던 사회과학이란 게 얼마나 취약한가를 느끼곤 한다. 유장한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 신탁이나 플라톤 철학, 점이나 민중론은 거기서 거기다. 

아버지‧어머니는 20년, 10년 전 돌아가셨다. 앞서 말한 부모님과의 추억은 매우 오랜 이야기다. 내게 아버지‧어머지와 그들의 세대는 적어도 10년 이상 전에 물리적으로 끝난 것이다.

다시 촛불로 돌아가 보자. 

2005년 1955년생이 50세가 되었다. 그리고 7년 후인 2012년에 대선이 있었다. 2012년 무렵 박근혜를 지탱했던 노년 세대와 그 가치관, 신념체계 상당 부분이 와해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노년세대의 붕괴는 점점 심화되었다. 2016년이면 55년생이 이미 60세였다. 촛불을 시대적 맥락에서 보면 아버지‧어머니 세대가 물리적으로 퇴장한 공간에서 중년세대가 권력을 무혈 접수한 사건이다.  
   
2.

사교육과 입시는 마치 시장과 같다. 시장이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결정되듯 입시는 학문의 추세, 지적 기반의 방향을 매우 완만하지만 추세적으로 반영한다. 

옛날에는 영어수학을 주요 과목으로 구분했지만 지금은 국어‧수학‧과학이다.

수학문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의 수학 실력 부족을 우려한다. 엄청나게 수학을 많이 공부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수학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지금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10년 후 자신이 배운 영어를 사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들은 쿨하게 구글 번역기를 돌리고 네이버 이어폰을 사용해 의사소통을 할 것이다. 영어시험을 보는 이유는 너무 빨리 영어시험을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과목도 유사하다.   

의외의 복병은 국어이다. 며칠 전 수능 국어 문제에서 이른바 변별력을 확보했던 문제는 경제학에서 오버슈팅과 디지털 정보 부호화에 관한 것이다. 말이 국어지 국어가 아닌 것이다.

국어는 이제 말하기‧쓰기‧읽기‧듣기와 같은 기초적인 언어 능력과 문학적 감수성을 키우는 전통 국어에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그런 정보를 다룰 전문가를 키우는 국어로 변해가고 있다. 국어에도 수학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2018년 수능 국어에 대해 말이 많다. 그러나 국어가 이런 식으로 변모하지 않으면 수능 국어 는 존립하기 어렵다. 수능 국어가 붕괴되면 수능 전체가 붕괴할 것이다. 이과적 색채를 강화하는 국어의 변신은 시대의 추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고육책이다. 

입시와 교과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해가고 있다. 여러 번 들었던 학생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문과와 이과는 성향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공부 잘하면 이과, 공부 못하면 문과이다.

중3부터 문‧이과 통합이다. 내가 볼 때는 문과와 이과가 융합되는 것이 아니라 문과가 퇴출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톤이나 유가 정도를 뿌리로 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일관되게 설명하고자 했던 어떤 시대의 신념체계가 유효성을 상실한 것이다.

아버지 세대가 갖고 있었던 사유방식, 지금도 종편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신념체계가 무너지듯 중년세대의 사유 방식도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다.

3.

사람들은 입시와 교육하면 경쟁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내 경험은 많이 다르다.

정말 따분한 것은 영화나 드라마다. 레미제라블‧암살‧군함도‧택시운전사‧남한산성‧육룡이나르샤... 어찌어찌 볼 때가 있지만 지루하다. 여말선초를 다룬 육룡이나르샤를 재밌게 봤다. 그러나 스토리는 황당하다. 나는 이미 결론을 알고 있었고 드라마를 끌고 가는 구도는 30~4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위에서 거론한 역사물 중 예외는 없다. 나는 줄거리를 알고 있고 그것의 문제의식도 알고 있다. 심지어 그들이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잘 알고 있다. 비장한 언사와 화려한 그래픽으로 포장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30년 전 거리의 대학생이다. 그들은 30년 전 그들이 20대 초반일 때의 생각을 30년이 지난 중년의 나이에 여전히 던지고 있는 것이다.  
촛불의 규모가 컸던 반면 촛불을 지탱했던 담론과 사상, 지적 성취물은 취약하다. 성숙한 시민의식, 질서 있는 평화시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범국민적 참여, 탄핵과 대선에 이르는 질서 있는 정치적 과정...... 역사라는 문법에서 보면 좋은 말이지만 매우 모호한 평가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기억나는 것은 상당 부분이 위에서 말한 역사물이다.

훗날 역사가가 촛불을 기억하면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서술할 장면은 아마도 박근혜의 7시간 행적이나 최순실의 종교 편력 같은 막장 스토리일 것이다. 촛불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로크나 루소, 동학이나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가 없다. 

반면 학교나 학원은 생각보다 재밌다. EBS의 특집 다큐멘터리는 즐거웠다. 문명과수학, 빛의물리학, 기생 등이 그랬다. 나는 인간과 우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수학도 그랬다. 수학을 콩나물 계산하는 것쯤으로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기회만 있으면 다시 학생이 되고 싶다.

학교와 학원은 어쨌든 전진한다. 과열 경쟁과 입시에 찌든 것 같지만 거기에는 시대를 짊어지고 전진하려는 내적 욕구가 있다.   

시대는 거대한 지판을 경계로 변화한다. 시대와 시대를 가르는 지판은 여러 갈래의 작은 시대를 서로 엇갈려 쌓으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한다. 무수한 전진과 후퇴가 교차하며 최종적으로 하나의 지판이 다른 것을 밀어내면 다음 단계의 지판이 안정적인 균형을 잡는다. 

아버지‧어머니 세대는 10년 이상 전에 퇴장했지만 촛불은 그다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촛불의 성과는 시대착오적인 정권을 퇴출하고 새로운 정권을 만든 것인데 이는 그냥 될 일이었다.

세상은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키며 꿈틀대고 있다. 북핵이 그렇고 한국의 산업경쟁력이 그러하며 노동‧부동산‧저출산 문제가 그렇다.

그런 균열에 입시와 교과도 있다. 입시와 교과는 집요하고 끈질기게 문과의 존립기반을 흔들고 있다.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수학과 과학을 베이스로 하는 새로운 시대의 전조로 본다. 촛불 이후 진정한 시대 교체의 조짐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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