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마치 지구의 주인인양, 우주의 유일무이한 존재인양 자부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한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참화가 끊이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자명해진다. 인간은 극도로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며, 생각보다 매우 배타성이 강한 동물이다.

불완전한 인간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이다. 이를 갖추고 있는 이들은 변화가 극히 어렵고, 자신의 생각을 신념화, 절대화 나아가 신앙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기 때문에, 대부분 큰 재앙이나 비극을 초래한다. 히틀러나 스탈린, 폴 포트, 무솔리니 등 수많은 독재자들이 그러했고, 가깝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 예다.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독선과 착각은 대부분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 고정관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아주 크게 달라졌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과거 서구문명이 비(非)서구문명을 바라보던 눈 역시, 어처구니없는 소명의식과 더불어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미개하기에 문명화 시켜야 하는 종족, 지배하고 억압해야 하는 인종으로 비쳤을 뿐이다. 때문에 억압이나 학살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학살해도 무방한 존재였던 것이다.

▲ 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지음 / 전병근 옮김,『조선자본주의공화국』, 비아북, 2017. 8.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 책을 읽은 후 헤이즐 스미스의 <장마당과 선군정치>를 읽고 있다. “‘미지의 나라 북한’이라는 신화에 도전한다”는 부제가 말하듯, 지금까지 북한을 규정했던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과 함께, 북한의 탄생과 현재까지의 과정을 통해 국가차원의 체제 유지와 국민 각자의 생존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각각 어느 주체로부터 어떻게 추진되었는지, 그로 인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트럼프의 이번 국회연설에서 드러나듯, 한반도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북한은 다만 지옥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억압받는 이들이며, 개인적 행복이나 실리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다. 개인의 생각이나 신념 없이, 로봇처럼 김정은과 당의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2,500만의 사람들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오직 김정은과 당의 명령에만 따르며 살고 있을까? 정말 북한 주민들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이나 미래를 위한 꿈 따위는 없이, 오로지 당과 김정은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의 서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북한에 대해 틀에 박힌 설명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흔히 그 나라에서 오랫동안 고통 받고 있는 주민들에게 기특한 동정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그런 설명들은 북한 주민에게서 주체성을 박탈하고 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북한 사람들은 인격이라고는 없는 만화 주인공처럼 축소되고 맙니다.…그렇지만 보통 북한 사람의 주된 관심사는 보다 일상적입니다. 북한 주민도 여느 곳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고 자식을 잘 기르고 이따금씩 삶의 재미를 누리는 데 관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점점 이런 욕구들을 국가가 둘러친 우산 밖에서 만족시켜 가고 있습니다.”

헤이즐 스미스의 <장마당과 선군정치>와 이 책의 공통점은 북한에서 일어난 사회 변화의 주요 원인을 1990년대 고난의 행군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기 “국가와 주민 간 유대를 크게 약화시키면서 북한 주민들이 각자 살 길을 찾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정부는 예전처럼 경제활동의 유일한 조정자로 군림하기보다, 이제 유사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 변한 북한 사회에서 그저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저자들의 말처럼 북한 정부가 현재 북한 사회에서 “그저 한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이 이미 오래 전 붕괴된 북한 체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또 다른 ‘자력갱생’의 결과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은 국가가 보장해주지 못하는 생존 문제를 자력으로 이뤄온 것이다.

저자들은 장마당을 비롯한 회색경제지대, 주민들의 여가 생활, 달라진 패션과 유행, 휴대전화의 대량보급과 라디오 청취로 일어난 변화상 등을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소개한다. 더불어 북한의 권력구조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나름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저자들은 이를테면 김정은 위원장처럼, “현재 북한이 실질적으로 어떤 한 사람에 의해 운영되는 건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 “북한에도 뚜렷한 국가수반이 있지만 그 뒤에는 늘 일치되는 것은 아닌 이해관계와 성향을 가진 권력자로 이뤄진 층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오늘날 북한은 김정은과 그의 친척, 황병서와 김경옥 같은 조직지도부 고위 인사, 그리고 이들의 신임을 받는 군 고위 인사와 당 관료로 구성된, 형식적으로는 통일돼 있지 않은 연합체로 간주하는 것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때문에 저자들은 “설사 북한에서 강경 정책에 이어 개혁 정책이 나오거나, 떠오르는 유망주가 어느 날 갑자기 축출된다고 해서. 그게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절대 독재자 김정은이 나라를 좌우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김정은도, 다른 어느 개인도 북한을 완전히 혼자서 좌지우지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뜻할 뿐이다.”

이러한 주장에 얼마나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군부, 조직지도부, 개인비서국, 국가보위성(전 국가안전보위부) 등 주요 권력기관이 때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며 충돌하고, 그 사이 김정은이 있다는 이야기다. 김정은을 절대권력자로 인식하는 보통의 시선과는 사뭇 다르다. 이 주장은 아마 앞으로 북한의 모습을 지켜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에 담긴 이야기 중 특히 관심이 갔던 것은 북한의 마약 제조, 그리고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설명이었다. 마약 제조에 대한 이야기는 사뭇 생경했다. 북한이 국가 수입을 위해 마약을 대량으로 생산해 국제적으로 판매해 왔다는 주장은 조금 더 사실관계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북한 사회 내부에서도 마약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주장 역시 미심쩍다. 과연 북한은 마약으로 찌든 나라가 된 것일까.

정치범수용소 역시 우리가 구체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자료나 증거는 없다. 그곳에서 생활하다 석방 혹은 탈출한 이들의 증언에 대부분 의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수용소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만, 그 내부 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북한 정부의 정보 제공(물론 기대할 수 없다)이나 우리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이 제일 확실하다(물론 이것도 현실적으로 극히 가능성이 희박하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북한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내부의 수많은 역동성이 존재하며, 주민들이 각자 삶과 생존을 위해 나름의 방식을 체득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들은 새겨들을 만 하다. 특히나 북한에 대한 선입견,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말이다.

물론 저자들이 책을 쓰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많은 자료를 참고했지만, 그것으로 이 책이 북한 내부의 실상을 정확하게 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들 스스로 밝혔듯, 이 책이 북한의 전부를 말해주진 않는다. 다만 북한 내부의 역동성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국회연설을 통해 강조했던 것은, 지난 70여 년 간 우리가 지겹게 들어왔던 반공교육에 다름 아니었다. 무려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그리고 우리 내부에서도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서 오직 북한만은 변하지 않았다는, 혹은 변하면 안 된다는 이 믿음과 신화는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답은 물론 자명하다. 대화와 교류를 통해 우리가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가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들이 있겠지만, 그것을 끝까지 애써 외면하는 이들에겐, 결국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가 부디 트윗만 날리지 말고, 직적 북한과 대화하고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럴 용기와 혜안이 있다면 말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처럼 대화와 협상, 제재와 압박이라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적 이야기만 되풀이할 것인가. 끝까지 압박하면 결국 북한이 두 손 들고 나와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에서 언제쯤 벗어날 것인가. 외교적 수단으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원칙은 분명 지당하지만, 과연 군사적 압박 위주의 접근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게다가 한미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민망할 정도의 미국 의존적, 추종적 모습에서 과연 북한이 우리와 외교적 수단으로 대화할 생각을 가질지, 평화적으로 핵문제를 해결해 나감에 있어 우리를 당사자의 하나로 인정할 것인지 알 수 없다. 내가 김정은이라면 굳이 남한과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노예랑 대화할 이유는 없다. 그 주인과 하면 되니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장마당과 선군정치>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북한은 분명 특별한 국가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 역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욕망과 개인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북한 정부 역시 국민의 생존과 번영을 국가 존립의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핵무기가 단순히 김정은을 비롯한 권력집단만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어쩜 북한은 이미 내부적으로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당연한 사실로부터 북한 바라보기를 시작해야 한다.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분석해야 한다. 북한을 가치판단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사실 확인을 통해 평가해야 한다. 아직도 북한 정부가 자국의 주민들을 고의적으로 굶겨 죽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이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북한은 괴물이 아니다. 좀비가 아니다. 그렇게 규정하고 왜곡시켜버린 이들이 오히려 기형적 존재일 것이다. 북한이 괴물이라면 우리는 북한과 공존할 수도, 통일을 이룰 수도, 반대로 북한을 무너뜨릴 수도 없다.

그리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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