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한탄을 한다. 경험, 경륜보다 역시 재능이 우선이라는 것을 느낄 때 그렇다. 나름대로 글을 써온 지 10년이 훌쩍 지났는데, 강산이 변하는 세월동안 정작 내 글은 요지부동 변함없이 고집스럽게 형편없다. 재능도 그렇거니와 한껏 집중해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거나 연습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할 말이 없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내 게으름은 타고 났어! 어쩔 도리가 없다고! 흠.” 변명이 구차하니 그만 하겠습니다.

때문에 젊은 작가들이나 후배 기자들의 멋들어진 글을 보면 “캬하~!” 감탄하다가도, “에효, 이거 참 부끄러워서 원” 하게 된다. 그들의 타고난 재능도 부럽고, 그러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생각하면, 다시 한 번 요지부동 변함없는 내 글이 처량해질 따름이다. 하지만 단순하고 멍청한 난 금방 “헤헤, 좋은 글이야” 침을 질질.

놀랄 만큼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 어느 정신 나간 지역의 정신 나간 정당에서(그 지역의 그 정당에 몸담고 계신 분들은 속상하시겠지만, 솔직히 좀 심하셨어요.) 셋째 아이를 낳으면 1억 원을 지원한다는 조례를 추진했다가 결국 비난과 조롱을 한 몸에, 눈부시게 받은 뒤 포기했단 소식이 들린다. 잘 하셨어요. 흠.

거기에 지난해부터 65세 이상 노년층의 인구 비율이 유소년의 비율을 처음으로 앞질렀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대통령의 지적처럼 얼마 있지 않아 청년실업이, 청년 인구의 감소로 저절로 해소될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다행 중 더 큰 불행 아닌가. 심각한 해소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이 스스로 소멸해가고 있는 것이다.

앞서 꺼낸 두서가 조금도 없는 이야기들은,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단군 이래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현재 취업, 결혼 등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 속에 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은 곧 과거와 다르게 더 많은 이들을 부양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이다.

재능과 노력을 겸비했지만, 불우한 시대를 만나 자신의 꿈이나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한가득인 사회는, 결국 별 볼일 없다. 미래가 없다는 소리다. 게다가 그 숫자마저 자연적으로 줄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1억 원이 아닌 1억 개의 해법과 아이디어가 마구 나와야 할 위기 상황이다.

예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롯한 허무냉정(!)한 힐링 도서들이 무지하게 많이 팔려, 화제를 모으다가, 곧 청춘들에게 무지하게 욕을 먹어 다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개인적으로는 제목을 패러디한 <아프리카 청춘이다>를 듣고 배를 잡고 나뒹군 기억이 새록하다. 아, 죄송합니다. 눈치가 없군요.

함부로 타인을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어설픈 위로나 가식적인 친절 역시 상대로 하여금 모욕과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방아쇠가 된다. 때문에 멍청한 나는 혹시라도 분노의 총알을 맞을까, 어설프게 청춘을 위로한답시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그냥 딱 봐도 지쳐 보이고, 악전고투를 이어가고 있는 후배들에게 말없이 소주 한 잔을 건네곤 했다. “결국 네가 좋아서 마시는 것 아니냐!”라고 비난한다면, 흠, 완전히 부정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내 진심도 알아 달라고요!

먼저 우리 사회가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이 땅의 청춘 누구라도, 그 어떠한 차별 없이 도전하고 성취하고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나와 같은 게으른 멍청이가 아닌 이상 말이다. 지금처럼 위대한 청년들이 허무하게 좌절하는 시대는 분명 미친 거다. 당연히 미친 시대는 싫다. 그렇지 않아도 지구상에 미친 존재들은 차고 넘친다. 악, 트럼프 씨, 귀가 가려우신가요?

▲ 차벽 글·사진, 『청년 다산 - 절망을 경영하다』, 희고희고, 2014. 9.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저자는 다산 정약용의 청년시절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그를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 수많은 좌절과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뜻을 이뤄낸 ‘절망의 경영자’로 평가한다. 열아홉 번이나 과거에 낙방하면서도 뜻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정조의 총애를 받게 되기까지 그의 청년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그런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그는 훗날 많은 업적을 이루었고, 이후 오랜 귀양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다.

사실 그의 고난은 현재 청년들의 어려움과 여러모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것은 다른 문제지만, 과거공부 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알뜰하고 살뜰한 아내가 경제활동을 책임져야 했다. 다산은 처갓집의 도움으로 계속 수험생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많이 미안하고 또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 맘 알지.

공무원 시험을 열아홉 번이나 떨어진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이것은 백 번이 넘게 이력서를 넣어도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오늘과 닮아있다. 게다가 당시도 지금처럼 여러 부정과 부패, 부조리가 판치고 있었다. 다산은 불의의 시대에 좌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전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나름 뼈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정유라는커녕 은수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실력만이 살 길이었다.

결국 그는 오랜 도전 끝에 원하던 목표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정조를 만나 비로소 자신의 뜻을 펼친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주군을 위해 모든 재능을 쏟아내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역사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을 기본으로 하여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다산의 청년시절을 보여준다. 때문에 드라마틱한 전개나 급격한 반전보다는 마치 다산의 일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잔잔하게 이어진다. 살짝 지루할 수도 있지만, 저자가 직접 다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들을 답사하며 담은 사진들이 지루함을 덜어준다. 두물머리, 지금의 양수리에는 다산박물관이 있다. 매번 지나치기만 한 곳인데,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산과 같은 천재도 어린 시절 수많은 실패를 이겨내며 결국 뜻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니 청춘들아, 용기를 잃지 말고,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 꿈은 이루어진다!”

만약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책을 냈다면, 글쎄, 흠, 난 그다지 동의도 공감도 하지 못하겠다. 아마 대다수의 청년들도 “So What!”이라 답할지 모른다. 이미 그런 동기 부여, 용기 충만용 도서들은 넘치기 때문이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들은 시내 편의점만큼이나 많다.

나는 그보다는 그저 다산이 청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었을 지를 상상해보며, “어르신도 소싯적에 그러셨군요. 저도 요즘 정말 노답이네요. 이번 생은 정말 망한 걸까요?” 하며 투정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상투적인 위로와 힐링이 아닌, 그저 약간의 동지의식을 느끼는 정도? 그 정도가 딱 좋을 것 같다. 알고 보면 다산도 우리처럼 답 안 나오는 취준생이었다는 점, 그래도 어찌되었든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는 점. 그것으로 충분하다. 억지로 무언가 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여전히 힘든 세상이다. 언제는 마냥 태평성대가 있었을까. 지금의 청년들은 유례없이 가혹한 환경에서 청춘을 보내고 있다. 불의와 몰상식의 시대에서 다시 정의와 상식을 되찾아오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다시금 주춤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나 역시 상투적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부디 힘내라는 말을 전한다.

천하의 다산도 열아홉 번 떨어졌고, 개구리 왕눈이도 일곱 번 넘어졌다. 하지만 결국 일어났고 무지개 연못의 평화를 되찾았다. 반드시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환경에서 하고 싶은 꿈을 위해 힘껏 도전해보는 정도는 해보자는 것이다.

그렇다 안 되면? 흠.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네요. 이러다 맞겠지. 재능이 없고 요지부동인 글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다 상투적이기까지 한 나는 이만 물러가야겠다. 눈부신 청춘들이여, 부디 쉬어가면서 가시길. 참고로 다산도 여행을 참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 뱀에 다리를 달자면 북한에서도 다산은 꽤 인정받는(!) 역사적 인물인 것 같다. 우리는 보통우표에 한 번 다산이 등장했는데, 북한에서는 1960년, 1962년, 2011년 세 번에 걸쳐서 우표 모델로 등장했다고 한다. 남북 우표 수집가인 지인의 글에서 읽었다. 아마 다산의 토지분배 제도와 관련해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해석되며 비중 있게 다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달았던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상으로 뱀의 다리를 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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