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 KAL858기 청문회 증언 내용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 지워진 미 중앙정보국 비밀문서. [자료제공 - 박강성주]

1988년 4월 28일치 2급 비밀문서는 미국 정보기관들이 매월 함께 열던 테러 관련 회의 내용이다. 서울올림픽 문제도 의제였고, 논의에 따르면 KAL858기 사건과 1983년 버마 아웅산 사건은 남쪽을 대상으로 한 북의 테러 능력과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북은 앞으로 공격의 표적을 해외에서 찾을 수 있는데, 비교적 쉬운 탈출 경로로 자신의 개입을 부인하기 좋기 때문이다.

다만 북이 “KAL858기 사건에 대한 공분이 가라앉고(the furor over KAL 858 assuages) 올림픽이 더 가까워질 때까지” 미래 작전들을 연기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결과만 놓고 보면 북의 특별한 행동은 없었다).

1988년 2월 4일치 자료 역시 2급 비밀문서로, 사건에 대해 미국 하원 소속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가 같은 날 열었던 청문회와 관련된 것이다. 낮 2시에 중앙정보국도 청문회에 참석했는데 이 증언은 비공개로 이루어졌다. 3시부터는 국무부 관계자들이 증언을 했고 이는 공개된 형태로 진행된다.

그러면 중앙정보국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언했는가? 이에 대한 내용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다음 쪽은 지워져 있는 상태다.

중앙정보국과 KAL858기 청문회

1988년 2월 5일에는 중앙정보국 부국장과 국장을 위해 2급 비밀문서가 작성된다. 사건과 관련해 동아시아분석실과 반테러센터가 위의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에 보고를 했다는데, 구체적인 사항은 지워져 있다(또는 지워진 대목이 사건과 전혀 다른 내용일 수도 있다).

당시 위원회는 스티븐 솔라즈 민주당 의원이 이끌었고, 국무부 비밀문서에 따르면 그는 1988년 1월 5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북 개입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전해 듣는다. 그리고 2월 4일 솔라즈 의원은 사건 청문회를 개최했고, 중앙정보국 보고는 청문회 전에 또는 그날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위의 4일치 문서를 고려한다면 이는 청문회에서 증언을 했다는 뜻일 수 있다).

1988년 2월 22일치 문서에 따르면, 중앙정보국은 청문회 관련 자료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며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검색 기록을 보면 해당 자료는 중앙정보국과 솔라즈 의원 사이의 논의에 관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그 내용이 무엇이고, 또 잘못된 사항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두 지워져 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중앙정보국 관계자(1-2명)도 청문회에서 증언을 했다는 점이다.

1988년 1월 6일치 문서는 중앙정보국 소속 해외방송정보원 서울 지부가 작성한 월간 보고서다. 1987년 12월 관련 사항인데, 북이 KAL858기 사건과 무관하다고(innocence) 주장했다는 보도 등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한국 주재 미국 대사가 사건과 관련해 버마 아웅산 사건과 북의 연관성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며, 이를 제공했다고 한다.

1988년 2월 16일치 문서는 중앙정보국 동아시아분석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1월의 북한 관련 동향을 정리해놓았다. 여기에는 사건 수사발표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의 대북 제재조치,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의 대북 외교관계 단절 등이 요약돼 있다. 또한 북이 수사결과에 대해 “거짓, 기만, 그리고 모순으로 가득찬 조작(a fabrication full of lies, deception, and contradictions)”이라고 반발했다는 내용도 있다.

한편 미국 하원은 1988년 3월 17일 반테러와 무기수출법에 관한 청문회를 열었는데, 이번에 발견한 자료에 이 기록도 포함돼 있다. 국무부 관리가 청문회 증인으로 나왔고 테러지원국 관련해 북을 언급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모두 KAL858기 사건과 이에 대한 조치에 관한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북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력은 적다(LITTLE DIRECT INFLUENCE). 그래서 소련과 중국 등을 통해 북이 테러정책을 포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다.

또한 이 관리는 북에 대한 미국의 노력이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모범사례라고 지적한다. 여러 가지 선택이 있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정치외교적 조치와 경제적 조치는 물론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군사적 조치도 포함돼야 한다고 말한다.

1987년 12월 21일치 2급 비밀문서는 당시 격주로 발행되던 테러리즘 보고서다. 이 문서는 내가 정보공개 청구로 얻은 뒤 일부 내용을 알린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때 지워져 있던 대목의 대부분을 지금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김현희(하치야 마유미)와 김승일(하치야 신이치, 공범으로 알려짐)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기본 사항도 확인할 수 있는데 수사발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목되는 부분은 사건과 북의 연관성을 서술한 대목이다. 이에 따르면 최초 북 개입에 대한 혐의(Initial suspicion of North Korean involvement)를 품게 한 것은 두 가지였다. 공격의 표적이 한국이었다는 것과 북 출신이 체포나 조사를 피하려고 보통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포함해 몇몇 대목이 더 공개되었지만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는 듯하다.

대통령 선거와 과거청산

이상으로 최근에 발견한 자료들을 나름대로 살펴보았다. 이전부터 검색을 해왔지만 왜 이제서야 보게 됐는지 아쉬운 감이 있다. 동시에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더라도 실종자 가족들의 계속되는 고통과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KAL858기 사건은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어났다. 이 대선에서 노태우 집권여당 후보가 승리하게 된다. 그 뒤 30년이 흘렀다. 그 여당에 뿌리를 두고 있던 대통령이 탄핵되어 2017년 대선이 일찍 치러졌다. 결과는 문재인 야당 후보의 승리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은 적폐청산과 과거청산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안기부(현 국정원)의 발표를 둘러싸고 수많은 의혹과 재조사 논란을 일으켜왔던 KAL858기 사건. 조심스레 묻고 싶다. 30년, 실종자 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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