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남북의 대화 시간표

북한이 28일 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를 단행했다. 문재인 정부의 ‘신 한반도평화비전(베를린구상)’ 발표에 이은 남북대화 제안을 보기좋게 차버린 모양새다. 하지만 정부는 ‘제재와 대화’ 병행 입장이라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의 다음 카드는 과연 ‘대화’일까.

북한의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는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첨단무장장비 연구개발사업이 활발해지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미 군 당국의 2020년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배치 분석이 무색하게 지난 4일 ‘화성-14형’을 발사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심심치않게 크고작은 ’선물보따리‘들을 자주 보내자”고 말해, 미사일 추가발사는 예견됐고, 20여일 뒤인 28일 밤, 2차 시험발사가 단행된 것.

이에 앞서 북한은 ICBM 시험발사를 위한 단계를 밟아왔다. 2월 지대지탄도미사일 ‘북극성-2형’ 시험발사, 3월 대출력엔진 지상분출시험, 5월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시험발사, 지대지탄도미사일 ‘북극성-2형’ 시험발사 등 ‘첨단무장장비 연구개발사업’을 진행했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ICBM 개발이라는 시계추 대로 움직여왔음을 시사한다. 이는 유례없는 촛불혁명으로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남북대화를 제안한 시점과 북한의 시간표가 서로 맞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문재인 정부, 북 ICBM 발사에도 대화의 문 열어둬

일면 다행스러운 점은 북한의 연이은 ICBM 시험발사에도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일 1차 ICBM 시험발사이후 문 대통령은 6일 ‘베를린 구상’을 발표, 북한 붕괴의사가 없는 등 ‘4NO’를 강조하며, 남북대화 의지도 피력했다.

여기에 후속조치로 지난 17일 7.27 정전협정체결일 계기 군사분계선상 적대행위 중지를 위한 남북군사당국회담, 10.4선언 10주년 및 추석계기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 등을 제안한 것. 물론, 북한은 ICBM 개발이라는 자신들의 시간표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제안에 화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북한이 자신들의 시나리오 대로 ICBM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는 시기이니 만큼, 정부의 대화제안에 역제안으로 대화의 장에 나올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2013년 3차 핵실험 당시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북한은 3차 핵실험을 단행해,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연합군사연습으로 남북대결은 극에 이르렀고, 개성공단의 문은 일시 닫혔다. 그러나 6월 북한은 특별담화로 남북 당국회담을 제안했다.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6.15선언 및 7.4선언 민족공동행사 개최 등이 의제였다.

이에 따라 남북당국회담은 개최 직전까지 갔지만, ‘급’ 논란으로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대화에 의지가 없었다는 이유가 한몫 했다. 경색국면을 풀겠다는 북측의 손을 남측이 ‘급’을 핑계로 받지 않은 것.

2013년과 2017년의 상황은 다르다. 남북대화에 큰 관심이 없던 박근혜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ICBM 발사에도 대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9일 성명을 발표, ICBM 발사를 규탄하고 대북제재를 위한 국제공조를 공언했지만,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책임있는 당사자로서 인내심과 끈기를 갖고 한반도의 비핵화 및 평화.안정을 위한 노력을 중단없이 경주해 나갈 것이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베를린 구상의 후속 조치로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과 긴장완화를 위한 회담에 지금이라도 호응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북측에 호응을 촉구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과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도 31일 정례브리핑에서 거듭 북한을 향해 대화의 문이 열려있음을 상기시켰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북한 시나리오 대로 움직인 것 같다. 이제 대화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북한이 대화에 호응하면 우리는 대화에 나간다. 물론, 미국을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8월 한반도 정세는 살얼음판, 문재인 정부 시험대에

그러나 이같은 희망섞인 남북관계 개선 전망은 안이한 사태파악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은 미국과의 전면전을 벌이고 있고, 남측의 낮은 단계의 대화제의에는 현재 별 관심이 없다”며 “더구나 미국과 손잡고 ICBM 발사에 대한 대응조치로 무력시위와 사드배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남측과 대화에 나설 북측의 내적 동력이 없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나아가 “북한의 ‘핵무력 건설’ 프로그램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인공위성 발사나 6차 핵실험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며 “대북 압박책을 공공연하게 실행하면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공개 제의하면 북측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자신감은 어디서 연유한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남북대화 복원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외교부 인맥을 주축으로 한 문재인 정부가 미국.일본 등과 공조해 유엔 안보리에서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에 동참하고, 독자적 대북제재에 나선다면 경색국면은 오히려 더 깊어질 것이다. 여기에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연합군사연습도 예정되어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또다시 구린내나는 상통을 들이밀고 핵방망이를 휘두르며 얼빠진 장난질을 해댄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차근차근 보여준 핵전략 무력으로 톡톡히 버릇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당초 8.15 광복절을 남북관계 개선의 기점으로 보고 있었다. 북한이 남북군사당국회담과 남북적십자회담 제안에 호응하고 있지 않지만,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남북대화를 역제안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있다.

그러나 남측이 운전대를 쥐려면 남북 특사교환이나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먼저 제안해 상황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상황이 북.미 간이나 미.중 간 ‘빅딜’ 가능성이 커진데 반해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되기 쉬운 쪽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측은 문재인 정부가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선언하고 민간교류와 경협 등에서 가시적인 정책 변화가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며 “특사는 공식 문건으로 제기하고 창구도 공식 창구를 통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가 남북대화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추가,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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