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군함도' 포스터. [사진출처-Daum영화]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내내 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극장을 나올 때는 몸은 뻐근하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딱히 앞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봤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영화 군함도 일반 개봉을 하루 앞둔 25일 저녁 왕십리 CGV 시사회장. 132분 영화상영 시간동안 몸은 마치 군함도의 지하 채탄장과 10미터 콘크리트 벽을 치고 올라오는 파도에 늘 젖어있는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류승완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군함도를 실제와 가깝게 세트로 재현해서 배우들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그곳에서의 생활이 어땠는지 최대한 실감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감독의 의도는 거의 적중한 것 같다. 영화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서는 관객들의 첫 말은 '무시무시한 하시마', '어쩜 저렇게 똑같이...(만들었나)', 극장을 나오면서 소곤거리듯이 그랬다.

시커먼 수직갱도로 하강하는 엘리베이터, 수시로 터지는 갱도의 가스와 바닷물, 전복되는 탄차, 그리고 거기 깔리거나 속절없이 부딪쳐 튕겨져 나가는 육신, 콩깻묵에 멀건 낟알과 바퀴벌레가 먼저 그랬다.  보기에도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마워할 줄 모르는 조선인'을 짐승처럼 다루는 일본인이 그래도 '조선인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사는 것도 제 맘대로 못하다가 죽음의 순간조차 일본인에게 맡긴' 조선인들이 식민지 조선땅뿐만 아니라 이곳 하시마에도 곳곳에 있었다. 그건 앞이 보이지도 않고 숨도 쉴 수 없는 막장보다 더한 지옥이었다.

▲ 이희자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대표(왼쪽)와 아버지가 하시마 탄광에 끌려가 고통받은 구연철 할아버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그래서일까? 아버지가 하시마에 끌려가 고통받은 희생자인 구연철 할아버지는 영화 시작 전 인사말을 하면서 '군함도'라는 제목부터 타박을 놓았다.

"군함도라는 이름만 들어도 전율이 느껴진다. 군함도는 생긴 모양이 그렇다고 해서 일제가 지은 이름일 뿐 원래 섬 이름은 하시마이고 끌려간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귀신섬, 감옥섬이라고 불렀다고..."

구 할아버지와 이희자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대표는 "나라없는 민족, 조국이 없는 민족은 그토록 처절하게 노예생활을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시 한 번 민족이 얼마나 소중하고 조국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새삼 느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영화에서 주요 장면으로 묘사된 집단 탈출은 꾸민 이야기이다. 하시마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삶은 영화보다 훨씬 잔혹했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이어 1945년 8월 9일 하시마와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팻맨을 투하한 후 죽음의 재로 뒤덮인 그곳 현장에 아무런 보호장구도 없이 피해 복구를 위해 투입된 것은 하시마의 조선인 노동자들이었다. 

전함 무사시를 만들던 미쓰비시의 나가사키 조선소에 끌려와 일하던 최소 6,000명의 조선인이 그곳에서 팻맨의 버섯구름 아래 스러져갔고 아무 것도 모른 채 하시마의 조선인이 그곳에서 복구작업이라는 미명하에 또 죽어갔다.

나라가 식민지가 되면 백성은 개, 돼지와 다름없었기 때문에 죽어서 숫자로도 제대로 기억되지 못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 출판한 도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 따르면,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전체의 3분의 1에 달하는 500~800여명의 조선인이 하시마 탄광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것으로 짐작되고 하시마 바로 옆 다카시마 탄광까지 포함해 1945년 당시 1,299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있었다는 기록도 있으나 50여명의 조선인이 하시마에서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정만이 남아있다.

▲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왼쪽)과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영화 시사회를 맡아 진행한 박석민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이 영화가 일제 강점기 그들의 전쟁범죄를 전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또 앞으로 사전 예매율로는 기록이 깨지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노동자들의 관람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영화 군함도를 통해 그때 얼마나 처절한 강제노동이 있었고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지난해 8월 24일 일본 교토의 단가망간 기념관 앞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운 바 있는 양대노총은 오는 8월 12일 서울 용산역과 인천 구 미쓰비시 회사터에서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해 단가망간 기념관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건립하기 위해 오사카 공항까지 갔다가 일본 당국의 입국불허로 혼자 다시 돌아와야 했지만 어쨌든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일 당국의 반역적인 위안부 합의에도 불구하고 일본땅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웠던 일은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돌이켰다.

부친과 삼촌이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였다는 최 직무대행은 더 많은 노동자들이 선배 노동자들의 피어린 삶의 흔적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관람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8월 24일 일본 단바망간 광산 일제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건립한 양대노총은 지난 2월 북측과 '남북노동자 2018년 강제징용노동자상 평양건립'을 합의하고 2월 14일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