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국가보안법이 미제국주의에 보내는 편지 한통이 있다. 편지를 쓴 국가보안법은 태어나 지금까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절체절명의 위기앞에서 난생 처음으로 자신을 낳아 지금까지 키워준 미제국주의에 항의를 한다.

위기는 바로 미제국주의가 핵과 미사일을 들고 나온 북쪽의 빨갱이패들과 협상을 통해 평화협정을 맺으려고 하면서 벌어졌다.

▲ 남정현, 『편지한통-미제국주의 전상서』, 도서출판 말, 2017. [자료사진 - 통일뉴스]

국가보안법은 미제국주의에게 "너 죽고 나 죽자는 비장한 각오로 임하기만 하면 그까짓 것들 당신에겐 단 한주먹감"이라고 따져보기도 했지만, 미제국주의는 하도 내려쳐 퍼렇게 멍든 가슴까지 보여주며 "내 평생에 그런 전쟁이 없었다. 항시 너 죽고 나 살자였다"고 대꾸한다. 

그런데 '너 죽고 나 살자'가 안되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전쟁. 생사를 건 줄다리기. 전쟁보다 더 어려운 협상' 이런 걸 해야 하니 허구헌날 가슴을 내려칠 수 밖에 없는 게 미제국주의의 요즘이다.

국가보안법. 그가 대일본제국 시절 전생을 치안유지법의 몸으로 살때 천황이 내렸던 단 두마디는 '죽일 놈은 가차없이 죽이고 살릴 놈도 가차없이 살려라'였다. 

미제국주의가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재생시키면서 토씨하나 다르지 않게 이 당부를 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죽일 놈은 가차없이 죽이고 살릴놈도 가차없이 살렸'지만, 지금 자신을 총애하던 미제국주의는 제 살길을 찾겠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겁지겁 달아나고 있다.

1933년 충남 당진 출생의 남정현 작가가 지난 2011년  여든이 코 앞인 나이에 계간 『실천문학』 에 발표한 단편 『편지한통-미제국주의 전상서』의 대략 줄거리이다.

이미 1965년 미군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분지』를 발표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남정현 작가에게 분단의 현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다만 5차까지 진행된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시험발사 등으로 격동하는 최근 한반도의 상황을 떠올리면 분단 현실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과 극복을 위한 남다른 열정과 체력에 감탄하게 된다.

도서출판 말은 지금은 여든 다섯의 나이가 된 노작가가 서른 세살인 1965년과 쉰아홉때인 1991년, 일흔아홉 나이인 2011년에 발표한 3편의 소설 『분지』, 『신사고』, 『편지 한 통』을 묶어  『편지 한 통-미제국주의 전상서』라는 소설집을 냈다.

모든 작품이 한결같이 미국, 분단, 통일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여전히 풍자와 해학이 넘친다.

홍길동의 10대손인 홍만수가 주인공인  『분지』에는 해방 후 미군을 환영하러 나갔다가 강간당한 후 실성해 자살한 그의 어머니와 미군 스피드 상사의 세컨드가 된 여동생 등 수난의 민족사가 그려지는가 하면, 홍만수가 숨어있는 향미산(向美山, 한반도)을 핵무기로 위협하는 미군의 모습과 홍길동 전설을 재연할 것이라며 홀연히 사라지는 그의 모습이 경이롭게 묘사되어 있다.

『신사고』에서는 천황에 충성한 친일파이고 해방 후 미군에 복종하면서 출세한 허허선생을 등장시켜서 통일문제가 세상의 관심사가 되는 순간에도 안전한 지하궁전을 지어놓고 '미군철수', '북한은 통일의 동반자' 등의 발언을 하는 위선적인 '신사고'를 주창한다는 날카로운 상황인식을 보여준다.

출판사는 서평에서 "미국과 분단 문제라는 한 우물을 파면서, 여전히 분단의 최전선에 선 초병으로 살고자 하는 남정현 작가의 소설은 몇 가지 점에서 독보적인 의미를 지닌다"며, "작품 활동 초기부터 60년간 소설의 주제가 변함없이 미국, 분단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첫번째 독보적인 의미로 꼽았다.

『편지 한 통』의 일부 대목은 작가의 손이 떨려서 구술로 완성했다고 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