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위한 정원’ 프랑스 파리 앙드레 시트로엥 공원의 조경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원예가, 조경디자이너 질 클레망. 현재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를 거쳐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큰 영예로 알려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이기도 한 저자의 전 세계 정원 순례기이다. 생태주의 정원 이론가로 잘 알려진 그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유토피아니스트”라 불리기도 한다.

앙드레 시트로엥의 조경을 맡게 되었을 때, 그는 이 공원을 통해 ‘움직이는 정원’이라는 혁신적인 정원 개념을 선보였다. 이는 자연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정원으로써, 정원사는 자연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대신 최소한의 역할로 조정자에 머무른다.

나에게 정원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인식되어 왔을까. 돈 많은 이들의 사치와 허영의 욕망을 채워주는 ‘보여주기 위한’ 장식품? 혹은 여전히 우리나라 정서엔 맞지 않는 서구의 단편?

▲ 질 클레망 지음/이재형 옮김, 『정원으로 가는 길 - 역사와 인문학의 세계 정원 순례』 , 홍시, 2012. 4.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생각의 편협함을 절감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 지구 역시 하나의 커다란 정원이지 않은가. 그 아름다운 정원을 우리 멋대로 황폐화시키고 있지만 말이다.

저자는 아프리카 피그미족의 정착마을에서 ‘최초의 정원’을 발견한다. 그가 본 것 중 가장 보잘 것 없고 가장 초기적인 형태의 정원.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정원이기도 했다. 땅콩 세 그루와 카사바 다섯 그루, 바나나 나무, 토란 따위를 보호하기 위해 대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초라한 정원, 이것이 바로 유목을 그만 두기로 한 인류 최초의 정원이었던 것이다.

이어 그의 여정은 베르사유 궁전의 채소밭 정원, 인도네시아 발리의 수직정원, 장 자크 루소가 생을 마감한 에르므농빌 정원, 이름 바 ‘밤의 정원’이라 명명한 동굴들, 인도 잔타르 만타르의 ‘별들의 정원’까지 이어진다. 그가 바라보는 수많은 정원들은 모두 제각각 인류의 지혜와 이상이 담겨져 있었다.

그의 여행은 호주의 척박한 지역 록하트에서 잠시 멈춘다. 그리고 호주 원주민들이 정원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궁금증에 빠진다. 과연 왜 그럴까? 수년간 정원의 부재를 이해하지 못했던 저자는 《꿈의 비밀》이라는 노래를 통해 그 답을 비로소 찾게 된다.

“(땅 속에서) 쉬고 있는 정령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과연 어떻게 땅을 갈고 땅을 열고 땅에 상처를 입힌단 말인가? 호주 원주민에게 있어 서양이 이해하는 의미의 정원을 만든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정원. 우리에겐 논과 밭이 더욱 더 친숙한 땅의 이름일 것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경복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루 아래 설치된 저 놀라운 난방장치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의 구들을 “말하지 않고서도 편안함을 창시하는 우아한 방식”이라 감탄한다. 하지만 그가 찾아낸 그 우아함을 집요하게 파괴시켜버린 이들은 과연 누굴까?

그가 말하는 정원으로 가는 길은 인류의 미래일 수도 있다. 도시생활의 긴장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인식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진정한 사상의 혁명을 일으키는 길. 그에게 정원은, 아니 우리 모두에게 정원은 ‘낙원을 추구하는’ 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비록 대수롭지 않고 국지적인 것이라 할지라도)는 지구의 전반적인 생태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이제 정원사는 정원의 생산, 건축의 책임자 뿐 아니라 종들을 보호하고 생명을 보호하는 막중한 책임까지 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이 비단 정원사에게 주어진 것은 아닐 테다. 지구라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역사와 인문학의 세계 정원 순례”라는 부제가 딱 어울리는 즐겁고도 신비로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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