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


송복 교수의 `6.25는 통일시도인가`에 부쳐

김대중 대통령의 국군의 날 연설문이 몇몇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6.25 사변을 우리 역사상 `세 번째의 무력통일 시도`라고 언급한 것이 문제의 대목인 바, 이를 근거로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통일관과 역사관뿐 아니라 국가관까지 의심하며 이념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러나 문제된다는 대목의 앞뒤 맥락을 조금만 차분하게 살펴봐도 그것이 북한의 6.25 남침을 미화한 것이 아니라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 기도를 비판한 것이었음은 확연히 드러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과 인사들에 의해 적잖은 소란이 일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이 나라가 `자유스러운`(?) 나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6,25 전쟁이 북한의 무력적화통일 야욕이 빚어낸 남침극이었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고 여지껏 우리는 그 전쟁을 적화통일 시도였다고 규정해왔다. 이번 연설에서의 언급 역시 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6.25 사변이 무력통일 시도라는 언급에 대해 굳이 `무력`이라는 표현에는 눈을 감은 채 `통일`이라는 표현만을 따로 떼어내서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국군통수권자인 현직 대통령이 국군의 날 연설에서 적에게 이로운 발언을 한 셈이 되는데, 이는 헌법상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일국의 대통령이 사실은 불순한 사상을 가진 인물이고 따라서 그가 대표하고 있는 대한민국마저도 통째로 적국에게 넘겨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되고 만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고 경천동지할 지경임에 틀림없다. 이번 국군의 날 연설문이 과연 이 정도로 엄청난 문제가 되는 것인지 오히려 그들에게 되물어보고 싶다.

그러나 이들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꼬투리 잡아 이처럼 호들갑을 떠는 데에는 사실 다른 이유가 있다. 오히려 이들의 이번 소동은 오랫 동안 축적되었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색깔공세의 결과물이다.

이미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시절 주장했던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이라는 3원칙에 대해서도 군부독재와 냉전세력은 이상한 색깔을 덧씌웠고 공화국연합제라는 통일방식에 대해서도 이들은 사상적 불순함을 공격해왔다. 따라서 평화와 화해에 기반한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관과 통일관에 대해 애초부터 거부감을 갖고 반대해왔던 이들로서는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햇볕정책 역시 당연히 일관되게 저항해왔고 현직 대통령의 역사인식이나 대북발언을 사사건건 못마땅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번 호들갑은 본질적으로는 냉전세력의 시대착오적인 대북관과 통일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극단적인 남북대결을 고집해왔던 이들 냉전세력들은 냉전종식이라는 역사상황과 체제경쟁에서 남한의 우위, 그리고 평화와 화해의 시대라는 변화를 거부한 채 여전히 북한에 대해 실지(失地)회복과 고토(故土)점령의 구시대적인 인식을 고집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체를 명분삼아 자유민주주의를 통일보다 우위에 있는 가치로 포장하고 이를 포기하거나 훼손하는 그 어떤 대북정책과 대북인식도 국기를 흔드는 반국가적인 행위로 매도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따라서 이같은 극단적인 냉전대결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 북한의 존재를 현실로서 인정하고 북한과 대화를 나누고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증대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모든 행위마저도 이들에게는 국가를 팔아먹는 위험천만한 짓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6∼70년대 독일의 신동방정책이 그러했듯이 이들이 그렇게도 원해마지 않는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남북간의 상호 체제인정과 이를 통한 평화공존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들이다.

서독이 동독에 대해 이른바 `접근을 통한 변화`를 내세우고 동독을 현실적 존재로 인정한 것에서 부터 독일통일의 과정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북한에 대한 현실적 인정과 상호공존을 통해 평화정착과 통일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표방하는 햇볕정책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고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인 의의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냉전세력들은 북한과의 대화와 화해, 협력 그리고 활발한 교류와 접촉을 마치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짓으로 등식화해 버리는 단순한 사고에 젖어 있다. 그리고 끝이 없는 북한과의 극단적 대결만이 자유민주주의를 소중히 수호하는 자랑스런 행동으로 간주되는 어처구니없는 역사인식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들 냉전세력들은 자신의 시대착오적인 냉전대결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가 현직 교수이든, 장관이든,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위험스러운 세력으로 매도하고 사상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낡을 대로 낡아버린 냉전의 색안경을 고집스럽게 둘러쓴 채 냉전적 적대의식과 대결주의의 유령을 부여잡고 있는 이들에게 화해와 협력과 평화의 남북관계는 당연히 못마땅한 것일 수밖에 없고 상호인정과 평화공존을 통해 통일의 기틀을 잡아가려는 노력들은 응당 위험천만한 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이들 냉전세력들이 우리의 통일을 가로막는 위험한 장애물임을 입증하고 있다. 시대적 흐름으로 보나, 국력의 비교우위로 보나, 이념과 가치의 측면에서 보나 향후 우리의 통일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통일이 될 것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리이다.

그러나 정작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은 말로만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외치면서 내심은 극단적 대결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이들 냉전세력에 의해 오히려 위협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냉전세력의 맹목적 대결주의야말로 실질적인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가로막는 시대착오적 주장임에 틀림없다.

( DIGITAL사상계 2001.10.7)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