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pbpm@chollian.net)
                                  

흔히 20세기는 야만과 폭력의 시대였다고 말한다. 21세기도 테러와 전쟁으로 시작될 모양이다. 미국에서의 테러는 수천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벌어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더 많은 사람들을 죄 없이 죽음으로 이끌 것 같다.

끔찍한 테러에 분노하며 보복을 다짐하는 미국인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폭력의 악순환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는 없는지 안타깝다. 테러범을 어떻게 응징하고 앞으로 있을지 모를 테러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논의하기보다는, 왜 참사가 일어났는지 차분하게 따져보면서 앞으로는 그러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방지책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번 테러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 또는 서구와 아랍의 충돌이라고 분석하는 가운데, 문명과 야만의 대립이라는 평가나 민주와 독재의 갈등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반미 감정의 폭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대한 해묵은 증오와 적대감이 폭력적으로 표출된 것이란 말이다.
 
반미 감정은 어제 오늘 생긴 게 아니라,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기 전부터 생긴 것이요, 중동 지역이나 아랍인들에게만 쌓인 게 아니라, 세계 모든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쌓여 왔다. 특히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미국은 오래 전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증오 받는 나라"가 되었다.
  반미 감정의 폭력적 표출과 관련하여, 1787년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의 반미 폭동이 일어난 이래,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폭동과 테러가 발생했다. 구체적으로 1956년부터 1965년까지 10년 동안 폭동과 테러를 포함한 반미 데모가 42개 나라에서 170번 이상 일어났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면 이러한 반미 감정은 왜 생겼을까? 대표적인 사례만 몇 가지 든다. 먼저 미국 본토에서는 `인디언`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바람에 세계 최초의 반미 감정이 생겼다. 스페인 사람들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원주민들과 피를 섞으며 `신대륙`을 정복했지만, 미국인들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며 영토를 넓혔던 것이다.
 
참고로 이를 두고 우리는 `서부 개척`이라고 부르지만, 이야말로 엄청난 역사의 왜곡이다. 역사는 어차피 승자에 의해서 기록되는 것이니, 미국인들이 수백만 원주민들을 학살한 것을 `개척`이라고 부른다면,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침략한 것을 `진출`이라고 부른들 역사를 왜곡한다며 핏대를 올릴 수 있을까. 따라서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했다고 주장하려면, 미국은 원주민들을 `학살`했다고 표현해야 되지 않겠는가.
 
미국의 북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캐나다 사람들 역시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기 전부터 반미 감정을 갖게 되었다. 미국인들이 1775년 몬트리얼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남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 사람들은 더욱 강한 반미 감정을 지니고 있다. 1847-1848년 미국의 침략으로 국토의 절반을 빼앗겼는데, 텍사스나 캘리포니아 등 빼앗긴 땅에서 석유와 금광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며 미국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품었겠는가. 게다가 이제는 미국이 멕시코 사람들이 텍사스나 캘리포니아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국경 경비를 강화하는 가운데 벽을 쌓거나 웅덩이를 팔 생각까지 하고 있다.
 
북미 대륙에서의 반미 감정이 주로 미국의 영토 확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중남미 대륙에서의 반미 감정은 주로 미국의 군사 침략과 내정 간섭 때문에 빚어졌다. 이 지역에 친미 정권을 세우거나 유지하기 위해 수십 차례의 군사 침략을 강행하는 바람에, 1980년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흔하게 반미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84년 세계적으로 77회의 반미 테러가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 1/3이 넘는 28번의 테러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는 주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반미 감정이 표출되어 왔다. 독일에서는 미군 주둔, 핵무기, 문화 침투 등의 문제로 반미 감정이 생겼는데, 특히 1960년대에는 반미 행위가 거의 매일 벌어지다시피 했다. 프랑스는 미국의 저질 문화와 "양키 물질주의"의 침투 그리고 무역 압력 등의 문제 때문에 1970년대까지 미국을 "제 1의 적국"으로 삼을 만큼 유럽에서 가장 강한 반미 감정을 표출해 왔는데, 1980년대부터는 반미 감정을 누그려 뜨리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유럽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이후인 1960년대부터 반미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미국의 내정 간섭, 특히 쿠데타나 요인 암살 등에 대한 CIA의 지원, 흑인들에 대한 인종 차별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북부 아프리카 또는 아랍계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주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반미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아시아에서는 미국과 전쟁을 치른 중국, 북한, 베트남 등을 빼놓더라도 동북아 지역의 일본과 한국, 동남아 지역의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서남아 지역의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 강한 반미 감정이 생겼다. 일본에서는 전후 7년간의 미군에 의한 점령으로 반미 감정이 생겼지만 1971년 오끼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뒤에는 수그러들었다가, 1990년대에는 강간이나 살인 등을 포함한 미군들의 범죄 행위로 반미 감정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60년 4월 혁명을 통해 민족주의가 발흥하면서 반미 감정이 생겼지만,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미국에 대한 비판조차 친북 용공으로 몰았기 때문에 반미 감정이 공개적으로 표출되지 못하다가, 1980년 광주 학살 및 전두환 독재 정권에 대한 미국의 공조 또는 지지 때문에 반미 감정이 다양하게 폭발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인도네시아는 1958년 CIA의 내정 간섭을 겪고 난 뒤 강력한 반미 감정을 표출하게 되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일찍이 미국의 식민 통치를 받으며 반미 감정을 키웠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마르코스의 독재 치하에서는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못하다가, 1986년 마르코스가 쫓겨나자 영어 사용을 줄이고 미군 기지를 되찾으며 미국에 의해 손상된 문화를 바로 잡는 등 반미 감정을 `점잖게`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1948년 캐시미르 분쟁을 가치면서, 파키스탄에서는 주로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때문에 반미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끝으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중동 지역 또는 아랍 국가들의 반미 감정은 아마 세계 어느 지역에서보다 흔하고 강렬하게 그리고 폭력적으로 분출되어 왔다. 그 반미 감정의 근원은 1948년 아랍 국가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세워진 데서부터 찾을 수 있다. 수백만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에서 쫓겨난 뒤 반세기가 넘도록 나라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녀야 하는 서러움과 분노 그리고 울분과 원한 등을 단순하게 `반미 감정`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67년의 중동 전쟁에서 손바닥만한 이스라엘이 주변의 아랍 국가들에게 땅을 빼앗기기는커녕 첨단 무기를 앞세워 아랍 국가들을 참패시키며 가자 지구, 골란 고원, 시나이 반도 등의 땅을 점령하여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배경도 미국의 일방적 지원 때문이다. 점령지를 즉시 반환하도록 촉구하는 유엔의 결의안이 몇 차례 나왔어도 미국은 줄기차게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아랍 국가들은 핵무기는커녕 화학 무기만 가지려해도 미국의 폭격을 받아야 했지만, 이스라엘은 핵무기 확산 금지 조약에 들지도 않고 핵사찰도 받지 않으면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해도 미국의 비호를 받아왔을 뿐이다.
 
이런 마당에 1979년 이란 혁명의 성공으로 중동 지역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사회에 근본주의의 영향이 커지면서 아랍 민족주의와 결합된 반미 감정이 더욱 과격하게 표출되어 왔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지원이 멈추지 않는 한,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해묵은 갈등이 풀어지지 않는 한, 미국은 이 지역에서 "거대한 사탄"으로 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반미 감정이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멕시코의 한 작가 출신 외교관이 미국을 "안에서는 민주주의라도 밖에서는 제국주의며, 자국에서는 지킬박사 같은데 타국에서는 하이드씨 같다"고 묘사한데서 드러나듯, 세계적 패권을 추구하고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미 감정은 대부분 데모나 폭동 또는 테러로 폭발해 왔다.
 
그렇다면 테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지금 미국인들이 다짐하듯, 테러범을 지구 끝까지 추적하여 잡아내고 배후 세력을 응징하며 그 근거지를 초토화시키는 한편, 주요 시설에 물샐 틈 없이 경비를 강화한다면 테러를 당분간은 막거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처방일 뿐이다. 평화는 결코 폭력적 수단으로 얻을 수 없으며,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뿐이다. 평화는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테러의 원인이 반미 감정에 있다면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갖지 않도록 이끄는 것이야말로 테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인 처방일 것이다. 즉 반미 감정은 미국의 일방적이고 오만한 대외 정책으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협의하면서 대외 정책을 겸손하게 펼친다면 미국에 대한 적대감은 녹을 것이요 반미 테러는 사라질 것 아니겠는가.
 
한편, 현대 세계사에서 미국처럼 전쟁을 좋아하고 군사 침략을 많이 해본 나라는 없다. 이른바 `깡패 국가`들의 독재자를 쫓아내겠다는 명목으로 무수한 전쟁과 군사 침략을 벌였지만, 결국은 어린이들을 포함한 무고한 사람들만 죽였다. 이 얘기가 나온 김에, 미국에서 테러에 의해 수천 명이 죄 없이 숨진 데는 한없이 깊은 애도를 보인 우리가 이라크와 코소보 등에서 미국의 폭격에 의해 수십만 명이 죄 없이 죽어간 데는 어떠한 태도를 보였는지 생각해보자. 테러를 통해 미국에 대한 반감과 원한을 표출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전쟁을 통해 테러를 응징하는 것은 더욱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깊이 새기면서 말이다.
 
이와 아울러 반미 감정과 관련한 우리의 인식도 추스려볼 기회를 갖자. 반미 감정에 대해 우리는 흔히 미국인들보다 더욱 과민하게 반응해왔다. 미국에 대한 당연하고 건전한 비판조차 `반미 용공`이라고 몰아세우며 말도 안 되는 사대주의적 주장을 펴온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사회에서 건전한 친미 세력은 찾기 어렵고, 무턱대고 미국을 숭배하며 추종하려는 `숭미 (崇美)` 또는 `종미 (從美)` 세력은 어느 분야에서나 쉽게 발견된다. 그래서 건전하게 미국의 대외 정책을 비판하려 해도 `비미(批美)`가 아닌 `반미`로 취급당하기 쉬운데, 특히 요즘의 남북 관계나 통일 문제와 관련하여 당연히 생길 수 있는 반미 감정이 비폭력적으로 표출되는 것까지 막으려한다면 폭력적 반미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태를 불러오기 쉽지 않을까.

(고려대 대학원 신문, 20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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