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결국 8일 새벽 미국과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거점들을 공격함으로써 국제정세가 혼미해짐은 물론 한반도정세 역시 불안정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정세의 불안정성은 단순히 지구의 한편에서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문제의 한 당사자인 미국이 `전쟁중`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전쟁이 장기전이 예측됨에 따라 한반도문제 해결의 일정표는 당분간 `예측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렇듯 국제적 전시상황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전쟁의 그림자가 한 뼘도 얼씬거리지 않는 것은 지난해 6.15공동선언에 이은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 덕택이다. 남북 교류와 대화가 주는 `평화의 가치`가 `북한 퍼주기론`을 잠재우며 그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장기화되는 것만큼 한반도정세의 불투명성도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 장기화는 남북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미국이 테러와 전쟁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는 참에 한반도문제에 관심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한반도문제가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가 그 해결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나마 그간 남북 민간차원의 교류에 이어 지난 달 당국차원에서 제5차 장관급회담이 열린 것은 커다란 다행이다. 즉 `북미간 대화단절과 남북간 대화재개`로 요약되는 최근 한반도상황에서, 우리는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방문을 기대하고자 한다. 우리가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서울방문을 기대하는 이유는 다음 몇 가지에서이다.

먼저, 미국에 테러사태가 발생하고 이어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한 상태에서 그래도 한반도가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지난해 6.15공동선언 이후 지속된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이 분위기를 유지하고 또 공고히 하기 위해서 남북간에 고위급 인사의 방문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조건에서 돌발사태나 위급상황을 미연에 막을 수 있는 길은 남북간에 당국차원이든 민간차원이든 빈번하게 만나고 있어야 한다. 늘 대화와 교류를 하고 있다면 거기에 분쟁이 끼여들 여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북간에 고위급 인사의 방문은 당분간 한반도에서 미국의 공백을 메워주고 또 한반도상황을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둘째, 지난 달 중순경에 남북장관급회담이 재개된 점과 관련이 있다. 그동안 남북장관급회담은 6.15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중심협의체`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한반도 현안과 남북간 교류문제를 총괄적으로 다뤄온 남북간의 대화채널이다.

이처럼 남북관계의 나침반 역할을 해온 남북장관급회담이 재개된 것은 곧 남북관계의 복원과 정상화를 의미하는데, 이번 제5차 장관급회담은 남북관계의 `2단계`로의 진입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 이유는 단순히 남북장관급회담이 6개월여만에 열렸고 또 양측 모두 단장급이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양측의 임하는 결의와 회담후 `공동보도문`에 나타난 실지 합의사항을 보면 그렇다.

특히 5차 회담의 남측 대변인은 "이번 회담에서는 각종 하위 회담의 개최에 합의함에 따라 남북관계 진전의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며 "지난 6개월의 남북관계 소강상태를 극복하고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해 남북관계를 새롭게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잘 나갈` 소지가 많은 남북관계 2단계의 전체 틀을 잡아주는 의미에서 고위급 인사의 방문이 필요하다. 그간 남북관계 1단계가 남북정상회담에 의해 추진력을 받았다면, 2단계는 새로운 힘에 의해 즉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서울방문을 통해 추진된다면 더 속도를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셋째,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서울방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과 분위기 조성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

지난해 9월 추석선물로 자연산 송이버섯과 함께 남측에 온 김용순 비서는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과 회담후 `남북공동보도문`을 발표했는데, 그 첫째 항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앞으로 가까운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시며 이에 앞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6.15남북공동선언의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에서 나오는 `적절한 시기`가 보다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남북간에 합의한 것에 의하면,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 문제는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서울방문이 선차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즉 `선(先) 김영남 서울방문, 후(後) 김정일 서울답방`의 순서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한다면 미국의 공백기로 인한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안정화시키고, 또한 2단계로 진입한 남북관계의 새 출발을 공고화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을 위한 정지작업과 분위기 조성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달 28일부터 31일까지 개최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은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언제 서울답방을 할지 북측 인사들에게 물을게 아니라, 새로운 차원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서울방문을 적극 제의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의 한반도상황과 남북관계를 잘 풀 수 있는 바른 수순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