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지났지만 1987년 6월 전국은 최근  6개월과 달리 최루탄과 화염병이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결사항전을 펼친 유혈 낭자한 거리였다.

19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박정희를 스스로 승계한 전두환은 학살자이고 살인마일 뿐, 국민이 인정할 수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때는 총칼을 휘두르는 그와 대결할 무기가 화염병이었고 짱돌이었다. 항쟁의 거리에서 맨몸으로 저항하는 대학생을 넥타이 맨 선배들과 거리의 부모들이 옹호해주었고 박종철, 이한열의 젊은 피가 민주주의를 위한 제단에 뿌려진 후에야  전두환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30년이 지난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 전국의 거리와 광장에는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 자식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모와 고통의 세월을 물려주어 미안한 86년의 부모, 그리고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야 할 청년, 자식들이 간절하게 촛불을 들었다.

박정희의 딸은 파면됐고 구속됐다. 그가 한사코 지키지 않았던 법치의 이름으로, 그걸 요구한 평화롭고 완강한 시민 촛불의 힘으로.

2017년 6월 10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선 30년 전 부산에서 6월항쟁의 승리에 한몫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후퇴하는 일은 이제 없다’며 민주주의 승리를 선언했다.

대통령이 시민사회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민주주의의 승리를 선포한 감격적이고 역사적인 자리였다.

가히 1987년이 2017년에게, 2017년이 1987년에게 그 힘겨운 세월을 잘 버텨서 위대한 승리를 이룩했다고 위로한 한바탕 대동마당이었다.

대체로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지난 5월 18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의 대통령이 한 첫 연설에 이어 이번 연설에서도 큰 감동을 받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가지 대단히 아쉬운 점은 30년 전 6월 민주항쟁의 계승이 되어야 할 2017년 시민촛불항쟁에서 빠지지 않았던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 과제에 대한 성찰과 각오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내 여섯 방면에서 서울광장으로 모여드는 민주시민대동제 ‘6.10민주난장’은 서울 도심을 무대로 한 대규모 퍼포먼스에 불과하고, 무엇보다 기대가 컸던 ‘6월민주항쟁 30년맞이 국민대회’, ‘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는 국민대회이기 보다는 공들여 만든 ‘열린음악회’ 느낌이었다.

차별의 아픔, 공정과 평등, 평화에 대한 갈망은 이날도 서울광장 천막에서 조문객을 받고 있고 서명을 부탁하고 있으며, 동참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국민대회의 이름으로 진행한 ‘열린음악회’는 올바른 일이었을까.

물론 공연은 잘 준비되었고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6월민주항쟁 30년을 맞아 오전에 대통령이 참석한 정부공식행사가 끝나고 저녁에 따로 준비한 국민대회라면, 그날 왜 울산의 노동자들이 쇠사슬을 묶고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지,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며 서명을 받는 그들 가족과 동료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마이크를 쥐어주고 말하게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억울한 일은 호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잘못된 일은 고치자고 제안하며, 민주개혁의 길에 터무니없이 거는 시비는 제압하자고 거침없이 말했던 지난 겨울 광장의 자유발언대가 6월민주항쟁 30년 서울광장에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을까.

촛불이 꺼지고 약해지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들이 반드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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