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학도(松鶴圖)가 정확히 언제부터 그려졌는지, 연원은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송학도는 우리나라와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이다.
특히 궁중회화인 [십장생도]에는 소나무와 학과 아침 해가 핵심적인 요소로 들어가 있다.
송학도는 선비화가, 전문화가, 민화를 창작했던 화공에 의해 수없이 그려졌다.

▲ (위) 서산 유자미/지곡송학도/40.5×34cm/수묵채색/15세기/간송미술관.
(중간) 조지운/송학도/67.8*59.7cm /비단에 수묵담채/17세기/국립중앙박물관.
(아래) 겸재 정선/일출송학도/종이에 수묵담채/18세기/국립중앙박물관. [자료사진 - 심규섭]

송학도는 선비들의 지조와 절개를 뜻하는 인문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장수와 출세를 기원하는 길상(吉祥)의 내용도 함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선 초기 서산 유자미가 그린 [지곡송학도]나 진경산수화를 완성시킨 겸재 정선의 [일출송학도]에서 볼 수 있듯이 선비화가들은 도교적인 내용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송학도를 그렸다.
송학도에 붙어있는 도교적 내용을 의도적으로 벗겨내고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담은 그림으로 수용하거나 재창조한 것이다.

흔히 송학도는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하는데 소나무, 학, 아침 해이다. 작품에 따라서는 소나무와 아침 해의 상징이 중복된다고 여겨 아침 해를 빼기도 한다.
송학도에는 대부분 학이 소나무에 앉아있는 모습이 표현된다. 하지만 학은 소나무에 앉지 못한다. 이렇게 생태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그리는 경우는 각각의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만 내용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송학도는 사실적인 표현이나 묘사와 관계없이 관념적인 그림인 셈이다.

학(鶴)은 신선세계, 태평성대를 상징한다.
무엇보다 학에 선비나 군자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따라서 학은 간접적이고 두루뭉술한 상징에서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상징으로 올라서게 된다.
소나무는 사철나무의 생태적 특성 때문에 변치 않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붉은 해는 아침 해를 뜻한다. 선비들은 이런 아침 해를 ‘한 조각 붉은 마음’인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시각적 상징이라고 여겼다.
이런 상징을 종합하면 대략 이런 무시무시한 내용이 만들어진다.
‘무릇 정치인이나 지식인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공동체의 가치에 맞는 신념을 끝까지 지키고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송학도의 인문학적인 내용은 사라지고 장수와 출세, 혹은 풍요와 무병장수라는 도교적 내용만 남게 된다.

예전에는 연하장이나 달력에 들어가는 단골 그림이었고 전통자수, 숟가락, 자개장롱과 같은 수많은 공예품을 장식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그림이나 공예품도 거의 사라졌고 창작하는 화가도 없다.

송학도는 북한에서도 심심찮게 창작하는 화제(畫題)이다.
북한을 대표하는 화가 중에 김상직은 정창모와 함께 남종화나 몰골화로 유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정창모 화백이 조선 말기의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을 계승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북한의 조선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김상직, 정창모 화백의 몰골화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에서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문인화나 남종화를 지배계층의 퇴폐미술로 규정해서 배척했기 때문이다.
김상직 화백이 잘 그렸다는 몰골화(沒骨畵)는 흔히 몰골기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꼼꼼한 선묘나 밑그림이 없이 그리는 몰골기법은 즉흥성이 강하고 화면이 거칠다.
반면에 화가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용의하다.

문인화의 대표적인 화법인 몰골기법을 북한미술계가 수용했다는 점은 특별하다. 1990년대 중반을 전후해 나타난 이런 경향은 김일성 주석 이후 김정일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최근 문인화의 대표작가라고 할 수 있는 추사 김정희에 대한 복원과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뉴스도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조선시대 미술의 전반적인 복원과 수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징조로 볼 수 있겠다.

▲ (위) 송학도/김상직/종이에 수묵담채/1996년.
김상직 화백이 그린 송학도는 북한의 시대상과 정서를 정확히 담고 있다. 하지만 위의 그림은 수출용으로 제자들에 의해 대량으로 복제, 창작한 것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수출된 이 그림에서 사상, 수령, 신념 따위의 내용을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래) 송학도/함관섭 /유화/2006년.
함관섭 화백은 북한의 공훈예술가로 원로화가이다. 유화를 이용해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서양화법의 원리인 원근투시법과 명암법, 공기원근법 따위를 사용했지만 소나무, 학, 아침 해라는 소재는 그대로이다. 북한의 어려운 시대를 반영하고 있지만 심각하지 않고 밝다. 마치 광고의 한 장면 같다. [자료사진 - 심규섭]

아무튼 김상직 화백도 송학도를 그렸다.
몰골기법의 즉흥성과 자유로움 때문인지 북한 내부는 물론 중국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그림이다.
김상직 화백이 개인성과 즉흥성이 강한 몰골법으로 송학도를 그렸다고는 하나 엄연히 북한을 대표했던 화가이다. 사회적 사실주의 경향의 북한 미술계를 이끌었던 원로화가가 별 내용 없는 그림을 창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상직 화백의 송학도는 북한의 상황이나 정서를 정확히 담고 있다.
소나무를 변치 않는 지조와 절개 혹은 사상과 신념으로 해석하고, 학은 북한 인민의 상징이며, 아침 해는 수령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송학도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완성된 형식의 그림이다.
하지만 송학도의 내용은 시대의 흐름이나 중심 세력의 철학에 따라 바뀐다.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남북의 그림에서도 송학도의 내용은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학은 우리민족이고, 소나무는 전쟁과 살육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며, 아침 해는 통일의 새날을 상징하는 송학도가 그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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