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따라서 남북관계도 북미관계도 북중관계도 변해왔고, 변해 갈 것이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북중관계 등은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이고 중층적이다. 반면 정보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많은 경우는 왜곡되어 있기도 하다. 이로 인해 상황을 객관적이고 균형 있게 보기 어렵다. 많은 한국 언론기사는 몇 가지 고정된 선입관이 사실 판단을 압도하여 균형 있는 판단을 방해한다. 북미관계를 다루는 시각은 더욱 편협하다.

한마디로 미국의 권능에 대한 지나친 고평가와 북한에 대한 고의적 저평가이다. 미국은 막강한 전략자산과 정보자산을 바탕으로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제압할 수 있으며 북한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관점이다. 미국이 북한을 군사력, 경제력으로 제압할 수 있으나 봐주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을 갖게 되면 “미국이 화가 나 평양폭격을 감행하기 전에 북한이 머리를 숙여 미국의 요구에 맞춰가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가 콩놔라 팥놔라 하는 셈이다. 한국의 대다수 언론이 그렇다. 이런 관점은 미국이나 북한을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미 간에 벌어지는 사실들을 반영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아무런 실천적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미국은 저물어가는 세계 최강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달러 패권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미국의 맹방이었던 영국 독일 프랑스가 달러권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호주조차 중국과 각자의 화폐로 교역하자는 판이다. 무조건 친미인 파키스탄도 이란과 자국화폐로 결제하기로 합의하였다. 침몰하기 직전, 배 안의 쥐들이 앞 다투어 탈출하려 하듯이 미국의 과거 우방들이 미국권역으로부터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발을 빼고 있다.

국제 정치력의 유지도 군사력과 경제력 즉 동맹에 대한 강력한 압박으로 유지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견고한 연대는 약화되어 가고 있다. 미국의 유럽제국에 대한 대 러시아 압박 요구에도 유럽의 동맹국들은 미온적이다. 친미쿠데타 실패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던 유라시아 중앙의 터키도 예전 같지 않다.

북한에 관한 한 미국의 영향력은 아주 취약하다. 미국은 종전 이후 70년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을 봉쇄하고 압박하여 왔다. 수 없는 UN제재는 아주 촘촘하고 강력하며 연속적인 것이었다. 대부분의 나라는 미국 주도 UN의 압박에 굴복했으나 북한은 ‘자주권’을 들어 끈질기게 저항하였다. 미국의 북한 봉쇄정책은 강도 높은 것이었다.

최근 들어 모든 차원의 압박 봉쇄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듯하다. 북한은 완전고립 속에 진행되었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지나 지금은 식량문제도 거의 해결하는 등 경제상황이 많이 호전된 듯하다. 근년에 북한을 방문한 많은 해외동포, 외국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UN의 제재와 압박을 무시하고 미국과 대항할 수 있는 핵, 미사일 등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자국을 공격한다면 그 수준에 맞대응 해주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선의로 봐주고 있는 게 아님이 분명하다.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북한을 때려잡으려 하지만 이미 역부족인 게 현실에서 확인되고 있다.

얼마 전 트럼프 행정부는 “△북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모든 대북제재와 압박을 가하면서,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진하지 않으며, △최종적으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대북정책 4대 기조를 공개했다. 핵심은 무력으로 제압할 수는 없고 대화로 풀 수밖에 없음을 천명하며 관계당사국들과 미 국민들에게 사인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를 향한 정지작업용 발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힘으로 북한을 제압 못해

북미간의 관계는 힘 대 힘의 냉정한 역학관계의 산물이다. 협박, 폄하, 기만의 언사를 거둬낸다면 군사력으로는 북한을 제압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지금까지 기대했던 내부 붕괴론은 노르웨이의 국제평화연구소 창설자 요한 갈퉁의 말대로 현실 가능성이 없다.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적대적 방안은 ‘제재와 압박’뿐이다.

여기서 미국의 고민이 생긴다. 미국의 입장에서 제재와 압박은 그 효과를 알 수 없고, 군사적으로 공격하자니 승산이 없고 완전한 제압은 거의 불가능으로 판명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를 UN으로 묶어 북한을 압박하는 시도도 점점 수월치 않게 되었다. 푸틴은 6월 2일 제 21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서 "규모가 작은 국가들도 자립, 안보, 주권 수호를 위해 핵무기 개발 외 다른 대안을 보지 못한다, 힘의 악용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미국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자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행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북한을 무시하거나 애써 거들떠보지 않는 가운데 북한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을 가늠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협상을 하더라도 북한의 수에 말려들기 시작하면 미국 주도 세계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도 커다란 부담이다.

북한에게 현저히 밀리는 방식으로 평화협상이 이뤄지면 미국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주권국가들이 북한을 따라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북미협상으로 미국의 제국으로서의 위신이 흔들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북과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가 미국의 입장에서는 고역 중의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북의 입장에서 미국을 상대하기란 예전 보다 훨씬 쉬워졌고, 훨씬 공세적인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사적 긴장은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은 물론이다.

초조한 미국과 초조할 게 없는 북한

큰 국면에서 북한이 미국보다 공세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은 가고 별다른 처방이 없는 가운데 북한은 하루가 멀다고 전략무기를 발전시키고 있다. 지독한 시련을 겪어온 북한에게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최대의 압박'은 지난 수 십 년에 비하면 아주 약화된 것이다. 북한은 경제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내부구조를 견고히 하고 있다.

북미관계에서 시간은 북에 유리하다. 초조한 미국과 초조할 것 없는 북한, 잃을 게 많은 미국과 잃을 게 없는 북한이 북미관계의 본질이다. 이런 시각으로 북미관계를 들여다보면 동북아를 둘러싼 거대한 체스판이 보인다.

※ 남경우 소통과혁신연구소 연구위원은 오랜 노동운동을 거쳐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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