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그동안 중단되었던 남북경협(경제협력) 재개에 대한 기대가 높다. 새 정부 역시 개성공단을 비롯한 2010년 5.24조치, 2008년 금강산관광 중단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은 기업들에 대한 적극적인 보상과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어 분위기는 다분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상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경협 재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곧바로 알 수 있다. 남북관계의 정상화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새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잇따라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고, 국제사회는 보다 더 강화된 제재방안을 군사적 압박과 동시에 강구하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존망의 기로에 처해 있는 경협기업들에게 정부의 시급한 지원이 필수적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차분히 향후 전개될 남북경협과 관련된 진지한 논의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과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 그리고 상당부분 사실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국민적인 대북 피로도(?)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내륙지역에 대한 투자와 교역 등 남북경협의 조속한 재개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또 하나 남북경협의 전면 중단이후 우리만이 아니라 북한의 사정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 그리고 결정적으로 강화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 조항(북한의 기업이나 단체, 개인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에 미국금융 기관과의 거래를 금지시키는 것)은 자본과 규모를 갖춘 경제협력의 재개를 그만큼 어렵게 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제까지 진행해왔던 경제협력의 내용이 우리가 장차 추구해야 할 ‘한반도 경제공동체’가 담아야할 가치와 규범 측면에서의 적정성 여부이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사회가 돈 중심의 개발과 성장, 다수에 대한 약탈과 환경 파괴에 기초한 극단적 양극화의 경제가 아니라 사람과 생명의 가치를 최우선시하고, 지속가능한 발전, 호혜와 나눔의 경제를 지향한다고 할 때 이제까지 진행해온 남북 간의 경제협력의 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경협이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고, 정치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를 관리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기능해온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이제는 그 단계를 뛰어넘는 사고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새 정부의 경협 재개와 지원에 대한 의지는 확실해 보이지만 아직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소위 전문가와 관련 단위들이 내놓는 방안들은 기존 영역들의 재개와 지원, 아니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소재들을 찾아내 기존 방식으로 다시 제안하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2017. 05. 24. 중소기업중앙회, ‘한반도 경제통일을 디자인하라 – 중소기업이 앞장서는 경제통일전략 -’).

기존의 남북경협은 단순한 물자의 교역, 임가공, 관광,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저임금에 기초한 공단운영 등이 전부였다. 물론 비영리조직에 의해 일부 운영된 농업협력이나 산림조성 등의 노력이 있었으나 이를 경제협력 영역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남북경협을 통해 추구하는 ‘한반도경제공동체’는 남한사회가 안고 있는 극단적 양극화, 북한 사회가 안고 있는 절대 빈곤을 다 지양한다. 통일 한국이 지향할 ‘녹색평화국가’는 우리 공동체가 담아야 할 결정적 가치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까지의 남북경협에서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나 진행은 없었다.

또 하나 경협의 상대방은 다른 누구가 아닌 북한이다.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의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자신들의 우선 순위에 따른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진행해오고, 앞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사업들이 북한이 마련하고 있는 일련의 계획들과 어느 정도 조응하고 있는지, 또 조응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5.24조치와 개성공단의 잠정 폐쇄로 모든 남북경협이 중단된 이후 남북경협기업에서 근무했던 많은 북한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다른 해외 파트너와의 사업처에서 일자리를 얻거나 해외로 근무를 떠났다고 한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들은 개성공단에서 받던 임금의 최소 3~4배를 상회하는 수준을 보장받고 있다는 많은 보고들이 있다. 개성공단 재개 논의 시 북한이 기존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그대로 수용하리라고 보는 것도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물론 우리기업들도 기존의 근로와 운영형태(높은 결근율, 근로자에 대한 직접채용 불가, 임금 직접 지불 불가, 직접적 노동 관리 불가, 통행·통신·통관 등 3통 제약...)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심천공단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개혁개방국면 초기에 조성된 공단은 그 규정 때문에 오히려 발전이 제약당하고, 바깥의 다른 주변공단이 활력을 띠고 보다 더 발전하게 된다. 개성공단도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관계에 많은 상황 변화가 있었다. 경협만 놓고 볼 때도 돌아갈 다리를 태워버리는 결정적 잘못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옛말이 있다. 기대에 부응하고자 준비없이 섣부른 재개를 결정하기 보다는 이제 차분히 지난 시기 남북경협을 진지하게 성찰해보고, 통일한반도가 담아내야할 공동체 경제를 준비하는 관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방향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하나는 새 정부가 누차 언급해온대로 경협 중단과 피해가 지난 정부의 실정에 따른 것인 만큼 기업들의 피해와 손실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지원이 행해져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이를 전제로 기존에 진행된 남북경협을 전면적 재정비 차원에서 재검토와 숙의적 공론화 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기존에 진행되었던 남북경협 방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업종, 임금 수준, 노동관리, 투자 보장책 확보, 교류협력법을 비롯한 제도적 제약 요소 점검 및 개선, 보상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 통합, 국제사회의 제재를 우회 또는 완화할 수 있는 방법과 업종 발굴 등)가 필요하다.

왜곡된 대북퍼주기 여론, 경협지원에 대한 국민적 피로도 등을 감안하여 경협사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추진력 확보를 위한 새로운 접근도 요구된다.

이를 수행할 단위는 통일부 관료나 관변학자가 중심이 아닌 민과 관의 전문가, 양심적 기업인 등이 머리를 맞대고, 최소한 민관이 동등한 지위(공동위원장 등)를 보장받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새 정부의 분명한 의지가 실려야 한다.

새로운 남북경협을 통해 실현할 ‘한반도 경제공동체’는 탈 자본, 탈 파괴, 탈 약탈의 지속가능한 대안경제를 지향해야 한다. 이는 분야별로 보자면 생명농업·유기농업을 전면화하는 농업협력, 지속가능한 개발을 전제로 한 산업협력, 초저임금 구조를 벗어난 탈 착취의 호혜적 경제협력이다.

이는 또한 남한의 일방적 주문이 아닌 북한의 경제개발 전략과 조응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와의 경제협력과 경제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이 민관TF는 최소한 6개월 이상의 숙의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회에는 제도적 입법을, 정부에는 경협 확대를 위한 정책과 조직의 구축을(경협 담당 부처를 통일부에서 경제부처인 기재부나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하는 것도 적극 고려), 시민들에게는 경협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는 보고서를 내놓고 활동을 종료한다.

기대가 높은 만큼 경협 재개와 관련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현실적 과제는 결코 녹록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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