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성장소설은 저자의 개인적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하곤 한다. 때문에 좋은 성장소설은 그만큼 자신에게 솔직한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자신의 모든 아픔과 상처, 고뇌와 함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 작품에 담겨 있는 경우, 독자들은 놀라운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 할레드 호세이니, 『연을 쫓는 아이』, 현대문학, 2010. 10.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 소설이라 알려진 『연을 쫓는 아이』는 성장 소설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다 저자의 모국인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전통이 생생히 전달된다.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그들의 너무도 굴곡진 삶이 그대로 아프게 전해진다. 아울러 이념과 종교, 인종을 떠나 진정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전해주고 있다.

주인공 아무르가 성장하는 과정, 어른이 되고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잘못을 바로 잡아나가는 용기 있는 모습에서 많은 독자들이 감동을 얻었을 것이다. 또한 하산의 눈물어린 우정과 그의 아들인 소랍이 겪는 아픔은 독자들로 하여금 아련한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고, 동시에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간까지 주고 있다.

책을 읽으며,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가 겹쳐짐을 느낀다. 물론 두 민족의 역사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두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는 결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외세에 의한 고통과 절망, 같은 국가 구성원끼리의 갈등과 피비린내 나는 살육, 다시 탈레반의 폭정과 미국의 무차별 폭격 그리고 학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스스로의 인간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고통을 감내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고통 받고 있고, 또한 강대국에게 주권을 침해받고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떨까.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가 되어 오랜 시간 고통 받아야 했고, 그 이후 이데올로기 전쟁의 한 복판에서 같은 민족끼리 죽이고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강대국들의 논리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숨 쉬는 땅에서 주권의 온전한 행사를 펼치지 못한 채 식민지 국민처럼 살아간다.

역사상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반세기가 넘는 외국군의 수도 주둔에 대해 무감각하고,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오늘도 입에 거품을 문다. 스스로 주권을 포기한 국가, 국민, 민족에게 온전한 주권이 제 발로 찾아오진 않는다. 스스로 노예임을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는 오히려 행복한 것일까.

어처구니없는 종북논쟁은 지겹도록 되풀이되고, 독재자의 딸이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국가를 만싱창이로 만들었다. 이처럼 후안무치의 시대에,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고통에 눈감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쩜 속편한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아프가니스탄의,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통해 감동을 느끼는 행복과 함께 저자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 평화에 대해서도 눈을 감아선 안 될 것이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탁월한 문장력과 진솔함으로, 행복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물론 묵직한 감동과 성찰의 시간을 동시에 전해준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행복이긴 했다.

소비가 전부이고, 생존이 진리인 세상에서 우리에게 본디 주어졌던 행복이란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눌 수 있는 따뜻함이 무엇인지, 오래 전 잊고 지냈던 옛 고향의 포근함이 어떤 것이었는지, 새삼 생각나게 만들어준 고마운 책이다.

하산이 아무르에게 했던 것처럼, 다시 아무르가 소랍에게 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용기와 사랑. 그 따뜻함이 간절히 그리운 시대다. 먼저 간 바보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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