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그랬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이렇게 소박한 심성을 가진 우리들의 ‘설마의 마지노선’을 여지없이, 그것도 무수히 박살낸 것이 바로 전임 두 정권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럼 그 두 정권 이전에는 그런 무참한 일들이 전혀 없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물론 서글픈 일들은 그 이전에도 숱하게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믿고 있던 상식과 정의를 이처럼 허망하게 부순 정권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정상의 비정상화가 혹독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첫날, 앞으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희망이란 단어를 되찾아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 기억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은 국정원 댓글 사태, 즉 불법 선거개입 사태로 시작되었다. 광범위하고 치밀하게 진행된 국정원의 댓글 공작은 말 그대로 국가기관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렸고, 그 이후 박 대통령이 이른 바 국정원 셀프 개혁을 지시했을 때는, 남아 있던 작은 희망마저 사라졌다.

국민의 안위를 위해 존재해야 할 국가기관이 특정 대선후보를 위해 조직적으로 공작을 펼친 사례는, 물론 그 이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명색이 국가정보원이라는 기관이 그처럼 치졸하게 공작을 펼친 사례는 찾기 힘들었다. 그만큼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 장강명, 『댓글부대』, 은행나무, 2015. 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리의 소원은 전쟁』으로 최근 다시 주목 받은 바 있는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는 국정원 댓글 공작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다르다. 2015년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작품은 ‘201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진보적인 인터넷 사이트에 잠입해 악의적인 댓글을 달면서 여론을 조작하고, 해당 사이트를 무력화하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이미 적지 않은 이들이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파시즘의 등장을 경고한 바 있다. 익명의 공간인 인터넷은 이미 무책임과, 현실을 능가하는 잔혹함이 공존하는 곳이 되었다. 충분한 사실 확인 없이, 출처가 불분명한 ‘설’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릴 수도 있으며, 하나의 커뮤니티 역시 허망하게 붕괴된다. 사소하다고 느낄 수 있는 댓글 하나에, 어떤 이는 생명을 버리기도 한다. 현실만큼이나 비정한 정글에 다름 아니다.

작품은 이러한 온라인 공간을 배경으로 대중조작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또한 자칭 진보임을 자처하는 이들 역시 허위의식과 추악함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때문에 작품은 여론조작을 꾀하는 권력과 보수 세력의 문제만을 비판하지 않는다. 우리사회에서 소위 진보로 불리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모순까지 날카롭게 파고들고 있다.

일베(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죽돌이이자, 기업 상품평, 유학 후기 등을 ‘창작’하며 용돈을 버는 20대 청년으로 구성된 3인조 ‘팀-알렙’은 어느 대기업 전자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를 다룬(도대체 어느 기업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사망한 노동자 가족이 사측으로부터 위로금 형태로 받은 금액이 그 기업의 회장님이 하룻밤 섹스의 대가로 파트너에게 지불한 금액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만 기억한다. 그 금액은 500만 원이었다.) 영화가 개봉되자, 사측으로부터 그 영화에 대한 안 좋은 소문, 분위기를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여기에 ‘팀-알렙’은 오히려 역공격을 하자고 제안한다.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사가 사실 스태프들을 더 착취했다는 루머를 퍼뜨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사측은 그 제안을 거절하는데, 이 때 ‘합포회’라는 조직이 나타나 그들을 고용해 작전을 수행토록 한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것이다.

작전의 성공으로 한껏 고무된 ‘팀-알렙’에 합포회는 얼마 후 다른 제안을 이어 간다. 바로 온라인상의 진보적 커뮤니티를 붕괴시키고, 진보적 386세대들이 십대들로부터 외면 받게 만들라는 것이다. ‘팀-알렙’은 치밀한 구상 끝에 진보 커뮤니티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소설 각 챕터의 제목은 나치 독일의 선전상이자, 대중선동의 귀재라 불린 괴벨스가 했다는 말들로 만들어졌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 등이다. 괴벨스의 말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기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반응, 그리고 개성공단 폐쇄나 사드 도입 여부에 대한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문득 문득 파시즘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무언가 결핍을 느끼고 정신적으로 무장해제 될 때 파시즘은 언제든지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겠다. 변화의 희망을 찾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의 무력감과 좌절은 어느 새 증오로 변한다. 그리고 그 증오는 엉뚱한 곳에서 폭발하기 마련이다.

『폭정-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의 저자인 미국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미리 복종하지 말라”고 말한다. 예비 복종은 정치적 비극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권위주의는 권력의 대부분을 거저 얻는다.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의 개인들은, 억압적인 정부가 무엇을 원할지 미리 생각한 다음, 요구가 없어도 자신을 내어준다. 이런 식으로 순응하는 시민은 권력자에게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 우리 국민들은 그야말로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영웅적으로 투쟁하고 저항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끝내는 정권을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오히려 이른 바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예비 복종’이 역겨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시기는 조작과 선동, 은폐와 억압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혼이 비정상이었던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의 자유와 영혼을 겁박한, 비정상의 시대였다. 그리고 거기에 좌절과 무력감을 느낀 이들은 이따금 증오를 또 다른 우리들에게 퍼붓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이제 시작되었다고 해서, 이러한 파시즘의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자신해선 알 될 것이다. 언제라도 우리 속의 자만과 성급함이 파시즘을 불러올 수 있다. 때문에 어쩌면 지금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과연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이를 방해하고 왜곡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이 또 다른 ‘작전’과 ‘공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유심히 살펴야 한다. ‘팀-알렙’과 같은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이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적지 않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그들에게 희망을 돌려주는 것이 어쩜 첫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역시나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는 아무도 모르게 ‘작전’을 펼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전해준 작품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이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이 항상 반짝거리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 역시 잊지 말아야겠다.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현장감, 경쾌하고 날렵한 문체, 여기에 풍부한 상상력과 함께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까지 더해,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연약한 창조물이다. 우리의 각성과 참여, 감시와 연대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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